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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식으로 전승된 판소리는 여러 계파를 형성하고 있는데, ‘바디’나 ‘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면서 각 계파 별로 정형화된 음악적 형식을 구축하였고, 이런 이유로 역사성과 전통성을 중요시하는 음악 장르로 평가받는다. 현재까지 전승되는 판소리 레퍼토리는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 ‘흥부가’, ‘적벽가’가 있는데, 이 다섯 바탕 외에도 변화된 시대상을 담은 창작 판소리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흔히 판소리는 ‘판’과 ‘소리’가 결합한 합성어로 설명된다. ‘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의 개념이고, ‘소리’라고 하는 것은 노래를 뜻하는 ‘형식’의 개념이다. 특히 ‘판’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의 공동체 문화에서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어떠한 행위가 집단적으로 크게 벌어질 때 우리는 ‘판이 벌어졌다’라고 이야기한다. ‘씨름판’, ‘굿판’, ‘춤판’, ‘놀판’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놀던 집단적 공동체 문화의 단면이 ‘판’이라는 용어에 응축된 것이다. 그렇다면 판소리는 어떠한 열린 공간에서 행해지던 음악적 양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기 이전에는 타령, 잡가, 소리, 광대소리, 창악, 창극조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940년 정노식이 쓴 ‘조선창극사’이다. ‘조선창극사’는 1940년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발간한 책으로 구전으로 전해오던 판소리를 정리한 최초의 판소리 연구서이다. 이 책은 89명의 광대, 1명의 고수 그리고 신재효에 관한 내용 등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판소리의 역사와 함께 음악적 구성요소, 음조직, 장단 등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해 놓았다. 책의 제목에 ‘판소리사’라고 하지 않고 ‘창극사’를 사용한데다 본문에서도 창극조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했는데, 당시만 해도 판소리라는 용어 대신 창극이라는 용어가 더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보편성을 획득한 시기는 해방 이후로 볼 수 있다.
지난 9월 7일, ‘판소리, 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을 주제로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하였다. 올해로 서른 살을 맞이한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를 메타포로 실험적이고 새로운 작품들을 통해 동시대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예술감독 니콜라 부리오는 30여개국에서 모인 72명의 작가들과 함께 기후위기, 생태환경, 여성문제, 비인간화와 같은 변방의 목소리를 21세기의 시대적 울림으로 해석했다. 특히 역대 최대 규모라는 31개의 파빌리온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마당판이 된 셈이다. 판소리를 메타포로 삼았지만 정작 소리 공연이 벌어지던 공간인 ‘판’에 밀도 높게 집중하며, 지구 공동체의 연대와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니콜라 부리오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도 판소리를 메타포로 삼은 이유에 대해 영화 ‘서편제’의 장소적 공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와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라는 개념을 통해 고정된 체계를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탈영토화는 기존의 권력 구조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맥락과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재영토화는 해체된 것들이 새로운 질서나 개념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 예술 형식은 고유의 역사성과 의미를 지니지만, 그 고유한 코드를 넘어서 새로운 맥락에서 재구성될 때 비로소 동시대와의 긴밀한 소통이 가능하다. 판소리 역시 전통적 경계를 넘어 현대 예술과의 조우를 통해 탈영토화되었으며, 이를 통해 판소리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닌, 새로운 시대적 담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자로 재영토화된 셈이다.
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는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소리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가는 연결 코드이다. 광주비엔날레는 21세기의 사운드스케이프를 관통하는 문제에 대해 기후위기, 생태환경, 여성문제 등 사회적 이슈들을 제시하며 예술적 관찰법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이 만들어낸 심심치 않은 파동이 우리 사회에 끈끈한 연대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광남일보 기자 @gwangnam.co.kr 광남일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