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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 대동문화전문위원 |
동서고금의 시(詩)에 대한 정의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공자가 말한 것이다. ‘시를 공부하면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는 구절이 <논어>에 나온다. 나는 시를 공부하기 위해 새와 짐승, 풀과 나무를 만나고 이름을 알고 불러준다.
내가 아는 ‘독서의 여왕’은 문향선 수필가다. 올해 79세. 사람들은 그를 ‘책벌레’라고 부른다. 1993년부터 광주무등도서관에 매일 출근했다. 코로나를 겪고, 또 좌골 신경통과 시력의 급격한 저하라는 ‘독서병’도 얻은 바 있어,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만 ‘글사랑 독서회’ 모임에 나간다. 무등도서관엔 이런 독서 토론 모임 자리가 준비돼 있다. 물론 지금도 그의 집 작은 서재에서는 책 넘기는 소리가 잠들 때까지 이어진다.
그가 무등도서관으로부터 독서왕의 명예로운 칭호를 받은 것은 2006년. 1993년부터 13년 동안 그가 대여한 책의 기록을 뒤져보니 모두 1,683권으로 연평균 130권이었다. 물론 대여된 책만이다. 대여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읽은 책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다. 평생 2일에 1권을 읽었다고 치고, 1년에 180권으로 대충 가늠해 계산해도 12,600권이다. 그 독서량이 통 가늠이 되질 않는다.
“선생님! 독서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그냥 독서가 행복합니다.” 그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이 세상과 하직하는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책과의 결별도 그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는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책 쓰는 사람이 되었다. 수필가가 되어 수필집 ‘오래된 시계’를 냈다. 책이 책을 낳는 법이라서, 독후감 모음 책인 ‘어느 책 읽는 사람의 이력서’를 냈다.
‘독서광’을 ‘간서치(看書痴)’라고도 한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다. ‘바보’는 행복하다. 바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책바보의 지독한 책사랑이다.
1981년 세워진 무등도서관 대로변을 따라 40년이 넘은 대왕참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대왕참나무 그늘 아래 좌판이 또 줄지어 있다. 그 길을 산책하며 좌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보는 일은 행복하다. 대왕참나무 잎은 닭발을 닮았다.
9월 8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국제 문해(文解)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1%라고 하는데 아직도 문해의 힘이 필요한 분들은 있는가보다. 평생교육법에 관련 조항이 있고, 국가문해교육센터도 있다. 문해교육사라는 직업도 엄연히 있고, 지역별로 공공, 단체, 개인이 운영하는 교육기관도 많다.
광주 동구 계림초등학교 사거리 근처에 ‘푸른학당’이 있다. 몇몇 어르신들이 모여 한글부터 떼고 동화를 잃고 동시를 쓴다. 버스 정류장에서 행선지를 읽고 제대로 버스 타보기, 은행에서 통장 만들어 송금해보기 등의 교육 과정도 있다. 다음엔 정규 교과를 하나하나 밟아나간다.
한글을 읽고 쓰기 시작하면서 새 세상이 열린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 어르신들 중 한 분은 지금 75살이다.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없었다. 스물넷에 결혼해 자녀 셋을 낳았다. 첫째아들은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학위 수여식에서 가족들은 어머니의 머리에 학위모를 씌워드리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학위모는 아들의 것일 뿐,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늘 공부에 대한 한이 남아 있어 ‘푸른 학당’을 수소문해 찾게 됐다.
7년 전부터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더디지만 끈기 있는 공부 뒤에 글씨를 읽고 쓸 줄 알게 됐다. 신기했다. 박사 아들에게 편지를 또박또박 쓸 때 행복했다. ‘아들아! 내 편지를 읽어보거라!’ 그 편지를 받아보고 손자 손녀들이 영상통화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왔다. 지금은 중학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시화 쓰고 그리기 대회에 나가서도 상을 받았다. ‘푸른 학당’에 공부하러 가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35년 동안 푸른 학당을 운영하고 있는 오성자 교장은 지금 혈액암 투병 중이다. 서울을 오가며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푸른학당 강의를 빼먹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도 대학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했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자고 야학이었던 ‘푸른학당’의 문을 열고 들어와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와 자원봉사를 하던 1990년 학당이 문을 닫게 될 형편에 놓이자 얼떨결에 학당을 맡게 됐다. 10년쯤 후에 평생교육기관으로 등록해 운영 보조금을 받게 됐지만, 대부분 그의 사비로 운영됐다. 그 운영비를 벌어들이기 위해 50개나 되는 자격증을 땄다. 자투리 시간에 그 자격증으로 외부 강의를 해서 학당 운영에 조금이라도 물줄기를 대기 위해서다.
오 교장은 그래서 ‘자격증의 여왕’이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한 분이라도 학당에 오는 날까지,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시는 삶의 행복한 감정과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문학예술이다. 글자 모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제 훌륭한 시인이 됐다. ‘푸른학당’의 창문 너머로는 은행잎이 푸른 여름날의 하늘 아래 나부끼고 있다. 은행잎은 영락없이 오리발을 닮았다.
나는 머지않아 은퇴를 하고, 닭발 잎 대왕참나무 그늘 아래서 책장을 넘기며 행복한 시를 쓰고, 오리발 잎 은행나무 그늘 아래서 문해교육 자원봉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