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없어 못팔 작가들…예술과 현실 접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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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없어 못팔 작가들…예술과 현실 접속하다

광주시립미술관 ‘그리고, 하루’전 11월 23일까지
김선우·문형태·정성준·정승원씨 등 작품 출품
개관 33주년 기념행사…개막식에 묻혀 아쉬움

정성준 작가가 작품 ‘그럼에도 걷는다’를 설명하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그리고, 하루’전 개막식과 개관 33주년 기념식 자리를 지난 1일 오후 함께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400여명의 미술인들이 집결해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1993년 8월 1일 개관돼 올해 33주년을 맞은 가운데 젊은 작가 4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개막됐다. 보통 시립미술관 전시하면 중견이나 원로들을 많이 떠올리게 되지만 이번에는 작품이 없어서 못팔 작가들과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점차 영향력을 키워온 이들이다.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윤익)이 ‘그리고, 하루’라는 타이틀로 마련한 현대미술기획전이 그것으로 지난 7월 29일 개막, 오는 11월 23일까지 미술관 본관 3, 4 전시실에서 진행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김선우 문형태 정성준 정승원 등 네 명 작가의 회화 및 설치 작품 50여점을 접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1일 작품설명회에 이어 1일 개막식이 펼쳐졌다. 하필이면 개막식과 33주년 기념식 자리를 함께 마련하면서 400여명 안팎의 미술인들이 시립미술관 1층 로비에 집결, 뜨거운 관심을 표명했다. 개막식 후 33주년 기념 자리는 성악 공연과 케이크 절단 등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개막식에 묻혀 전혀 돋보이지 않았다. 개관하던 해인 1992년생 미술인이 다른 3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케이크를 절단하며 그 의미를 되새겼지만 그래도 33주년 기념식 자리치고는 너무 프로그램이 부실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전시는 지난 31일에도 봤지만 개막식이 진행하는 사이 다시 전시장에 들러 천천히 훑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네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자아를 향한 항해에서 출발해 모두의 공존을 위한 여정으로 이어지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룬다. 그 사이에는 일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을 담은 작품들이 배치돼 삶에 대한 다양한 결을 형성한다는 설명이다.

문형태 작가의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지탱하는 등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 ‘사다리’.
정승원과 정성준 작가가 40대 대표 지역작가들인 만큼 아예 전시장 전면에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먼저 전시장 두번째로 배치된 교과서 수록작가인 정승원 작가는 평범한 하루의 단면들을 밝고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며 삶 속 기억에 스며든 따뜻한 감성을 되살리며, 기억을 매개로 삶의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화면에 담긴 장면들은 독일 유학 시절의 일상, 가족과 함께 한 여름 날, 아쿠아리움을 찾았던 순간처럼 작가에게 익숙했던 풍경이 소재다. 독일 유학시절의 기억들을 투영된 작품들 역시 몰입시켰지만 그의 작품 ‘기억의 도시’는 그가 자라면서 경험했던 광주의 모습들이 원형의 작품에 투영됐다. 빽빽하게 들어찬 도심의 건축물 사이로 선로로 움직이는 경전차가 움직이고, 중외공원 팔각정과 증심사 일주문 등 시민들이 알만한 시설들이 작품 속에 재현돼 말 그대로 우리들의 일상을 재탐험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시장 네번째로 배치된 교과서 수록작가인 정성준 작가(전남대 교수)는 도시 속 동물들의 유토피아를 향한 여정을 통해, 공존의 가능성과 생태적 회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후위기의 시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동물의 시선에서 유쾌하게 상상해온 작가는 화면 속 동물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서로를 위로하며 인간을 대신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법을 실천하는 한편, 환경에 대한 경고를 넘어 생태적 회복에 대한 인식을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제시한다. 기존의 트램 작품들도 눈길을 붙잡았지만 코끼리 다섯마리가 뿌옇게 오염된 도심 외곽을 걸어가는 모습을 통해 환경 위기의 심각함을 설파하고 있는 ‘그럼에도 걷는다’는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그가 북경 유학 갔을 당시 북경의 모습이 화폭 속 모습과 같았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개막식과 개관 33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미술인들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전시장 첫번째로 배치된 김선우 작가의 작품은 현실에 안주하며 비행 능력을 상실한 도도새를 통해 현대인의 꿈과 가능성, 자유의지를 환기하고 있고, 전시장 세번째로 배치된 문형태 작가의 작품은 가족과 친구, 동료 혹은 스쳐간 인연들 사이에서 생성된 감정의 편린들을 조형적으로 포착하며 관계가 만들어내는 정서의 층위와 삶의 양가성을 유쾌하면서도 서정적으로 정리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각자의 삶이 어떻게 그려지고, 또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되묻고 있다. 제목에 쓰인 ‘그리고’는 멈추지 않는 삶의 흐름이자, 하나의 장면 위에 다음 장면을 겹쳐 그려나가는 행위로 이해하면 된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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