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윤현 씨는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해맑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꿈이다. 그때까지 ‘현장’에서 땀 흘리면서 선한 영향력을 퍼뜨려 나가는 메신저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
인터뷰 약속을 잡고, 그 이튿날 금남로에 자리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명함지갑을 한참 뒤적이며 “하는 일이 많다보니, 명함도 여러 개죠. 골라서 드리다보면 꼭 사기꾼 같아요.” 호탕하게 웃으며 한 장 건네준다. 오늘 그의 ‘픽’은 ‘5·18NOW’ 대표 최윤현이다.
![]() |
5·18 알림광고로 새단장한 망월공원 묘지 앞 정류장에 앉아있는 최 대표. |
“5·18에 대한 ‘일베’(일간베스트)들의 왜곡이 심각할 때였죠. 광주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했어요. 전야제 날 친구들, 직장동료들 10명과 함께 ‘불꽃원정대’란 이름으로 광주에 왔습니다. 그때 광주의 첫인상은 ‘뜨거움’이었어요. 오월의 뜨거움, 도시의 뜨거움, 시민들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함이 뇌리에 박혔죠. 서울로 돌아와 문화기획사 ‘최게바라’를 설립했는데, 설립일을 5월18일로 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광주 방문은 문화기획자 최 대표의 행보에 큰 실마리가 돼줬다.
그는 문화기획에 있어 ‘의미 있는 일’을 벌이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 대표의 기획이 재미가 없다거나 난해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 속에서 작은 실천 하나만으로도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SNS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것,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것들이다.
![]() |
5·18NOW가 제작, 배포한 SNS프로필용 사진. |
“80년 5월엔 주먹밥을 만들어 나눴던 일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힘을 싣는 방법이 돼줬어요. 주먹밥이 일종의 사회참여 방법의 하나였죠. 허나 지금은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에 있어 장벽이 꽤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를 허물어주는 것, 쉽게 풀어주는 것이 문화기획자인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광주에서 벌인 일들은, 어쩌면 그가 서울사람이었기에, 어떤 면에서 철저히 외부인이었기에 가능한 게 많았다. 어떤 문제를 볼 때, 한 발 물러나 보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바깥의 시선에서 바라본 광주의 빈틈을 그가 알아챈 것이다.
먼저 최 대표는 올해 5월에 5·18을 기리는 프로필용 사진을 제작, 배포에 앞장섰다. 매해 4월이면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노란리본이 물결처럼 이는데, 5월엔 왠지 조용한 것이 섭섭해서였다.
“청년들 1000명을 광주로 오게 하는 것 보다, 1만 명의 프로필사진을 바꾸는 게 쉬울 수 있겠다 생각한 겁니다. 젊은 세대들이 쉽게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기리는 방법이니까요. ‘40년을 밝혀 온 5·18 저항의 역사’를 새긴 프로필용 사진이 꽤 퍼져나갔어요. 청년들은 물론 어른세대들의 참여도 돋보였고요.”
![]() |
2013년 광주를 첫 방문한 최 대표가 ‘불꽃원정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
“내년에는 오월 사적지가 있는 정류장 모두를 바꾸어 보고 싶어요. 사실 마음만 있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180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상의 ‘사소함’에서 비롯되는 일들이 제가 하려는 기획의 지향점이죠.”
그는 ‘와이파이’와 ‘횃불’이 만나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발 빠르게 번져 나가는 와이파이의 속성과 5·18의 정신이 ‘횃불’과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어짐’의 접점을 찾는 일이 그의 주요한 업무이자 역할이다.
최 대표가 한창 진행 중인 ‘위드홍콩’(With HONGKONG) 캠페인 또한 ‘이어짐’ 프로젝트의 하나다. 올 1월부터 이어 온 ‘위드홍콩’은 홍콩의 민주주의 시위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서 펼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라고 해서 거한 것은 아니고, 그저 사진 한 장을 전함으로써 ‘연대’와 ‘응원’을 표하는 일이다.
![]() |
홍콩시위에 참석한 최 대표. |
그가 그리는 오월 광주의 모습이 있다. 구체적이고도 명확하다. 오래 고민해 온 흔적일 터다.
“사실 2013년 처음 왔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입니다. 머릿속에 ‘전야제’ 행사를 꾸며 보았죠. 5월 정신을 잇는 다양한 사회단체들, 불의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조직들을 초청하고 싶어요. 한 달 간 연대·인권·저항·평화 등 각 주제별 주간을 설정해 워크숍·세미나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으면 해요. 지금의 행사가 공연 퍼포먼스의 무대 중심이었다면, 제가 꾸미는 전야제는 금남로 거리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난장무대가 되는 겁니다. 이들이 준비한 콘텐츠들을 다양하게 구성, 시민들의 참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특히 그는 이르면 내년 5월에 ‘5·18 록페스티벌’을 시도하고자 한다. ‘록’(Rock) 장르가 가진 저항과 사랑, 평화의 정신을 오월 정신과 잇고자 함이다.
“록페스티벌은 광주에서 열려야 가장 어울립니다. 광화문이나 종로에서 열리는 느낌하고는 전혀 다를 수 있거든요. 광주만큼 락에 깃든 정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봅니다. 금남로에서 열려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 왔으면 좋겠어요. 무대에 서는 이들, 관객들, 시민들 모두가 ‘오월의 정신’이 지금, 여기, 이곳에서 흐르는구나 체감했으면 합니다.”
그가 이를 계획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광주의 풍부한 인적자원을 믿어서다. 최 대표가 보기에 광주는 문화기획 부문에 있어 서울보다 더 ‘기회’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선후배들 간의 연대도 강하다. ‘허리’를 이루는 40~50대 선배 기획자들이 많아 참 복받은 도시같다 한다.
앞으로 그의 꿈은 “해맑게 사는 것”이라 밝힌다.
매일 무언가를 기획하는 사람에게 얻은 대답치곤 단출해 더 좋다.
“걱정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해맑게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 지금처럼 70대가 돼서도 ‘내일 뭐하지?’ 고민하는 게 제 꿈이에요. 언뜻 쉬워 보이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때까지 ‘현장’에서 땀 흘리면서 선한 영향력을 퍼뜨려 나가는 메신저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