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서 첫 선…생명성 담보 강력한 물살 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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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고향서 첫 선…생명성 담보 강력한 물살 투영

김혜선 작가 출향 43년만에 ‘고향가는 길’ 주제로
오늘부터 은암미술관서…‘장주지몽’ 연작 등 45점
어두운 블루톤 구사·치유 선사…나이프 활용 작업

작품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아버지의 바다를 거닐었다’ 앞에서 설명하며 포즈를 취한 김혜선 작가.
‘장주지몽(莊周之夢)-BLUE1·2·3’
대학 진학 후 43년 만에 고향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전남여고를 졸업 후 홍익대에 진학, 줄곧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살았다. 그에게 서울과 인천은 객지다. 그러나 그 객지가 고향에서의 삶보다 더 오랫동안 머문 곳이 됐다. 고향은 광주이지만 서울을 위시로 수도권에서 작가로서 줄곧 활동을 펼쳐왔다. 남편 역시 고향이 광주여서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하지만 전시 만큼은 좀처럼 고향과 연을 맺지 못했으나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대학졸업 후 프로작가로 활동하는 긴 이력 속 고향에서 첫 전시를 여는 김혜선 작가가 그다. 그것도 그는 중앙초등학교를 나왔고, 그 일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성장했다. 고교 역시 전남여고를 나와 그 인근이 각별하다. 더욱이 전시를 여는 공간 또한 은암미술관이어서 그에게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은암미술관 채종기 관장과 인연이 닿았고, 해남 울돌목 해안을 추천해줘 자주 그곳에 가서 파도를 관찰했다. 그러면서 작업 아이템이나 창작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작가의 행보가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그의 작품들은 울돌목의 생명성을 담보한 물살의 강력한 움직임을 간파해낸 것이다. 그냥 파도만 표현했더라면 역동적 생명력을 읽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생명성을 담보한 물살의 움직임을 투영한 작품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아버지의 바다를 거닐었다’와 ‘장주지몽(莊周之夢)-BLUE’ 연작 등 총 45점이 이번 전시에 출품됐다. 전시는 스물다섯번째 개인전으로 25일부터 7월 19일까지 은암미술관에서 ‘고향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1층 전시장에는 어두운 블루톤의 작품들이 집중 배치됐고, 2층 전시장에는 치유와 명상적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을 배치했다.

그가 말하는 어두운 블루는 한이나 아픔을 상징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희망이 있는 색이라는 점에서 착안됐다. 특히 고향 광주가 5·18항쟁의 참화를 겪은 아픔이 있었지만 파도처럼 일어서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두운 블루를 생각했다. 여기다 바다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전라도의 색이 무엇일까’ 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전시는 12·3비상계엄 때부터 올 3월 사이 작업했던 작품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이어 2층에는 그동안 펼쳐왔던 작품을 출품했다. 관람을 온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가가도록 명상의 감각을 선사, 치유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세상의 가려운 곳을 긁는 마음으로 나이프를 활용해 밀었다. 그리고 색을 다소 빼 냈다. 작가의 삶과 회화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영상도 배치해 뒀다.

작품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아버지의 바다를 거닐었다’
작품 ‘Listen as the crowd would sing 2’를 설명하고 있는 작가.
작품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아버지의 바다를 거닐었다’를 작업할 때는 아버지의 바다가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라 생각했지만 녹록치 않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먼저였다는 점을 깨쳤다는 설명이다.

그가 이처럼 스토리 뿐만 아니라 기본기마저 탄탄한 이면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추상미술운동인 초기 앵포르멜 추상에서 기하학적인 화면에 앵포르멜 요소를 절충한 당사자로 이름만 대도 알만한 최종섭 화백(1938∼1992)을 스승으로 모시고 미술공부를 했다. 추상미술의 결집체 역할을 했던 미술동인 ‘에뽀끄’ 멤버로 호남 추상화단에서 양수아와 강용운 화백에 이어 추상회화 2세대 작가로 꼽혔다. 그저 그런 작가가 아닌, 꽤 이름있는 작가로부터 미술의 기본기를 닦은 것이니 그에게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마르면 밑바닥이 모두 보이고 실리콘처럼 촉촉한 느낌이 드는 한편, 가격이 만만치 않은 네덜란드 수제 수채 물감인 올드홀랜드(old holland)를 사용한다. 그가 색에 대해 얼마만큼 신경을 쓰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양한 형태를 위해 물감을 쌓을 수 밖에 없다는 작가는 물감의 농도차로 만든 질감을 익히 잘 이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외에 작업을 할 때 드뷔시의 ‘달빛’ 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음악이 주는 색감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작가는 “내가 살던 곳이 은암미술관이 자리한 동네였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더 의미가 있다”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이프로 미는 작업이 힘들었다. 나이프로 미는 작업은 호흡이 중요하다. 내면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작업에 몰입해야 한다. 제 특징이 물감 성질을 잘 안다는 점이다. 층층이 색을 달리 구사해 나이프로 긁는다. 그렇게 해서 형태를 잡아간다”고 말했다.

개막식은 25일 오후 5시.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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