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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특징은 사설이 정확하고 명쾌하다는 것. 오자가 없으며 맺고 끊음이 분명해 문학적으로도 호평받는 소릿조다. 이면뿐만 아니라 극적인 면을 강조해 애절하고 호소력깊은 소리가 일품이다. 발음이 분명해야 청중에게 소리의 진수를 전할 수 있다는 게 동초의 생각. 이같은 이유로 청중이 온전히 몰입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소릿조로 꼽혀왔다.
이러한 동초제의 매력에 푹 빠져 묵묵히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국악인이 있다. 지난 6월 ‘제22회 명창박록주 전국국악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소리꾼 조혜진씨다.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상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받아도 될까’하는 마음이 컸어요. 걸맞은 소리꾼이 되려면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스승들과의 각별한 인연에 대해 언급했다. 소리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시기 동초제 전승자인 이일주 명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과의 만남은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당시 전남대 국악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이른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소리가 더 이상 재미가 없고 늘지도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부를 계속 해도 될지 진로에 대해 깊은 고민 중이던 그에게 이일주 명창이 들려준 동초제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소리였다. 70대의 연배에도 불구 젊은 소리꾼 못지않게 쏟아내는 소리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다해 소리를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리로 청중을 울고 웃게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저 연세에도 저렇게 소리를 할 수 있다니’하고 감탄했죠. 동초제는 소리 자체가 어려운데 이야기 구성과 표현이 정말 재밌었어요. 감정 전달도 뛰어나고요. 무엇보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제일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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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길 전설 판소리 유파를 말하다’공연에서 ‘동초제 심청가를’ 선보이고 있는 조혜진씨. |
그는 그때부터 지금껏 15년 동안 전주와 광주를 오가며 장문희 명창에게 소리를 배워왔다. 뒤늦게 소리에 깊이 빠진 덕일까. 매순간 소리가 주는 즐거움이 삶을 더없이 풍족하게 만들어줬다. 그는 동초제의 맥을 잇기 위해 소리를 갈고 닦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나주시립국악단원을 역임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로 활동했다. 2016년 광주문화재단 예술활동 선정 ‘동초제 심청가 발표회’를 시작으로 미주LA초청공연 ‘동초제 심청가 연창발표회’, 2017년 ‘동초제 흥보가 발표회’, 2019년 고창 판소리 완창전 ‘동초제 심청가 발표회’ 등을 열었으며 2020년에는 ‘동초제 심청가 5시간 완창 발표회’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소리꾼들은 발표회를 통해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죠. 저도 아주 오래 전부터 완창 발표회를 꾸준히 준비해왔습니다. 10여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장 선생님이 제 곁에서 모든 걸 내어주신 덕분이죠.”
지난해에는 국악 공연 단체 ‘사백연가’의 연창 발표회에서 장문희 명창, 그의 문하생들과 함께 심청가 5시간 완창 무대를 올렸다. 조혜진씨가 광주 대표를 맡고 있는 사백연가는 그와 같은 장문희 명창의 제자 15명이 모여 만들었다. 2020년에는 서울 남산 국악당에서 ‘사백연가-동초의 길을 잇닿다’를 통해 ‘동초제 심청가’를 들려줬다. 올해 하반기에는 전주에서 또 한 번 완창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사백연가는 장 선생님의 소리를 전국 곳곳에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서울과 전주, 광주, 경북 지역의 제자들이 모여 있지요. 해년마다 동초제 심청가 발표회를 열어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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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백연가의 발표회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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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명창박록주 전국국악대전’ 당시 대통령상을 수상한 조혜진씨. |
조혜진씨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만큼이나 국악 교육 활동에도 애정을 쏟는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2008년부터 꾸준히 국악강사로 활동하며 초등학교를 찾아가 국악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는 광산구 풍영초등학교에 출강 중이다.
아이들을 만나며 소통하는 것에서 어느새 큰 에너지를 얻는 자신을 발견한다. 서로 데면데면하게 굴던 아이들이 몇 번의 수업 후 임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최신 음악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이 국악 수업을 재미없어할 것 같잖아요. 실제로 수업을 해보면 푹 빠져서 듣는답니다. 전통 소리를 알리기 위해서는 성장하는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통해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는 게 무척 중요해요. 교과서에 있는 민요를 부르고, 간단한 국악기를 다뤄보고 하면서 다각도에서 교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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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공연 단체 사백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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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진씨는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소리를 들으면 전율이 인다. 쌓아온 예술혼이 발휘되는 것”이라며 “앞으로 저 스스로 부딪치고 깨져가며 만들어내야 할 과정이다”고 말했다. |
“한번 소개되거나 이미 알려진 사람들은 계속 기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알려질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전통문화관 공연처럼 신인이 설 수 있는 상설 무대가 많아져야죠. 그들이 지치지 않고 소리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이요.”
판소리는 삶이 무르익으면서 그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깊이를 더해가는 예술이다. 그는 타 장르를 접목하는 퓨전 국악 등 다양한 시도가 많지만 끝까지 전통 무대를 고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통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아니라 단지 그에게 우리 소리가 제일 재밌기 때문이다.
“퓨전 국악을 보면 정말 멋지고 잘한다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저에게는 전통 무대가 가장 재밌어요. 선생님들의 소리를 들으면 전율이 일거든요. 쌓아온 예술혼이 발휘되는 거죠. 앞으로 제가 스스로 부딪치고 깨져가며 만들어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빈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 김민빈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