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광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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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광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원숭이 인간
차현숙

화가 김영화 삽화
꼬리 달린 인간, 역사상 첫 발견!



읽어 보셨나요? 오늘 신문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말도 안 된다고요? 믿으셔도 좋아요. 내가 그 주인공이니까요. 며칠 전 꼬리를 커밍아웃한 덕에 이 소동이 벌어졌죠. 그렇지 않았다면 여느 날처럼 거리에서 사람들 하체를 살피고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뇌스캔을 끝내고 전선을 매단 채 누워 있어요. 뇌 과학자들이 신경 시냅스와 뇌파를 확인하겠다며 부착해놓은 것입니다. 뇌 과학자뿐만 아니라 유전학자, 진화 생물학자, 음성학자, 인류학자 등 여러 학과 연구원들도 여기 모여 있습니다.

음성학자는 나의 성대구조가 언어 발화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겠다며 성대와 구강 구조를 영상 촬영해 갔습니다. 이제 인류학자 차례인가 봅니다. 그가 미국 자연사박물관 생물탐험대 이야기를 해주네요. 1938년에 뉴기니 대협곡에서 오만 명 파푸아인을 발견했다고요. 발견 당시 그들은 석기 시대 생활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 이후로 원시인은 더 이상 존재치 않으리라 학계는 전망했데요. 그래서 원숭이 인간 발견에 다들 흥분되어 있다고요. 게다가 나는 조각도 하고 말도 하는 원숭이니까요. 인류학자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야기를 빠짐없이 말해달랍니다. 그리고 숨길 수 있었던 꼬리를 일부러 밝혔던 이유도요. 그래요. 내가 원하던 바입니다. 다 말씀드리죠. 과학자 나리들도 한 번 들어 보세요. 유전자 결정론에 매몰되어 DNA만 검사해서는 이 변화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

*

약 칠백만 년 전 사람은 침팬지와의 공통 선조로부터 분기되었다죠? 그 사이 인간과 침팬지 DNA는 1.4% 차이가 벌어졌고요. 그 1.4% 유전자 차이를 인간은 진화라 부르더군요. 발전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죠. 물론 ‘진화’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현대판 바벨탑 같거든요.

역사를 보세요. DNA에 담긴 칠백만년 유전자 정보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과학혁명 이후 축적된 정보는 문자화 되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지요. 실제 우주적 질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과학, 예술, 역사, 문화 등도 모두 유전자에 비할 수 없이 크고 복잡한 우주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어떻게 유전자 하나로만 존재를 규정한단 말입니까? 우주의 미로를 여행하면서 어떻게 횡단이 아닌 진화의 표현을 쓴단 말입니까? 당신들이 이해하는 세계는 모래알 같아요. 그것으로 바벨탑을 쌓는 거죠.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들어보세요.

언어와 사고력을 제외하면 원숭이의 생활양식은 사람과 비슷해요. 계급사회지요. 다만, 생존을 위한 계급이에요. 위계가 존재하지만 존경이나 저항을 초래할 만큼 관념적 우열은 아닙니다. 원숭이에게는 관념이 없으니까요. 모든 본능이 생존과 번식을 지향합니다. 집단의 싸움조차도 무리를 위한다기보다 개체의 안전을 위한 선택인 것이지요. 지나고 보니 그러한 순수 본능이 편하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속내를 가늠하려 애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저 놈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했나,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하루는 투명하고, 잠은 달았답니다. 착취하는 놈도 등쳐먹는 놈도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서열대로, 대지의 여신이 나누어 주는 것을 받아먹으면 그 뿐입니다. 꽤 건강한 삶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늘 낯설었어요. 그런 자연 질서가요. ‘왜’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어요. 지금처럼 정교하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털로 뒤덮인 내 몸뚱어리며, 수컷 암컷 원숭이가 나뉘는 것도, 지금, 여기에 놓여 있는 것도 너무 이상했습니다. 다른 원숭이들은 배불리 먹고 서로 털 고르기 하며 나른한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만, 나는 종일 하늘을 올려다보며 헛된 생각에 빠져들었지요. 섭리는 일개 원숭이에 무심한데 나 혼자만 세계를 이해하려 골몰하고 있으니 헛되지요.

어쨌든 그러다가도 구름 흘러가는 것을 보거나, 바람 속 아득히 먼 곳의 냄새를 맡거나 하면 망상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사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농익은 과일 향은 시간을 거스르고, 계절은 기적적인 천연색들을 만드는데 어찌 만족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나는 늘 겉돌았지요. 원숭이에게 인간과 같은 언어가 있었다면 저는 육체적 폭력과 함께 언어적 폭력에도 시달렸겠지요. 이 쓸모없는 놈, 한심한 놈 하면서요. 다행히도 그런 언어가 없으니 그저 쫓겨 다니며 괴롭힘만 당하면 되었습니다.

계급이 높았다면 나를 좀 내버려 두었을까요? 안타깝게도 나의 엄마는 하층계급이었고 나 역시 그랬어요. 원숭이 사회는 어미에 따라 새끼 계급도 정해지니까요. 물론 가장 낮은 서열은 아닙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태어난 키요마의 엄마가 가장 낮은 계급이었죠. 키요마는 꼬리 부분이 흰색 털로 덮인 귀여운 암컷 원숭이였지요. 꼬리를 꼿꼿이 치켜들면 흰 깃발이 나부끼듯 고고해 보였지요. 내 꼬리는 괴롭힘으로 끝이 흉하게 휘어버려서 키요마의 꼬리가 참 좋아보였어요.

키요마는 어린 암컷인데도 용감한 녀석이었지요. 내가 얻어맞으면 옆에서 꺽꺽 거리며 주위를 집중시켜 주었어요. 운이 좋으면 대장이 와서 괴롭힘을 중단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대장의 털 고르기를 해야 했지만요. 키요마를 좋아했어요. 운명을 알면 서도요. 암컷은 절대로 무리를 벗어날 수 없고, 운이 좋다면 우두머리의 여자로 보호를 받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키요마의 엄마처럼 힘센 수컷들과 어울리며 평생 새끼를 낳고 목숨을 보존해나가겠지요.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허물어진 왕궁터와 사원을 품고 있는 유적지였어요. 도로를 경계로 동쪽 구릉에는 유적지와 숲이 자리했고 지대가 낮은 서쪽은 사람들 마을이 위치했습니다. 유적지에는 무화과나무와 일 년 내내 마르지 않은 강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축복받은 땅이었지요. 그래도 가끔은 도로를 넘어 사람들 마을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활기 찬 시장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 걸음걸이를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게 싫증나면 키요마와 함께 유적지에 있는 조각상들을 구경하러 다녔습니다. 두 귀가 불룩하게 늘어진 불상, 이름을 알 수 없는 왕족, 꼬리를 세우고 웃고 있는 원숭이 조각상 앞에서도 오래 오래 머물곤 했습니다.

시장을 구경 할 때는 시장파 원숭이들에게 시달려야 했어요. 마을은 시장파 원숭이가 차지한 곳이니까요. 언제나 배가 고픈 마을 원숭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가정집 음식을 훔쳐 먹으며 살았어요. 건기에는 물조차 구하기 힘들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가 달콤해지는 계절마다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게다가 시장파의 대장 애꾸는 지난 해 무화과 싸움 때 우리 대장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이를 갈고 있었지요. 유적지파 원숭이들은 잘 먹고 건강했기 때문에 매번 수월하게 시장파 원숭이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는 그렇지 못했어요. 우리는 무화과를 배불리 먹고 하필 사방이 훤히 트인 돌무더기 위에서 졸고 있었던 겁니다. 적이 보이면 꼬리를 세우고 고함치던 보초 원숭이마저 잠들었어요. 대장은 털 고르기 시중을 받고 깊은 잠에 빠져든 상태였지요. 시장파 무리는 조용히 재빠르게 치고 들어왔습니다. 애꾸와 심복 세 놈은 우리 대장부터 공격했습니다. 세 놈이 대장의 팔다리를 붙잡자 애꾸가 목을 물었죠. 버둥거리던 몸이 축 늘어지자 애꾸는 대장의 한 쪽 팔을 잡고는 질질 끌고 돌아 다녔습니다. 가끔 멈춰 서서 보란 듯이 대장을 물어뜯었습니다. 대장은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피칠을 한 채 고통의 신음을 뱉어 냈습니다. 남은 유적지파 원숭이들이 공포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애꾸는 마지막으로 대장의 고환을 물어뜯어 숨통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혼비백산해서 흩어졌습니다. 나 역시도 미친 듯이 뛰었어요. 그러다가 키요마를 찾으려 잠시 두리번거리는 사이 뒷다리를 잡혔지요. 오른쪽 사타구니를 물어뜯긴 순간 벼락같은 고통이 관통했고 정신을 잃었어요.

*

나는 여러 번 꿈꾸고 까무러쳤습니다. 꿈속에서 키요마가 꼬리를 치켜세우며 조각상을 보러 가자고 끌더군요. 다리가 아파 걸을 수 없다고 하자 키요마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습니다. 오른쪽 눈 밑에 패인 상처마저 사랑스러웠습니다. 털 고르기를 거부해서 서열 높은 암컷원숭이에게 물린 상처였어요. 제 눈에는 흉터가 작은 별처럼 보였습니다. 아시라! 조각상을 보아야 해. 어서 따라와. 아시라가 누구지, 생각하며 기를 쓰며 따라가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어요. 키요마의 흰 꼬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키요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 누군가 눈물을 닦아 주는 기척에 눈을 떴습니다.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아시라’하고 부르더군요.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동안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눈을 떴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시라는 ‘축복’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살아야 할 운명이었나 봐요. 마침 지나가던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제 목숨을 구해주었던 겁니다. 할아버지는 유적지 뒤편 대장간에서 혼자 살았어요. 가끔 아이 사진을 보며 한 숨 쉬던 것을 보면 나를 그 아이처럼 여겼던 것 같아요. 덕분에 상처는 회복되었지만 예전처럼 나무 오르기는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하루 대부분을 할아버지 곁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종일 쭈그리고 앉아 달궈진 쇳덩이를 두드렸어요. 두드리고 식히기를 반복하면 그것은 칼이 되고, 삽이 되고, 쟁기가 되었습니다. 간간이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마을에 큰 철공소가 있었지만, 할아버지 솜씨를 흠모하는 손님들은 계속해서 할아버지에게 다녀갔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나는 할아버지 곁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앉은뱅이로 살게 되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무게였습니다. 고통은 무거워 가라앉고 행복은 가벼워 날아가나 봅니다. 내 눈높이에서는 온통 무거운 걸음걸이와 다리만 보였습니다. 어느 한 사람 같은 모습으로 걷는 이가 없었어요. 멀리서 보면 모두들 똑바로 걷는 것 같지만 가까이 보면 그들의 걸음은 제각각 이었습니다. 양발을 같은 각도로 벌리고 걷는 사람은 드물었어요. 발 중심이 안쪽으로 모인 사람,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들은 발을 땅에 끌며 느리고 구부정하게 걷더군요.

멀리서 보면 곧아 보이던 다리도 가까이서 보면 전혀 곧지 않았습니다. 다리에는 삶의 노고가 그대로 배어있었습니다. 담쟁이덩굴처럼 흘러내리는 푸른 정맥, 피가 비칠 만큼 갈라진 발뒤꿈치, 새까맣게 변해버린 발톱 등 하체는 무공 훈장을 매단 늙은 군인처럼 간신히 버티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도 평생 쪼그리고 앉아 쇠를 두드리느라 다리가 오자 모양으로 휘었어요. 걸을 때도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었고 일어날 때도 한 번에 허리를 펴지 못했어요. 한참을 엉거주춤 서 있다가 조금 편안해지면 엉덩이를 뒤로 빼고 걸었습니다. 끊어질 듯 저린 나의 다리가 할아버지의 걸음에서 말 못 할 고통의 냄새를 맡는 건 당연했어요. 할아버지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 심장에 쿵쿵 발자국이 패였습니다.

무화과 익는 계절을 세 번 더 맞이했습니다. 후덥지근한 우기가 지나고 건기가 들었을 때 백발노인이 대장간에 찾아 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얼굴 표정은 자못 심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들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달라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말이 오갔습니다. 말을 알아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당시 나는 아시라와 할아버지가 알려 준 몇 개 단어만 겨우 알고 있었습니다. 살려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천 번도 넘게 전하려 했지만 내 입에서는 언제나 끼끽꺼꺽 소리만 나왔습니다. 단 하나의 인간 단어도 발음되지 않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나의 사랑과 고마움은 그저 할아버지의 수염 털을 골라드리고 입술에 키스하는 정도로 끝나야 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몇 날 며칠을 불 앞에서 고심하였어요. 처음 보는 신기한 모양의 연장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무엇을 위한 도구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으니 바라만 보았습니다. 도구가 완성되자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천에 기름을 묻혀 정성껏 문질렀습니다. 윤이 반지르르 흐르는 것을 확인한 뒤 연장을 가방에 집어넣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작은 수레에 가방을 싣고, 나를 번쩍 들어 그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해 뜰 무렵 집을 나섰지만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해는 머리 위로 올라서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길 끝 허름한 건물 앞에 수레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수레에 앉아 가방을 지켰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상한 과일을 던져주더군요. 꼬마들은 막대기로 내 몸을 쿡쿡 찔러댑니다. 그러지 말라고 소리칠수록 사람들은 신나하며 더 귀찮게 했습니다. 왁자지껄 소리에 할아버지가 건물에서 나왔습니다. 짓궂은 사람들을 쫓고 나와 가방을 안고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건물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중앙에는 대형 작업대가 있고, 안쪽으로 방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조각을 위한 작업장이자 도제들을 위한 숙소 같았습니다. 작업대에는 청년 몇 명과 소녀 한 명이 나무 조각상을 붙들고 있더군요. 소녀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야위고 등이 굽은 소녀였어요. 칠흑같이 까만 머리에 한 줌 머리카락이 흰색으로 새어버린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을 보려 다가갔지만 소녀는 고개를 푹 수그리더니 등을 돌려 버렸어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손모양만 바라보았습니다. 손길이 지날 때마다 길이 나고 형체가 드러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안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때 백발노인과 이야기를 끝 낸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떠나려하지 않자 할아버지는 나를 품에 안았습니다. 소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할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울렁이는 감정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목이 마르고 심장이 따끔거렸습니다. 키요마가 그리웠던 걸까요. 집에 돌아온 뒤 잘못되어 버려진 조각 도구를 찾아 손에 쥐었습니다. 조금 큰 듯 했지만 그런대로 잡을만했습니다. 작은 흑단나무 토막을 주워와 일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조각칼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내려다보더니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낡은 나무궤짝을 가져와 내 앞에 엎어 놓았습니다. 창고에서 본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라 여겼나 봅니다. 나는 조각칼로 나무를 찔러보았습니다. 나무는 생각보다 단단하더군요. 조각칼을 놓쳤어요. 다시 주워 손아귀에 힘을 꽉 주고 세로로 길게 한 줄 파내었습니다.

아! 조각칼이 나무위에 처음 길을 내던 순간, 그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마치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그런 마음이었을까요? 내가 쥔 조각칼 한 자루에 모든 전능한 힘이 실린 기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운명’적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숱한 어둠의 시간들을 견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현할 길 없던 나의 바다가 이 조각칼 한 자루를 거쳐 미지의 세계와 조우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먹는 것도 잊고, 긋고 파고 깎아내기를 반복했습니다. 작은 손은 조각도에 금세 적응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버겁던 조각칼이 손에 딱 들어맞더군요. 태어날 때부터 조각도를 쥐었던 듯 조각도만 들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나라는 존재의 ‘낯섦’과 ‘분열’이 조각하는 동안 ‘의미’와 ‘화해’로 탈바꿈되는 것 같았습니다. 무희의 춤을 추는 작은 불꽃, 산자락에 쉬고 있는 태양, 나를 홀려 같이 떠나자던 구름. 고립된 섬에게 곁을 내주던 친구들을 평면위에 양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내 조각을 한참 바라보더니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아시라 아시라 하며 몇 마디 중얼거리더군요. 그리고는 대장간 문 위에 못을 박고 조각품을 걸어 놓았습니다.

그 때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전기신호가 천둥처럼 척추로 꽂혔습니다. 아프던 다리에 힘이 생기는 기분이었어요. 나는 기분이 좋아 다리를 쭉 펴고 두 발로 섰습니다. 전혀 아픈줄 모르겠더군요. 내친 김에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돌아보았습니다. 중간에 쿵하고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두 번 세 번 연달아 돌았더니 금세 성공하는 게 아니겠어요?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으며 손뼉을 쳤습니다. 공중제비가 다 끝나자 나를 들어 올리고 볼을 비벼주었습니다. 많이 무거웠던지 할아버지는 힘들어하시더군요. 그 때는 내가 무거워졌다는 걸 몰랐습니다.

표현하고픈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키요마를, 유적지에서 보았던 불상을 수도 없이 새겼어요. 조각칼을 쥐고 있으면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키 만 한 나무토막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보니 다리에 힘이 생겼습니다. 눈이 맑아졌습니다. 눈이 맑아지니 이치가 보이더군요.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내가 욕망할 수 있는 것과 흘려보내야 할 것들이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은 보내야했지요. 그리고 그 감정을 내가 만든 세계에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각에 몰입할수록 사람의 말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변화를 겪어갔습니다. 다시 우기가 찾아들 무렵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어딘가 가자는 듯 잡아끌었습니다. 더 이상 수레를 탈 필요는 없었어요. 나는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었고,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뛸 수도 있었으니까요. 키가 자랐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좀 커져도 여전히 난 원숭이였으니까요. 우리가 도착한 곳은 왕궁터 옆 사원이었습니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한 뼘쯤 기울어졌을 때 마을 창고에서 보았던 백발노인과 등 굽은 소녀가 나타났습니다. 뒤로는 청년들이 연꽃색 비단으로 곱게 싼 불상을 수레로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사원에 불상을 새로 안치하고 점안의식을 거행하는 날이었던 겁니다.

스님 두 분이 불상 내부에 사리와 불상 조성기, 발원문 경전 등을 봉안했습니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연좌대에 불상을 안치한 뒤 점필 순간이 도래하자 불상은 생명을 얻어 자비의 숨결을 내쉬었습니다.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할아버지와 불모(佛母) 백발노인은 불상 앞에 여러 번 절했습니다. 등 굽은 소녀도 뒤에서 구경하고 있더군요. 나는 까치발을 든 소녀 뒤로 다가갔습니다. 소녀보다 작은 나는 몸을 구부리고 사람들 다리 사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패배자가 굴복하듯 한 쪽 무릎을 땅에 찍고 손으로 바닥을 짚은 뒤 나머지 무릎을 천천히 구부렸습니다. 올라올 때도 바닥에 먼저 손을 짚고 엉덩이를 빼 올리며 무릎을 폈습니다. 이를 악문 채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이내 눈을 꼭 감고 중얼거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사진에서 본 아이의 명복을 빌었을까요?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요. 뛰쳐나가 그만 하라고 막아서고 싶었습니다. 잔인한 고통이 내 두 다리에 전해지는 것 같았으니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이었어요. 할아버지 모습을 조각하겠다고 결심한 건 그 순간이었습니다. 절하는 조각을 부처님 앞에 놓아드려야겠다고요. 할아버지에게 해드릴 건 그것뿐이더군요. 그 때 소녀가 돌아서면서 웅크리고 있던 나의 등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엉덩방아를 찧은 소녀와 나의 얼굴이 마주쳤습니다. 소녀는 당황하여 얼굴을 찡그렸어요. 그러자 오른쪽 눈 밑에 앙증맞은 보조개가 패지 않겠어요? 키요마의 눈 밑 상처처럼요. 더 자세히 보려 했지만 소녀는 얼굴이 빨개져 쏜살같이 불당 뒤쪽으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내가 할아버지의 원숭이인 걸 알 텐데, 꼭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아 서운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건강한 나무를 찾아 헤맸습니다. 신실함과 고통을 동시에 표현해 낼 최상의 나무를 찾아야했습니다. 숲에는 흑단나무, 향나무 등 건강한 나무가 많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헤매다 양지바른 곳에서 해의 기운을 받고 서있는 늠름한 느티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저거다, 싶었어요. 양(陽에)서 자란 나무는 조각도가 미끄러지도록 길을 내주지만, 음(陰)에서 자란 나무는 칼을 물고 놔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느티나무가 가진 자연스러운 나뭇결이 조각상 전체에 아우라를 펼쳐 보일 테지요. 나는 큰 도끼 두 자루를 들고 다시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를 베는 것만도 며칠이 걸렸습니다. 실물 크기로 나무를 다듬기까지 또 여러 날이 흘렀습니다. 적당한 토굴을 찾아 나무를 옮겨 놓고 마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조각도구들도 가져다 놓았습니다. 할아버지 몰래 작업을 해내고 싶었으니까요.

해 뜨면 숲으로 향하고 해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께 기도드린 후 곡자귀와 원도(圓刀), 망치를 이용해 겉면을 쪼아냈습니다. 걷목치기는 고된 작업이지만 작업 할수록 힘이 솟았습니다. 분명 외형과 내면이 달라지고 있었어요. 다리가 점점 곧아지고 곡자귀를 쥔 손가락에 탄탄한 안정감이 들었지요. 나는 그저 힘든 작업을 하니 강해지는구나, 서서 작업을 하니 다리가 펴지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매일 사라지는 나를 보며 할아버지는 걱정이 되었나봅니다. 어느 날 아침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라. 어디…… 사 년…… 컸구나…….”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습니다. 무화가 익는 계절이 네 번 지났다는 이야기 같기도 했고 내가 컸다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끄억꺽 끼끽”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대답이 최선이었지요.

걷목작업을 끝내고 끌질을 시작했습니다. 평도(平刀)를 이용하여 등 같은 넓고 평평한 부분을 다듬었습니다. 지루한 여정이었어요. 대장간으로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조각은 내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수양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끌질이 지나고 속을 파내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나무는 베어내도 숨을 쉽니다. 마르고 습기 머금는 과정을 반복하지요. 마를 때 금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륙 센티 두께만 남기고 안을 파내었습니다. 마지막 세목작업이 남았습니다. 잔끌질을 하기 위해 창칼을 들었습니다. 세포 하나하나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되는 작업이었지요. 영혼이 실리자 칼은 스스로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김영화 삽화
두 손 가득 파묻은 할아버지 얼굴에서 눈물방울이 흘렀습니다. 동에서 서로 부는 바람에 미세하게 펄럭이는 옷자락이 움직거렸습니다. 다리 곳곳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고난의 세월이 이어졌습니다. 발뒤꿈치 갈라진 협곡을 내 눈물로 채웠습니다. 우아한 느티나무 나뭇결이 더해져 정맥은 파르라니 부풀어 오르고 옷자락은 하늘로 흩날렸습니다. 대지의 자식으로 태어나 땅을 디뎠던 거친 발은 이미 대지와 하나가 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평칼을 들었습니다. 기념품 조각가들처럼 사포로 대충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어요. 조금이라도 거칠다 느껴지면 정성스레 평칼로 밀었습니다. 내 손가락에 옹이가 박히는 만큼 할아버지 몸은 점점 매끈해져 갔습니다.

조각상이 완성되던 즈음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어요. 털은 빠지고 건강하던 몸은 꼬챙이처럼 야위었습니다.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하는 잔끌질은 그렇게 버거운 일이었지요. 조각상이 완성된 뒤로도 여러 날을 바라보았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않았습니다.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다 생각 들던 밤, 드디어 때가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부처님을 뵈러가기 전 몸을 씻어야했습니다.

달빛 내리는 강으로 걸어갔습니다. 기운이 쇠해 몇 번을 휘청거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힘이 없어 바위 옆에 잠시 기대어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달을 바라보았어요. 빙긋 웃음이 났습니다. 살구 빛 달이 눈에 꽉 들어차더군요. 나는 풀밭에 벌러덩 누워 한참을 웃었습니다. 끼끽 소리가 아닌 하하하 소리로 들리더군요. 이내 웃음소리와 함께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대로 저 하늘 별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다가 강기슭으로 기어갔어요. 잔잔한 물가에 얼굴을 가져갔습니다. 처음이었어요. 내 모습을 찬찬히 바라본다는 것. 원숭이. 그 모습 외에는 다른 상상은 할 수 없었지요. 잔물결 하나 없는 수면위로 수척한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잡아 뺐습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그 낯섦.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다시 용기를 내었습니다.

물위에 비친 모습은 기괴했습니다. 원숭이 같기도 사람 같기도 한 그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듯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듯도 했습니다. 눈이 침침한 걸까 여러 번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내 모습은 이상했어요. 몸털은 거의 다 빠져 분홍빛 살갗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두 눈은 퀭한데도 눈빛은 야수처럼 빛났습니다. 목은 여위어 길어지고 그 중간에 볼록한 과일씨앗 같은 것도 튀어나와 있더군요. 그 때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 위에 비친 얼굴에 빗방울이 튀며 순식간에 형상이 흔들렸습니다. 일어서 내 몸을 훑어보았습니다. 사람 같다고 하기엔 등이 굽었고 원숭이 같다고 하기에는 다리가 곧았습니다. 두 다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살덩이도 무게감이 느껴졌어요. 꼬리만은 여전히 내 마음가는대로 움직여주더군요. 이것이 죽음의 징조일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낯선 모습이 절망스러웠지만 어찌되었든 이대로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아직은 할 일이 남았으니까요.

그 밤 나는 몰래 대장간으로 숨어들어 할아버지의 옷을 가져다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수레를 끌고 와 조각상을 실었습니다. 날이 밝기 전 할아버지를 부처님 앞에 모셔다 드려야 했어요. 할아버지가 편안히 매일 기도드릴 수 있다면 이까짓 몸 어찌되던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부처님 앞에 할아버지 조각상을 바치며 기도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내게 아시라라는 축복의 이름을 주었듯 부처님도 할아버지에게 축복을 내려달라고요.

사원에서 물러나 그 새벽 다시 토굴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변해버린 모습 때문에 나는 곧 죽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슬퍼할 것을 생각하니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헤아리지도 못할 시간들을 자고 깨기를 반복하며 토굴에 누워있었습니다. 지나간 날들을 떠올렸습니다. 무리 속에서도 외로웠던 원숭이 시절, 할아버지를 만나 사랑 받던 순간들, 조각하는 작은 소녀를 보며 불붙은 갈망, 그리고 온 힘을 다 해 할아버지를 조각하던 시간들. 문득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변해버린 내 모습을 할아버지께 보여드릴 수는 없었어요. 알아보지 못할 수도 또는 알아본다 해도 너무 놀라 쓰러질지 모르니까요. 대신 조각상에 마지막 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강가에서 얼굴과 몸을 정갈하게 씻고 햇살 속에 길을 나섰습니다. 나를 키워준 태양에게, 꿈꾸게 해준 하늘에게, 태고적 냄새를 실어다 준 바람에게, 그리고 어디에도 머물지 못할 나그네 마음으로 태어나게 한 부처님에게도 원망 아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너그러워지더군요.

어느 덧 사원입구까지 이르렀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부처님의 점안의식 행사 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해 하며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허리춤에 고정한 꼬리가 삐져나와 있지 않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할아버지 앞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불당 근처로 가자 긴 줄이 보이더군요. 사람들은 나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불당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나는 용기 내어 할아버지 조각상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세상에! 줄은 부처님에게 절을 하기 위한 줄이었어요. 사람들은 부처님에게 절 하고는 이내 옆에 엎드려 있는 할아버지 조각상으로 갔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엉덩이를 치켜 올린 채 엉거주춤 엎드린 조각상 옆에서 할아버지의 종아리와 갈라진 발꿈치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부처님의 축복이 그들의 손을 통해 할아버지에게 모두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거대한 자석에 이끌려 세상과 내가 순식간에 붙어버린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밀어내기만 하던 모든 생명들이 한 순간에 나를 껴안아 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해받는다는 것, 수용된다는 것, 그리고 연결된다는 것 그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느꼈습니다. 그 때 알았어요. 나는 살고 싶구나. 마음을 표현하고 같은 감정을 나누며 살고 싶구나. 진정 원했던 것은 그런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구나. 지구의 자전축이 바뀐 듯한 엄청난 깨달음이었어요.

뒤돌아 조용히 사원을 빠져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물가에 처음 얼굴을 비췄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낯섦. 두려움. 그러나 비로소 존재가 명징하게 형상화되던 느낌. 어쩌면 사람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반짝이는 거라고. 나를 비춰주었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토굴로 돌아온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조각칼을 든 순간부터 내게 찾아온 변화들에 대해서요. 이건 죽음의 징조가 아닐 거라 생각 들더군요. 그러면 나는 누구일까요? 흔들거리는 꼬리는 여전히 너는 원숭이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품안에서 벗어나려는 비둘기처럼 생각들이 파닥거렸습니다. 너는 사람이야. 아니야, 너는 원숭이도 사람도 아니야.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런 존재가 나뿐일 거라 생각하니 우울해졌습니다. 조각하는 꼬리 달린 사람? 조각하는 다리 곧은 원숭이? 키요마! 찰나에 어떤 에피파니가 관통했습니다. 등 굽은 소녀와 키요마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합쳐졌습니다. 설마 이 넓은 세상에 나만 이런 기괴한 경험을 할리는 없겠지요. 시장파 원숭이에게 당한 후 키요마의 생사도 알 수 없었으니까요. 조각상을 좋아했던 키요마도 나와 같은 일을 겪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무엇으로 키요마인지 확인할까요? 그저 눈 밑 상처로? 머리카락 한 움큼이 하얗게 탈색되었다고 해서? 말을 할 수도 없는데 무엇으로? 이래서 꼬리가 남아있던 걸까요? 그녀가 나와 같다면 꼬리를 숨기고 있을 겁니다.

밤이 되어 키요마가 있는 작업장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작은방 문틈으로 불빛이 흘러나옵니다. 소녀가 침대에 앉아 목각인형을 다듬고 있었어요. 틈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굽은 등과 야윈 어깨, 작은 키, 저 헐렁한 옷 속에 꼬리를 감추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어두운 문 뒤에 숨어 살며시 원숭이 소리를 내었습니다. 끼이잇 낏낏. 키요마와 내가 유적지에서 조각상을 보며 내뱉던 감탄의 소리. 원숭이 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소녀가 만지작거리던 조각상을 내려놓았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소리내보았습니다. 끼잇 낏. 쇠붙이로 목구멍을 긁어내리듯 불편했습니다. 소녀가 두리번거리며 문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나도 어둠속에서 한 발 앞으로 나섰습니다.

순간 그녀가 움찔하며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그러나 등을 돌리지는 않더군요. 불빛을 등지고 있는 그녀의 실루엣을 타고 광채가 퍼져나갔습니다. 입을 열려는 순간, 키요마와 내가 원숭이였을 때 우린 이름이 없었다는 사실. 지금 내 모습이 예전 원숭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그녀를 무어라 부를지 알 수 없어 망설였습니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했어요. 알아보는 것 같기도, 모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던 원숭이, 같이 조각상을 감상하던 그 원숭이가 나라는 것을 밝혀야 했습니다. 망설임 없이 옷 속에서 꼬리를 꺼내 곧게 세웠습니다. 그녀가 키요마라면 끝이 휜 내 꼬리를 알아보겠지요.

“…….”

침을 꿀꺽 삼켰을 뿐 그녀는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 때 창고 문이 열리며 왁자지껄 남자들이 들어왔습니다. 당황한 나는 버릇대로 꼬리를 휘두르며 우왕좌왕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 미동도 없던 그녀가 순식간에 내 손을 낚아채어 자신의 방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재빨리 방문을 닫았습니다.

“스승님. 누가 그 조각상을 만든 걸까요? 이번 달 지역신문에도 기사가 실린다는군요.”

“그럴만하지. 사실 나도 몹시 충격 받았으니까.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작품일걸세.”

소녀는 조각 장인과 일행들에게 차를 내주고는 조용히 그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역시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슬그머니 내가 숨어있는 방을 쳐다보았을 뿐입니다. 나는 한참 더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벗어나면 원숭이 인간은 오직 나뿐인 것이 되니까요. 공포가 밀려들었습니다. 원숭이도 사람도 아닌 제 3의 존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막막했습니다. 답답해하며 창문을 넘어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토굴로 돌아오는 길에 왜 꼬리만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생각 들더군요. 기다리면 꼬리도 사라지고 완전한 인간이 되는 걸까? 한동안 꼬리가 사라지길 바라며 지켜보았지만 꼬리는 오히려 더 튼튼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섭리의 속내는 알 수가 없더군요. 현상이 벌어지면 그저 치열하게 사유하고 무작정 살아내는 것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결국 알 수 없는 진실 앞에는 진실을 대하는 자세만이 남는 거라 생각 들더군요. 믿어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조각하던 소녀는 나의 원숭이 친구 그녀라고. 세상에는 그녀와 나 외에도 수많은 꼬리 달린 인간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그저 그녀가 보여준 호의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진실보다는 진실에 대한 믿음이 때로는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것이 진실이든 나 하나 살기 위한 자기기만이든 상관없습니다. 역사는 돌연변이들의 기록이고 그 한편에 원숭이도, 인간도, 원숭이 인간도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니까요. 소녀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키요마, 좋은 어머니 키요마. 내 친구 키요마. 그녀가 언젠가 원숭이 인간의 굿마더가 되어주길 바라면서요.

그날 밤 나는 꿈 한 번 꾸지 않고 단잠을 잤습니다. 모든 원숭이 인간을 위해 빛을 쏘아 올리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다음 날 곱게 단장하고, 꼬리를 빳빳이 세운 채 사원으로 갔어요. 할아버지 조각상 옆에서 축복하는 부처님을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그 때까지 쏟아졌던 찬사는 원숭이 놈의 장난질로 폄하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원을 찾던 신도들이 발길을 뚝 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당황스럽더군요. 따뜻이 비춰주던 거울이 이렇게 덧없이 사라지다니요. 모래성이 한순간 무너지듯 참으로 허망했습니다.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지요. 조각은 나의 모든 것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등도 곧게 펴지더군요. 내 작품에 스스로 만족할수록 성대와 구강구조가 정교해졌어요. 그러자 곧 말이 터지더군요. 글도 배웠고요. 돌연변이에 대한 책을 계속해서 찾아 읽었습니다. 내면에서 기인하는 흔들림 없는 자아상을 찾고 싶었으니까요.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정부기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다음은 당신이 신문에서 본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내가 걸은 진화의 역사입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횡단의 역사지요. 꼬리를 밝힌 것에 후회는 없어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해받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당신과 나라는 별 사이에는 1.4%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거리가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정 당신들이 진화를 바란다면 더 이상 다윈의 진화만을 기다려서는 안 될 겁니다. 서로를 가능성의 열린 존재로 바라보며 횡단과 진화가 동등하게 교차할 때 말 그대로 세계는 진화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미래는 나와 같은 원숭이 인간이 더 번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당신들에게 이야기를 건넨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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