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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복 영화감독 |
유년시절 필자의 고향 화순에는 신안극장이 있었다. 극장은 281석 좌석을 가진, 당시에는 꽤나 넓은 문화예술의 해방구였고 로망이었다. 극장 외벽은 구멍이 송송 뚫린 모던한 벽돌 단층 건물이었다. 손 그림으로 그린 극장 포스터 간판과 거리 점방 벽에 방금 붙인 포스터에서 풀풀 풍기던 떡 풀 냄새를 향수처럼 맡으며 한동안 서성이곤 했다. 공짜 초대권 한 장 얻기 위해 포스터 붙이는 동네 형을 졸졸 따라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공짜 표를 구하지 못한 날은 극장 개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가 똥통에 빠져 구사일생 살아남은 일들은 필자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옛 신안극장이 있던 자리는 ‘청춘신작로’라는 신 개념 놀이터로 변했고 2018년 신안극장의 다른 이름인 ‘화순시네마’라는 이름의 작은영화관이 남산 터에 개관했다. 신안극장이 있던 옛 터에 세워진 간판석에 새겨진 신안극장의 생애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950년 화순 최초 가설극장(화순극장)이 있던 곳으로 1969년부터 상설극장으로 운영하였다. 나중에 신안극장으로 개명하여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다가 1985년 폐쇄되었다’
지금 한국영화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화순 뿐 아니라 전국 단위 작은영화관도 비슷할 것이다.
5대 투자배급사에서 2025년 개봉 목표인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 영화들을 취합한 결과, 최대치로 잡아도 10편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 한다. 올해 투자를 결정하고 내년 촬영에 들어갈지도 불분명하다. K콘텐츠 시장이 초유의 빙하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발길이 끊긴 극장, 이후 콘텐츠 공급 과잉, 글로벌 OTT 플랫폼이 K콘텐츠에 거대 자본을 투입하면서 폭등한 제작비와 배우 개런티, 많은 영화들이 전반적인 흥행 부진으로 영화제작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영화 제적 편수가 줄어들면 작은영화관에 배급할 영화 또한 줄어들기 마련이다. 관객은 그만큼 볼 영화가 사라진 것이다. 대기업에서 배급하는 영화 편수가 줄어들면서 극장 수입 또한 쪼그라들 수밖에 없고 극장 운영은 적자를 면치 못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기업 제작과 배급사들의 절대적인 그늘 아래서 벗어나 생존을 찾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대한극장처럼 신안극장처럼 소멸되는 운명을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창의적인 극장 운영으로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한다. 사후약방문을 쓰는 우를 범하지 말고 위기를 알고 대처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작은영화관의 운영이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입장 관객 티켓 가격의 절반가까이 배급 부금으로 빠져나가는 시스템에 있다. 부금 조정은 정부나 지자체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 일정부분 조종이 가능할지 몰라도 일시적인 정치논리에 그칠 게 뻔하다. 영화는 예술이기 전에 자본논리가 횡횡하는 산업이다. 대기업 자본의 속성상 기대를 걸거나 정부에 기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영화 시장은 자본논리가 가장 철저하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현장이다. 스스로 생존을 찾는 길밖에 없다. 지자체 모든 구성원이 작은영화관 운영의 묘를 찾아야 할 때다.
그렇다면 작은영화를 활성화 시키고 생존할 방법은 찾는 일은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에는 극장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운영자의 인식에 달려 있다고 본다. 영화 예술을 치졸한 상술로 접근하면 필연적으로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극장 운영자의 예술에 대한 전문성과 애정과 애향심, 폭넓은 배급 시스템 확보, 창의적 기획력과 추진력, 영화 관계자들과의 인적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작은영화관 자체 콘텐츠 기획이 필요하다. 극장이나 동영상 OTT에서도 상영하지 않은 수작들을 선별해 지역민들에게 제공하는 일고 고려해 볼만하다. 또한 지역 특성과 연령대에 맞는 기획전, 찾아가는 영화관, 영상과 교집합이 가능한 출판, 행사, 전시, 돌, 회갑, 축제 등을 유치해 저렴한 대관료로 자생력을 키우며 지역민의 사랑방 역할로 탈바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영화관을 담당 공무원이 맡아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자리 이동이나 타 업무 없이 영화관을 전담한다면 몰라도 업무와 병행하기엔 역부족이다. 극장 운영을 책임질 위탁 전문가를 선정하거나 지자체 직영으로 전문가를 영입해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추억을 잃는 일은 서글픈 일이다. 화순의 신안극장, 충무로의 대한극장처럼 사라져가는 영화관을 보고 싶지 않다. 필자의 고향인 화순의 작은영화관 만큼은 끝까지 생존해 화순의 문화예술의 부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