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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 대동문화 전문위원 |
복지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아침 8시부터 준비한다. 어떤 이는 배식을 맡고, 어떤 자원봉사자들은 배식이 될 때까지의 그 무료한 시간을 견디시라고, 노래방 기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동네 가수다.
오늘 내가 만나러 온 동네 가수는 60대 초반 여성이다. 자원봉사 가수는 ‘눈물 젖은 두만강’, ‘굳세어라 금순아’, ‘비내리는 호남선’을 부른다. 어르신들의 옛날 기억을 소환하는 이런 노래들을, 그러나 그곳에 모인 어르신들 누구도 따라부르거나 박수로 화답하지 않는다.
어르신들에게는 지금 당장의 따뜻한 국과 밥, 밥과 국을 목 안에 삼키기 위해 필요한 서너 가지의 찬이 중요하지 노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당장의 ‘먹는 일’이 중요하지 ‘노래’가 필요하지 않다. ‘먹고사는 복지’가 필요하지 ‘문화 복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문화는 먹고사는 일이 해결된 뒤에나 가능하다. 무료급식소에서 문화복지의 현실을 목도하고는 스산한 마음이 된다.
무료급식소에 또 확인한 것은 그 200여명의 어르신들의 손에는 읽을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신문이라든가, 책이라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또 깨달았다. 어르신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독서는 당장에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는다. 책은 밥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책을 뜯어먹고 배고픔을 가시게 할 수 없다. 당장 먹고 오늘 하루를 버틸 ‘밥’이 당장 급하다. ‘영혼의 밥’인 독서나 예술이 당장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책은 밥 다음이다.
직장에 다니는 성인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직장 생활만도 힘겹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직장에 다니는 남편보다 더 바쁘다. 모임, 취미, 여가 활동에 하루가 짧다. 매니큐어 바른 긴 손톱으로는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다.
청소년들은 책이 필요 없다. 꼭 필요한 책들은 스캔해서 노트북이나 태블릿이나 핸드폰에 담아두고 다니며 공부한다. 공부하는 책들이나 겨우 의무적으로 볼까말까다. 웹툰이나 동영상이 흥미진진하지 독서가 결코 즐겁지 않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창의적인 문화 예술가들은 독서를 자기 예술 역량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독서 자체가 행복의 실천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서의 힘으로 자기 삶과 희망을 행복하게 꾸며나가는 것이다.
독서상우(讀書尙友)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으면 옛사람과도 벗이 되어 함께 놀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 수많은 저자들과 저자들이 책 속에 소환한 수많은 사람들과 영혼으로 사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는 행복한 삶의 실천 행위다.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한강 작가가 자기 이름을 단 기념관 건립 대신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사는 광주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광주시가 ‘현행법 안에서’(선거법을 염두해두고) ‘매년 시민 1명이 책 1권을 살 수 있는 바우처 제공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공공도서관의 양과 질을 확대하고, ‘소년이 온다’ 북카페를 만들고, ‘인문학 산책길’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과연 ‘책을 많이 읽고 책을 많이 사는 광주’가 만들어질까?
어느 시인을 만나기로 했는데, “어디어디 작은도서관으로 오라”고 했다. 일찍 도착해 작은도서관에 들어가는데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한 것은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씌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족을 달고 있다. ‘세계 제일의 갑부인 빌 게이츠가 한 말’. 빌 게이츠가 ‘세계 제일의 갑부’ 중 한 명이기는 하지만 꼭 그렇게 책을 읽으라는 ‘동기 부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보화 혁명의 선구자 빌 게이츠가 한 말’ 이러면 어땠을까?
도서관 안에 들어가보니 만나기로 한 시인은 없고 두 명의 초등학생이 책을 읽으며 앉아 있다. 말을 걸었더니 ‘누나’와 ‘남동생’으로 한 가족이었다.
학교 끝나고 학원이나 돌봄교실이나 지역아동센터에 가지 않고 작은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있으니 궁금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누나 왈 “엄마 아빠가 일 나가셨어요. 작은도서관 문 닫는 저녁 6시까지 있다가 집으로 가서 제가 밥해놓아야 돼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킬링 타임’을 해야 하는데 작은도서관이 제일 편하니 거기 와 있는 것이었다.
이런 친구들에게는 책을 한 권씩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일보다는 작은도서관들을 잘 살피고 더 지어 시민들이 더 쉽고 친근하게 작은도서관에 가서 독서의 행복을 느끼도록 배려하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정책이다.
결국 문화복지는 꿈을 꾸게 하는 일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한 꿈을 끌 수 있게 할까를 정책을 책임진 사람들은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행복한 도시에 대한 꿈을 꾸여야 한다. 그것은 책과 인문학으로 다져진 공동체의 지혜와 꿈으로 다가올 것이다. 국정 책임자나 지방정부는 자꾸 바뀌고 정책도 변화하지만, 시민은 이 도시에 남아 이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고스란히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