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판이 생각해야 할 ‘복기’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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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판이 생각해야 할 ‘복기’의 미학

고선주 문화특집부장

[데스크칼럼] ‘복기’(復棋·復碁 )는 수 싸움이 치열한 바둑 용어다. 사전적으로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해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본다는 의미다.

그래서 복기만 잘해도 평균 이상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아닐까. 이 복기를 문화정책의 골격을 잡아가는 관계자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소신을 가지고 실행했다고 항변하거나 우리 부서 소관이 아니라고 말하며 빠져 나가는 길도 여러 갈래 마련해 놓았을 걸로 사료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마당이라면 잘된 정책도, 잘못된 정책도 동시에 공존한다. 마당은 늘 수 싸움이 치열한 실험장이니까. 이중 잘된 정책은 널리 전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도록 하는 게 혈세를 매우 타점높게 쓴 사례가 될 터이니 적극 권장을 해도 부족하다.

다만 잘못된 정책의 경우는 빠르게 손절해야 한다. 잘못됐음에도 그것을 무한 반복한다면 이는 후에 구태의 대표명사로 귀결될 것이다.

구태는 사전적으로 뒤떨어진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규정된다. 구태는 쉽고, 복기는 어렵다. 구태는 늘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무한 반복이니 머리 쓸 일도 없다. 바꾸지 않으면 바꿔서 초래되는, 온갖 불편을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심사 역시 구태다.

이에 반해 복기는 여간 불편하지 않은 게 아니다. 어쩌면 판 자체가 갈릴 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 싸움이 끝난, 처참한 몰골의 판을 들여다보며 그것을 확인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수가 잘못됐는지 계속해서 자신의 오류와 마주쳐야 해서다. 잘못된 수를 계속 확인해야 하니까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구태와 복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다. 복기를 하려 하지 않는 마음이 구태의 빌미가 되는 것이고, 복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구태를 차단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는 확신이다. 이것이야말로 한끗 차이가 아닐까.

하지만 이 한끗 차이가 불러오는 결과는 결코 한끗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가령 ‘남광주 역사’ 철거는 한끗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철거쪽 사람들은 당시에는 숙고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광주의 자산 하나를 실종시켜버리는, 엄청난 일을 했다는 핀잔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남광주 역사 철거는 광주 근대문화건축의 한 페이지가 찢겨져 나간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태봉산을 깎아 도심 호수인 경양방죽을 매립한 일 역시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처럼 무지막지한 철거 역사는 당시에는 성공한 정책이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잘못된 정책이었다는 결과에 무게가 실리는 듯하다.

이런 실책이 있었음에도 문화판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구태와 복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고 있다.

어떤 정책에서는 왠지 비문화인 출신이 입안과 집행, 그리고 실행의 최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류의 정책은 간극과 괴리감이 너무 크게 와닿는다. ‘모르면 용기있다’고 하는 게 하나의 명제로 힘을 얻으면 안되는 일인데, 힘을 얻어가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든다.

실제 필자의 촉은 잘못된 경우가 부지기수이지만 어쩌다 한번씩은 야무지게 쪽집게처럼 맞추기도 한다. 이번에는 ‘이렇게 결론나겠지’ 하는 것들이 공청회니 포럼이니 등등의 절차를 밟았으면서도 잘못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목격했다. 대표적으로 필자는 문화전당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지하건축물 같은 생각이 들뿐이다. 랜드마크라는 생각도, 문화허브라는 생각도, 문화발신지라는 생각도 지금으로서는 갸우뚱하다. 훗날은 어떨지 모르지만.

수 싸움은 피를 말린듯해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지만 피하는 순간, 바둑판 밖에서는 졸속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졸속이 모이면 구태가 되는 것 아닐까.

구태와 복기는 한끗 차이다. 이 한끗의 격차는 후에 엄청난 결과를 불러온다. 그러니 다시 구태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광주 문화판 전체를 펼쳐놓고 복기를 한번 해보기를 권한다. 문화판의 시선이 점점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부지로 향하고 있는 것은 왜 일까.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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