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균수 칼럼/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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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균수 칼럼/ 전두환

주필

5·18 학살자 전두환 씨가 끝내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떴다.

1931년 경남 합천 태생인 전 씨는 육사 졸업 후 1961년 5·16군사쿠데타 직후에 조직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장실 민원비서관을 지냈고, 1964년에 ‘하나회’를 결성하는 등 젊어서 이미 정치군인의 길을 걸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인 10·26사태 이후 하나회 소속 군인들이 진급 등에서 불리하게 되자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 씨는 12월12일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김재규 내란사건 혐의로 불법 연행하는 하극상을 통해 군부를 장악했다. 당시 소장이었던 전 씨는 몇 개월 사이 중장과 대장으로 승진한 후 예편해 최규하 대통령을 겁박, 중앙정보부장까지 맡았다.

5·17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하자 계엄군을 투입해 강제로 진압함으로써 권력의 실세로 자리 잡았다. 광주를 그의 정권탈취 먹이로 삼은 것이다.

그 해 6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상임위원장이 된 뒤 8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으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됐고,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로 2월 개정된 5공화국 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2·12사태로부터 15개월여 만에 군사쿠데타에 의한 정권장악을 완성한 것이다.

정권을 잡은 뒤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을 단행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았으며, 학내에는 경찰을 상시 배치해 대학을 ‘짭새들의 놀이터’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재임 기간 그는 민주운동 세력 억압에다 간첩조작과 노동운동 탄압 등 끊이지 않는 악행으로 군부독재의 끝판을 보여줬다.

임기 말에는 호헌을 강행하려다 국민적 반발에 부딪쳤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기폭제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한국 현대정치사의 분기점인 6월 항쟁을 불러오게 했다.

퇴임 후 백담사에 은둔했으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5공 비리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끊이지 않았고, 전 씨는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검찰에 고발됐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처리였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여론이 들끓었고 헌법재판소는 성공한 내란도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어 국회에서 5·18 특별법이 제정·공포되자 전씨는 재수사 끝에 구속돼 군사 반란을 주도한 혐의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10개의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 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특별사면으로 그를 풀어주고 말았다. 추징금은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며 납부를 버티다가 자금 추적 등을 통해 1200억 여원을 집행, 현재 956억 원을 미납한 상태다.

전 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다.

전씨는 1심에서 3차례, 2심에서 1차례 광주를 찾았으나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대신 “말조심해, 이놈아” “이거 왜 이래”라며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전 씨는 1·2심 모두 재판부 이송 신청과 관할이전 신청을 잇달아 내면서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1심 재판 중인 2019년 11월 골프장 나들이에 이어 12·12 오찬까지 파렴치한 그의 행동은 5·18 희생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전 씨는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으나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다.

지난 27일 전씨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부인 이순자씨가 대리 사죄를 했으나, 이마저도 전씨 측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고 실세였다는 점에서 계엄군의 발포를 최종으로 명령한 살인마이고 학살자이다. 백일하에 드러난 것만으로도 그 죄를 나열하기조차 힘들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반성도 하고 사과도 한다는데, 전 씨는 그냥 저세상으로 갔다. 참으로 지독한 사람이다.
여균수 기자 dangsannamu1@gwangnam.co.kr        여균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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