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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운영과 주무관 |
살다 보면 계획은 어긋나고 관계는 흔들리며 마음은 종종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완전함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더 크고 더 새롭고 더 완성된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완전을 지향하지만, 삶은 완성된 결과로만 남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과정에 남은 작은 순간들이 기억되고는 한다. 잠에 들기 전 쓰는 일기, 여행 중 찍은 사진 한 장, 대화 속에서 문득 마음에 남는 문장 같은 것들. 지나가는 하루지만 그 순간 하나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순간들이다. 완성된 이야기라기보다 삶의 과정에서 생겨난 작은 조각들이다.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 ‘파편의 파편’을 준비하며 나는 이 질문을 자주 떠올렸다.
이번 전시는 광주·전남 지역에서 오랫동안 작업해 온 두 작가, 박치호(b. 1967)와 정광희(b. 1971)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고 작품의 형태도 다르지만, 두 작가의 작업에는 공통된 시선이 있다. 완성된 형태보다 그 뒤에 남겨진 흔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박치호 작가의 그림에는 지워진 얼굴과 몸의 일부가 등장한다. 그것들은 또렷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진 기억처럼 어떤 흔적만을 남긴 채 캔버스에 머문다. 그 형상들은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감정과 상처를 건드린다.
정광희 작가의 작업은 달항아리를 통해 질문을 건넨다. 전시장에는 깨진 도자 파편들이 놓여 있다. 부서진 조각이 압도하는 공간에서 관람객은 파편 그 자체로 존재하는 흔적을 본다. 무엇이 완전한 것이고 무엇이 미완인지, 그 경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을 어떻게 완벽히 설명할까보다 관람객이 이 공간에 있는 순간, 어떤 자신을 만나게 될지를 더 고민했다. 그리고 전시장 입구에 질문 카드를 놓았다. 전시를 보며 마음에 남은 한순간은 무엇이었는지, 이 장면은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지, 자신은 어떤 사람처럼 느껴졌는지, 지금 머릿속에 남은 생각의 조각은 무엇인지. 그리고 여기에서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메시지까지.
시간이 지나며 카드에는 짧은 문장들이 하나씩 쌓였다. 누군가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적었다. 어떤 문장들은 놀라울 만큼 솔직했고, 또 어떤 문장들은 한 줄의 시처럼 남았다. 이 문장들이 쌓여 전시는 더 이상 단순히 보는 전시가 아니게 되었다. 작품이 질문을 던지고 관람객이 자신의 언어로 답을 남기는 순간들. 그 사이에서 전시는 하나의 조용한 대화처럼 확장되었다. 여기에 지역이나 언어의 경계는 없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나는 또 다른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역에 위치한 국립 문화기관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오랫동안 주요 문화기관의 기획은 국가 단위의 문화 담론이나 국제적 흐름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는 예술 기획의 수준을 높이고 다양한 교류를 만들어 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이 지닌 고유한 경험과 예술적 서사를 어떻게 함께 담아낼 것인가라는 고민도 이어져 왔다.
최근 전시 기획에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업과 그들이 살아온 환경, 그리고 지역의 문화적 감각을 함께 바라보려는 시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예술적 경험이 더 넓은 문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예술은 거대한 문화 서사의 주변부가 아니다. 각 지역은 저마다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고유한 예술적 세계를 품고 있다.
전시 ‘파편의 파편’은 그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문화는 하나의 중심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발견된 수많은 경험의 조각들이 켜켜이 쌓이고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진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문화의 미래 역시 그렇게 시작될지 모른다.
한 지역에서 발견된 작은 파편 하나에서부터.
2026.03.12 (목) 1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