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성언 음악감독 |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 관람을 하면서 난해한 작품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건 무슨 작품일까 하며 한참 작품을 쳐다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16년 5월 어느 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전시실 바닥에는 의문의 안경 하나가 놓여 있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흥미로웠다. 어떤 이는 안경에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 했고, 어떤 이는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사진을 찍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안경에 몰려들었다. 잠시 후 사람들은 그 안경의 주인이 미술관을 방문한 한 소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티제이 카야탄(17)이라는 소년과 그의 친구는 몇 시간 전 샌프란시스코의 현대미술관을 찾았다. 그리고 미술관 한 켠 바닥에 안경을 놓아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 우리는 그곳의 거대한 시설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에 꽤 큰 인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어떤 예술작품들은 우리에게 그리 놀랍지 않았어요. 회색 담요 위에 놓인 동물 인형이 전시된 걸 봤는데,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말 인상적인 작품일까 궁금했죠.” 이러한 궁금증을 품은 소년과 그의 친구는 미술관 한 켠 바닥에 안경을 놓았던 것이다. 카야탄이 공개한 당시 사진은 당시 트위터 내에서만 4만 3000번이 넘게 리트윗 되었으며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 예술이 때로는 농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해요. 하지만 예술은 우리가 가진 창조성을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그중 어떤 것은 농담처럼 해석될 수 있고, 또 어떤 건 위대한 영혼을 담은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죠. 나는 그런 것 또한 열린 마음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한편 그는 안경뿐만 아니라 모자와 쓰레기통을 가지고도 비슷한 장난을 쳐보았지만 안경만큼 많은 관심을 얻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어쩌면 작품은 그 자체로 예술가가 가진 영감의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어느 공간에 놓여 있는가도 상당히 중요하다.
여러 곳에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준비로 분주하다. ‘모두의 울림, 판소리’라는 주제로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벌어지는 이번 비엔날레는 벌써부터 궁금해지고 흥미를 끄는 전시들이 여러 곳에서 준비 중이다. 언제부턴가 여행하면 꼭 들리는 곳이 미술관과 시장이다. 나는 미술관 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평생 만나볼 수 없는 작가들이 남겨놓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호사를 누리면서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광주시립미술관에는 2024 광주비엔날레 기념특별전 ‘시천여민’이 기획되었다. 나는 ‘새벽불 프로젝트’ 작가로서 이번 전시에 함께하게 되었다. 또한 비엔날레 광주 파빌리온에는 ‘나는 80년 이후생이다’와 ‘오월 기다림’이 내가 만들었던 프로젝트로서 아카이빙 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미술관 안에서는 나를 연주자보다 작가로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시천여민’ 전시 개막식 당일 미술관 내부에서 관객들과 함께 새벽불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도 얻었다. 미술관 안에서 위대한 작품들과 관객들과 함께 펼쳐지는 음악극이다. 미술관 속 작품들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하며 나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관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전통 있고 오랫동안 지켜져 온 형태의 문화들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시도하고 변화하고 표현되는 문화도 너무나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많은 미술관들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우화로 생각해 본 공간의 중요성을 볼 때 미술관은 나에게도 또 다른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전시할 수 있는 새로움을 제시한다. 언젠가부터 내 인생의 화두인 ‘보람과 영감’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곳이 이제는 꼭 무대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는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다원예술전시를 하는 미술관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이곳은 예술관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미술관의 영어 이름이 아트뮤지엄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꿈꾸고 바라는 ‘광주시립음악관’이 꼭 생겨나서 그곳에서 광주를 지키고 만들어온 음악들을 만나보고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비엔날레 기념전시를 통해 내가 연주자가 아닌 작가로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준비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 관객들과 만날 아니 관람객들과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