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문학상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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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독서·문학상에 대한 단상

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

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
[문화산책] 1. 요즘 사람들은 지독하게 책을 읽지 않는다. 바쁘다는 말은 변명을 위한 핑계일 뿐이다. 물론 시각 매체들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환경인 것은 분명하다. 책을 읽으면 유익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독서는 수십 년이 지나 잊히지 않고 마음의 양식이 되고, 삶의 길을 갈 때 지혜로운 이정표가 된다.

세상이 갈수록 험하고 사나워지고 있다고 한다. 이성을 잃은 탓에 벌어지는 일이다. 합리적인 사고(思考)를 이성적 사고라고 한다. 배고파도 훔치지 않는 것, 화가 치밀어도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 인간에 대한 예의, 스스로에 대한 예의는 모두 이성적 사고를 지녔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것을 실천할 때 휴머니즘이 구현된다. 이렇듯 이성적인 인간을 형성하는 힘은 어린 시절부터 생활화한 독서에서 나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적목놀이 대안으로 책쌓기 놀이를 시켰다. 책을 장난감처럼 삼았다가 부수는 재미로 아이들은 책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숙해졌다. 그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줌으로써 ‘책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독서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책 읽는 것에 열중한다. 책 속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양서가 정신 건강에 이로운 것은 분명하지만, 설사 불량한 책을 읽어도 나쁜 책의 폐해가 무엇인지를 혼자서 터득할 수 있는 면역력이 생겨 어떤 책을 읽어도 유해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흔히 독서를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일생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를 책을 통해 습득함으로써 정신적인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마음이 배부르다. 그리고 훌륭한 문학인들은 대부분 일찍이 책을 가까이 한 사람들이다.

여러 단체에서 독서감상문을 시상하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응모 숫자가 적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독후감 심사를 해온 필자는 갈수록 적어지는 독후감 응모 숫자로 책을 읽지 않는 세태를 실감한다. 이른바 좋은 대학 진학에만 골몰하고 있는 학교의 교육 방향이 느껴진다. 독서는 문학인이 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책 읽는 세상이 되면 파라다이스를 구현할 수는 없지만, 보다 살기 좋은 세상,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음도 독서의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2.

올해는 우리 문단뿐만 아니라 나라의 경사가 있는 해이다.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출생지 광주만의 영광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광주 출신’이라는 편협한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문학은 오래전에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너무 떠들썩하게 수선을 떨 필요가 없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문학관을 지어야 한다는 발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소설가 한강이 문학관을 사양한 일은 그의 문학이 지향하는 여러 가지 덕목 중에 겸양을 내비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강의 태도가 문학이 지향하는 본질이다.

우리가 노벨문학상에 고무된 것은, 사실 수많은 문학상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이력에 문학상 몇 개쯤은 달려있다. 무슨 놈의 문학상이 그리 많은지, 어떤 시인은 시 작품보다 문학상 이력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실은 문학상의 권위를 실추시킨다. 내면을 살펴보면 지자체나 문학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수많은 문학상이 나눠먹기식인 경우가 많다. 물론 문학상이 제대로 실행되는 곳도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단체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 작고한 문학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 대단한 작품성을 갖지 못한 문학인을 기리는 상 등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 누군가가 세상을 뜨게 되면 만들어질 수많은 문학상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문제는 상을 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제대로, 엄격하게 훌륭한 문학인에게 상이 주어져야 한다. 앞에서 밝혔듯이 나눠먹기식, 또는 주최 측의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주는 상은 권위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살펴볼 것은 수많은 상을 독식하는, 이른바 문학상 선수들을 양산하는 현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목소리가 작은 훌륭한 문학인들을 소외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학상의 본질에 진심이어야 한다. 문학상과 관련해서 문학인의 참된 모습을 생각해본다. 상을 통한 명예와 상금에 눈이 먼 문학인들도 적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학상의 권위와 상관없이 문학의 이름으로 돈을 쫓아가거나 명예를 얻으려 하는 것은 진정한 문학인이 아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문학의 본질은 독서의 이유에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통해 무엇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있다.

독서와 문학상을 통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문학상 제도를 왜 실행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공통적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좋은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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