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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70억 개의 경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계하 작가 |
·내면 자리한 욕망 해부
·36년 만에 2회 개인전도
그와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일정을 빼낼 수가 없었다. 한 두번 정도 얼그러진 뒤 세번째 만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그냥 잊힐 만하면 나타나는 화가’ 정도로 생각했다. 전시는 궁금했지만 시간이 나지 않는데, 어쩔 방도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그를 만난 게 갤러리 생각상자 전시장에서였다. 그의 전시는 6월16일부터 7월12일까지 많은 관심 속에 열렸었다. 그의 전시는 뜻깊은 자리였다. 1986년 첫 개인전 이후 36년만에 열린 두번째 개인전이어서다. 그는 이 36년 사이에 사랑하던 아버지를 떠나보냈고, 11년 동안 독일로 유학을 다녀왔다. 이 36년의 강에는 그에게 많은 변화를 직면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단순하게는 그냥 삶을 살아낸 것일 수 있으나, 그는 자신에게 가혹하리만치 철저한 듯 보였다. 이제 자신을 조금씩 놓아주면 좋으련만 여전히 그는 자신과 타협하지 않았다. 세상 및 자신과 싸워내느라 36년의 시간은 한 순간 흘러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변화를 온 몸으로 맞서느라 개인 작품 발표 자리 역시 갖는 것이 어려웠을 터다. 이 36년의 강을 건너 오는 사이 자신도 청년에서 예순을 넘은 노년의 시간으로 들어왔다. 전시 당시 그로부터 들은 삶과 회화 전반에 대해 정리, 소개한다.
전시장에 먼저 도착해있던 그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작품을 볼 겨를 없이 전시장 가운데 놓여진 길다란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처음 대면한 그는 범상치 않았다. 웃음기가 빠진 얼굴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진지함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공부 욕구가 강한데다 철학에 남다른 관심으로 인해 당시 철학이 강세였던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1년 동안 독일 철학과 예술을 학습하며 창작의 시야를 넓히는 등 깊이를 더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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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생각상자에서 진행된 개인전 모습 |
그러다보니 충분히 복수의 대학에 출강해 강의를 했을 법 하지만 호남대에서 교양과목인 ‘독일사회와 문화’를 강의했을 뿐이다. 학업과 지식, 철학에 대한 열망이 컸던 그가 유럽에서 경험했던 지식과 예술을 풀어냈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묵힌 듯한 인상이 들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그의 삶은 폭넓은 대외적 활동 보다는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안으로 침잠하며 창작에 더 집중한 것으로 이해됐다. 한참 그의 삶과 회화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전시 출품작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 버렸다. 간단치 않은 그의 예술적 삶에 대해 집중한 뒤 작품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에게 주로 ‘무엇을 형상화한 것이냐’고 물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하는 등 인간과 우주에 관한 것을 다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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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t you, Adam’ |
작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에서의 시각이다. 개개인이 시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경쟁 때문에 황금만능과 물질만능이 빚어진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이에 근거해 우리가 만들어가는 시대의 방향성이 맞는가를 무수히 많이 묻는 듯하다. 이는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가닿는다는 생각이다. 다시 한번 그는 자신의 테마가 ‘본질에 관한 물음’이라며 이를 뒷받침했다.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본 그의 작품은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났다. 작은 사각 모양들이 화면에 질서정연하게 무수히 많이 반복되고 있는데다 적색의 선, 흰색, 깊은 바다 색, 그리고 필자의 눈에 잡히는 검은 빛 등이 주된 색조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형태가 있는 반추상과 형태가 보이지 않는 반추상이 섞여 있었다. 작은 사각들은 욕망의 형상을, 깊은 바다 색은 욕망의 색을 나타내는 것이며 흰색은 희망이나 빛을 상징하는 것이자 욕망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더 넓게는 무의식의 색으로 수용해도 된다. 반면에 가로로 세팅된 작품이든, 세로로 세팅된 작품이든 가운데 적색의 선은 원초적 생명력과 생명의 근거로 작동하는 틈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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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진 시간’ |
특히 ‘70억 개의 경전’과 ‘중첩세계’는 정형화된 캔버스의 틀을 깨뜨렸다. ‘70억 개의 경전’은 주변의 의견을 반영한 가운데 캔버스에 절단 효과를 주기 위해 위로 끌어 올려 배치했다. 마치 자른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이 작품은 현시대 존재하는 인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현시대 인구수 만큼 경전이 있을 것으로 상정해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매개로 경전을 설정했다.
또 ‘중첩세계’는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 캔버스 가운데를 절단해 비스듬히 겹쳐놓아 관람객들이 중첩된 캔버스를 통해 작품 의도를 이해하기를 희망했다. 이 중첩은 욕망의 겹침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의 도록 끝 자락에 보면 프로필 사진이 독특하게 다가왔다. 정면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는 사진이어서다. 얼굴을 고의로 들어내지 않으려는 작가의 고육지책이었겠지만 그간 그가 많은 시간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작업에만 매진해온 시간의 잔상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철학적 서사를 암시하는 것인가로 생각했지만 사람 만나는 것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에만 신경썼다는 말에서 그의 프로필 사진이 저렇게 비정형으로 쓰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지면에 소개하기 위해 얼굴 사진을 하나 찍어야 한다는 말에, 그것도 정면 사진을 밝히자 난색을 표했다. 한번도 자신은 ‘공개적으로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냥 작품 이미지만 넣으면 안되겠냐’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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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세계’ |
이처럼 창작만 하느라 세상의 때를 덜 탄 듯 보였다. 그만큼 순수한 예술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날 인터뷰는 그를 알 수 있는 기회이자 앞으로 그가 펼쳐보일 작품의 궤적을 예측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작가의 회화인생은 제3기로 접근해볼 수 있다. 제1기는 1976년부터 1986년까지로 젊고 용기가 있으되, 거칠었던 시기로 대학 4년 때 ‘중앙미전’에 입상을 했으며, 1986년에 첫 개인전을 연 시기로 반추상을 추구했던 시기다. 제2기는 첫 개인전 이후인 1987년부터 2002년 독일에서 고향 광주로 돌아왔을 무렵이다. 이때 그는 공부와 창작을 병행하며 반추상에 대한 시각과 창작적 깊이를 더해가던 시기였다. 제3기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로 제1기와 2기가 형태가 남아있는 반추상이었다면, 이 시기는 형태가 남아있지 않은 반추상의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계획을 묻자 ‘별다른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라는 답을 들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특별한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지금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림 밖에 없기 때문이죠. 제 세계를 좀 더 고뇌해 본질에 가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품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을 겁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