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는 단단하고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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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작은 학교는 단단하고 달콤하다

박기복 영화감독

박기복 영화감독
[문화산책] 필자는 올 여름 역대급 폭염 속에서 ‘원 스톱 영화학교’ 교육 과정을 진행하면서 두 편의 영화에 참여했다. 한 작품은 화순군 청풍초등학교 어린이와 함께 한 다큐멘터리 영화 ‘푸른 바람’, 또 다른 작품은 곡성군 심청골짝나라 대안학교 청소년과 함께 한 ‘열아홉 섬진강’ 중 장편 영화다.

‘원 스톱 영화학교’ 교육 과정은 영화 시나리오 작법, 기획 단계를 거쳐 촬영, 후반작업에 이르는 전 과정에 초.중.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교육이다.

예술교육은 학생들의 창의성 및 비판적 사고 능력을 배양하는 데 필수적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공감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며, 감정 표현 능력을 발전시킨다. 예술을 향유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고 꿈과 희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갖게 하면서 예술적 역량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전교생이 15명인 청풍초등학교에 5명의 청소년이 전학 오면서 20명으로 늘어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이하고 놀라운 반전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변방에 위치한 올망졸망한 마을의 작은 학교 근처는 PC방, 피자 가게, 떡볶이, 김밥 가게도 없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학생 수 증가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학교식당은 학생들의 취향에 맞는 식단으로 입맛 기호를 맞추고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 타기, 동네 한 바퀴 자연 체험 학습, 버클리 음대생과 함께하는 밴드 실기, 영화학교 교육, 글로벌 해외 문화·체험 프로그램 등 청풍초등학교 만의 특색 있는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맘껏 향유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차고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프로그램과 더불어 물심양면 진심을 다하는 교직원들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활동, 매주 수요일 학생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는 교장 선생님, 화순군 지자체와 협업이 든든한 그늘과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은 학교의 소멸이니 절벽이니 하는 말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필자가 경험한 청풍초등학교는 단단하고 달콤하다. 새 학기 신입생 모집에 나이 든 필자도 받아준다면 입학하고 싶을 정도로 학교는 예쁘고 즐겁고 아름다웠다.

필자는 영화학교 교육 과정인 영화제작을 어린이들과 함께 하면서 시나리오 속 가공의 인물 캐릭터가 아닌 생동감 넘치는 어린이들에게 관심과 고민을 갖는 시간이 더 많았다. 우리는 교육을 받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하듯이 필자는 어린이들을 통해 성찰과 함께 가르침을 받았다. 뉴 미디어 세대로 빛의 속도로 변하고 진화하는 영상과 테크놀로지를 대하고 흡수하는 어린이들의 감성과 기능과 상상은 어른들도 공감하고 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현장의 경험과 지혜를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청소년들과 소통한다면 영화 영상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 출현도 가능하다고 여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매체들과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 이해하는 능력, 적용하는 능력, 분석 및 비판적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교육을 통해 선행되어야 한다. 유튜브로 뉴스를 접하고 넷플릭스로 개봉영화를 만나는 지금 미디어의 매체교육, 영화의 예술교육 카테고리 구분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든 기획준비 단계, 촬영 실습단계, 마무리 작업과 결과물 창출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비록 수준 미달의 작품성이 떨어진 영화라 할지라도 청소년들의 땀과 눈물이 스며든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다.

영화교육의 모델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되는 곳은 영국 BFI의 사우스 뱅크(BFI Southbank) 와 미국의 AFI(American Film Institute)다.

BFI는 영국 내 대부분의 영화교육을 주관한다. 그 중 사우스 뱅크는 어린이영화교육부터 성인교육까지 연령별 영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AFI(American Film Institute)는 국립영화기관으로 중. 고등학교 이상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영화제작위주 교육으로 학위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정규교육기관이다. 전문 영화교육기관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연출, 편집, 기획 등 각 세부 전공으로 분야가 구분되어 있다.

전남도교육청에서도 1학기에 도내 15개 학교가 영화학교 교육을 진행해 11월 영화제를 개최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작은 학교의 강점을 담은 영화제작 내실화 작업은 궁극적으로 영국과 미국의 영화학교처럼 대한민국 전라남도에 세계적인 영화학교 출현도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역사와 전통이 되기 위한 조건은 반복과 지속성의 약속 위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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