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사유들 정리해가면서 내면 투영한 시 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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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

"시적 사유들 정리해가면서 내면 투영한 시 쓸터"

[광주 작가] 의사 시인 한경훈
문학과 의학 자유롭게 넘나들며 시적 세계 펼쳐
고독 깊어져 시 속 쓸쓸함 증폭 덧난 상처들 치유
제2시집서는 난해함 극복 위해 서정시편 구상 중

의사 시인 한경훈씨는 “의사여서 문인들보다는 조금 더 유리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생업을 미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단지 문학적 사고와 의학적 사고를 나눈다는 것은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은 철저하게 삶을 응축한다. 다만 생과 사의 극단적 공간이나 현장의 체험들은 주저하기 마련이다. 그로부터 파생된 격정적 감정의 직접적 서술의 위험성이 있어서다. 설령 서술자가 트라우마로부터 완벽하게 탈주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그것에 대한 재해석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터. 어쩌면 무수히 많은 생과 사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문단에도 의사문인들이 제법 많이 등장해 있다. 이들은 두 가지 패턴으로 분화해 나간다. 의료현장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든가, 아니면 ‘의학은 의학이고 문학은 문학이다’로 분리해 접근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후자는 흔하게 많이 접할 수 있는 유형이다. 그러나 전자는 그 사례가 많지 않다. 의료인이라고 해서 의료현장을 무작정 다 원천 차단하지는 않는다. 간혹 의학용어가 등장하거나 특유의 의료 현장을 간파할 수 있는 시적 암시를 복선으로 투영해두는 시들은 간간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 체험을 체화해 철학과 결합, 다층적이고 복합적 구도의 시편을 엮어 한권의 시집으로 낸 경우는 드물다. 건축을 전공했던 일제 강점기 시인 이상이 그 분야만의 특이한 경험과 시적 구조를 창출했듯, 신경외과에 재직하며 그 경험들을 시적 사유로 끌어들여 첫 시집을 낸 현역 의사가 있다. 광주 하남성심병원 신경외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전남 나주 출생 한경훈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올 3월 시집 ‘귀린鬼燐’(현대시학 刊)을 펴냈다. 펴낸 뒤 4개월 여가 흘렀지만 시집이 팔리지 않는 시대, 그의 시집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예스24 같은 곳에서는 이미 3000부가 판매돼 품절됐다고 한다.

그의 시편들은 시인이 철저하게 비틀고 비틀어버린 사유로 다소 난해해 읽기가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시인은 한번만 꼬아도 어려울 수 있는 데 거기다 한번 더 꼬았으니 아무래도 안 어려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한다. 제4부로 구성된 시집에서 절반이 넘는 시들이 다소 읽기가 버거운 게 사실이다. 1부와 3부는 더더욱 그렇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모아 엮어서다.

진료실에서의 한 시인
시집이 출간되기 전 지난해 발간된 한국의사시인회의 제9집 ‘진료실에 갇힌 말들’에 수록된 그의 시 ‘참을 수도 없는’에 보면 그가 처한 현재적 상황들이 그대로 노출된다. 시인은 ‘납 옷 에이프런 단단히 입어/튕겨 오르는 핏덩이 온몸 무게로 가라앉히면//손가락 명령 신뢰치 못한/흥건한 공포가 너를 휘돌려 쳐다보고//육안을 압축해 돌발로 번져오는 광각과/번잡한 그림자//*//숙명이 뚫지 못할 땅 위에/무신경으로 던져진 필멸의 무게들//수술실 이방인 네나 알까/크레졸의 애린 감각 그 문질러대는 애환을//여기 누구의 재촉으로 거두어 둘 수 있을까/이 눈먼 의지와 열정의 가벼운 수사를’이라고 시상을 전개했다.

이 시는 참을 수 없는 극단을 넘어선 경계의 체험을 담담하게 시로 풀어내고 있는 듯하다. 몇몇 용어는 생소하기 이를 데 없고, 일상적 단어들의 배열마저 기본 문법과는 조금 다르게 배열된다. 그러다 보니 그의 시편은 종종 깊은 고민을 다해 읽어야 이해의 단초를 찾아갈 수 있다 하겠다. ‘귀린’에서 만난 의사생활을 투영한 ‘눈 있는데 볼 수 없네’ 등의 시편들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다. 그는 이처럼 문학 안에서 문학으로만 그치지는 않는 듯하다. 그는 다른 문인들이 오로지 문학만을 가지고 있지만 의학이라는 특정분야를 하나 더 가지고 있기에 시적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는 문학과 의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펼쳐가고 있다.

이런 풍의 시가 난해하다 보니 문단에서는 공감의 폭이 좁아지는 바람에 그의 시를 쉽게 발언하지 않으려는 기류가 포착되기도 했지만 진지하고 깊이있게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그가 시에서 말하고 싶은 사유가 무엇인지 점점 눈치 챌 수 있다. 어떤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게임과도 흡사한 게 그의 시편들 읽기가 아닐까 싶다. 때로는 그에게 시를 쉽게 쓰라고 수차례 말해주고 싶었으나 같은 색깔의 시풍이 넘쳐나는 시대에 독특하게 전개되는 그의 시적 영토가 지역 문단에 오히려 귀하게 다가왔다. 그는 요즘 고독과 대면해 있다. 오랜 꿈이었고, 그 꿈을 펼쳐놓으면 고독이 해소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정신적 세계를 담아 시집을 냈음에도 고독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문득 고독을 대면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지난 4월 목포 예술행동공장에서 홍성담 전정호 박성우 화가와 함께한 한 시인(왼쪽 두번째)
“올 3월에 시집을 내고 생각을 정리 중이죠. 그런데 시집을 묶어 펴낸 뒤 더 고독해졌네요. 그 사이 생각들을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고독하더라도 몰입하고 하겠지만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감이 찾아왔죠.”

아마 이는 주체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그는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에 대한 물음을 자신에게 줄곧 던져온 까닭이 아닐까. 그는 어리석었을 때 공명심이 있었고, 잘난 척 했었다고. 그런 기류의 생각들을 정리해 시집을 낸 것이었는데 인간적 쓸쓸함을 더 느낀다고 했다. 물질과 유물론적으로까지 생각하다가 그 자체도 쓸쓸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전언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고독의 상황에서도 자기 정리를 자주 시도한다. 이런 정리를 그는 ‘자기주체화’라고 들려줬다. 자기주체화로 정리된 생각들은 다분히 자기방어기제(마음속에 서로 반대되면서 충돌하는 2가지의 심리)적 개념으로 규정된다. 그는 직업적으로 너무 힘들다보니 극복 방안을 강구하는 과정 속에서 자기방어기제를 어떻게 만들어갈까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는 귀띔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문학 안에서 쓸쓸함을 더 증폭시키는 방식을 구사했다. 그랬더니 덧난 상처들이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현장에서 맞닥뜨려온 죽음들을 보면서 종교가 있는 건지, 사후세계가 있는 건지를 자연과학적으로 바라봤다. 이를테면 니체 등 실존주의자들의 철학에 한때 탐닉했듯, 실존주의적으로 조망해 그런 것은 없다고 결론내렸다가 나중에 우주론적으로 보면서 ‘먼 생이 있는 것이구나’를 깨쳤다. 그러다가 지금 그가 당면한 고민의 지점들에 진입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산 하나를 더 넘어 버렸다”고 표현했다. 시집에서는 ‘먼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시편들을 뒤덮고 있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됐다. 더 나아가 그는 문학과 의학이 결합된 경우가 많다고 전제한 뒤 호주의 한 계간지로부터 접한 신경실존주의가 2000년대 들어와 계속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 ‘눈 있는데 볼 수 없네’ 속 세번째 파트 ‘부기’는 그의 시적 사유가 단적으로 투영된 시이기에 인터뷰 도중 자주 호출됐다. ‘부기’를 호출하면서 시에서 간혹 엿보이는 추상과 관념적 느낌에 대한 생각에 대해 그는 “추상과 관념은 시적 몽환은 아니고, 과학적이고 현대 철학적인 것”이라고 그 개념을 분명히 했다.

‘귀린’
시어의 간극에 대한 그의 단상들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먹는다’와 ‘잡아먹는다’의 차이를 발언했다. 일상적 먹는다는 그대로 해석을 가져가면 되지만, 잡아먹는다는 것은 멸절의 의미라고 밝힌다. 그는 이처럼 시어 하나 하나에 미세한 의미망을 설치해놓고 있는 셈이다. 복잡한 사유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사례가 간파되지만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미적 재구성을 넘어서야 한다는데 공감을 표시한다. 그게 잘못 재구성될 경우 시적 생산자의 자기 만족에 그칠 수 있는 우려를 내비치자, 문학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두번째 시집에서는 첫 시집의 2부와 4부에서처럼 좀더 쉽게 읽힐 수 있는 서정시편들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느낌이 40대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의학 용어의 시적 차용은 두고 두고 그를 창작에 관한한 신중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질적 사고의 결합 등 그의 시편은 지속적으로 융복합의 과정을 거칠 듯 싶다.

마지막으로 어떤 시인이 되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자신의 시가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하며 갈무리했다.

“처음 시를 쓸때 공명심 때문인가, 세상에 대고 샤우팅하는 것인가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쳤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향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는데 시 파편들 속에 이게 하나 더 있었다고 봅니다. 앞서 언급한 자기주체화말이죠. 아직도 미몽에 빠져있는데 언젠가 정리되지 않을까요. 저는 의사여서 문인들보다는 조금 더 유리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생업을 미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니까요. 단지 문학적 사고와 의학적 사고를 나눈다는 것은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적 사유들을 잘 정리해가면서 저만의 내면의 세계를 투영한 시를 써야겠죠.”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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