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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복 영화감독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년이 온다’에 이어 최근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미국 연극·뮤지컬 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을 거머쥐면서 한류 콘텐츠 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개천에 용 나는’ 시대도 지났는데 경이로울 따름이다. 자본 논리가 횡횡한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언제까지 라면만 먹고 달리던 마라톤의 시대는 갔다. 그만큼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일궈낸 수상은 그래서 더 값지고 빛난다.
이재명 대통령의 새로운 정부의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기조는 대선 과정에서 밝혔듯이 ‘5대 문화강국 실현과 K-컬처 시장 300조 원 시대 개막’이란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K-컬처의 확장성과 경쟁력 확보의 공약이다. 이는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정부에서 자행한 문화예산 삭감, 지역 문화 예산 활성화 예산 전액 삭감과 대비되기 때문에 예술인들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문제는 문화예술 지원 예산의 쓰임새에 대한 효율성과 효용성이다. 넉넉한 예산 지원이나 속도전 이전에 문화예술 전반적인 시스템 점검이 필요할 때다.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부분은 공모전 심사위원 인력풀((人力pool)과 정책 입안자들과 실무진들의 전문성이다.
인력풀이란 쉽게 말해서 공정한 심사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심사위원을 말하는데 문제는 그 분야 콘텐츠를 심사할 정도의 전문성과 현장경험을 갖췄느냐에 대한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심사위원에 따라 작품의 탄생과 무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 작품의 수준과 기차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각각의 분야나 장르에 제대로 된 경험과 실적의 검증 없이 심사에 임하다 보니 제대로 된 작품평 한 줄 써내지 못할 심사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과 결과는 응모자들의 공정성 시비와 불만이 당연히 수반되기 마련이다.
공모전 주체 단체나 조직의 실무진들 또한 콘텐츠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획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많은 예산을 책정하고 고루고루 분배한들 빈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면 실질적인 공모 응모자들 중심으로 공청회를 열어 심사 시스템 점검과 함께 수정 보완이 필요할 시점이다.
필자는 K-문화강국의 기대와 희망에 앞서 중앙과 지역 간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고민과 대안에 대한 생각이 앞선다. 지방은 갈수록 소외되고 소멸 진행 중이다. 예산과 인력, 시설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가운데 지역 주민의 문화 접근성은 상대적으로 낮고, 창작 기반도 취약한 실정이다. 지역 문화 예술단체와 소규모 창작자들이 ‘기회 불균형’을 겪고 있는 현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문화 다양성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지역이 K-문화강국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지역 특색을 살린 문화 콘텐츠 개발이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지역소멸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문화예술과 융합한 관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누가 예측했겠는가?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와 인물과 정서를 활용한 콘텐츠가 얼마든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셈이다. 굉장한 소재의 발견이다. 사극이 되어가고 있는 5월 광주항쟁 소재 하나만으로 수백 수천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똘똘한 콘텐츠 하나로 지자체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문화예술관광 상품으로 가능해졌고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수십 년 동안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을 쏟아 붓고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예상치 않은 곳에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과감한 선택과 결정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대부분 한국영화 제작은 처음부터 부침이 심했다. 많게는 7년 이상을 기다린 작품도 있었다.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때다. ‘메이드 인 광주’ 브랜드를 단 노벨문학상 ‘소년이 온다’의 오마주(존경)를 위한 근사한 작품 한편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멋지고 통쾌하고 우아한 희망인가를 상상한다. 문학, 무용, 미술, 판소리, 오페라, 뮤지컬, 영화, A!, 미디어 아트 등 모든 예술 장르를 용광로에 부어 광주만의 독특하고 대중적이고 작품성 강한 80년 5월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