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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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시간

양동민 정치부장

[데스크 칼럼] 지난 주말 전남 화순의 한 시골 마을이 들썩였다.

농사일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이 한적한 산촌 마을에 4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서만 봐 왔던 드라마 ‘허준’의 주인공과 괴짜의사라 불리는 만성통증 전문의, 방송인 등 유명인들이 찾아오자 실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소식을 접한 마을 주민들은 순간 한자리에 모였고,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들의 깜짝 방문은 모 방송의 예능프로그램을 촬영하기 위한 것. 아직 방송 전이라 더는 자세한 소개는 어렵지만, 이들이 시골 어르신들의 애틋한 사연을 소개하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의 아픈 몸을 돌보고 건강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촬영팀은 오락가락하는 비로 인해 습하고 무더운 날씨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림을 담았다.

한적하고 조용한 산촌에 유명인이 등장한 데는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소재가 되는 데 한몫했다는 게 프로그램 제작사 측의 전언이다.

설수안 감독의 ‘씨앗의 시간’이다.

씨앗은 ‘자연의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철학자는 씨앗은 온 우주를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흔히 곡식 또는 채소의 씨를 씨앗이라 한다.

하나의 씨앗이 밭에 뿌려져 싹이 나고 잎과 열매를 맺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물, 햇빛, 바람과 같은 자연의 힘도 필요 하지만 그것을 가꾸는 이의 손길이 필요하다.

토종 씨앗을 지켜온 시골 어르신 모습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씨앗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담은 영화다. 특히 작품 속에는 앞서 밝힌 산촌 마을인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가 배경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 사는 장귀덕 농부가 콩과 들깨, 옥수수 등을 키우기 위한 준비과정과 수확, 그리고 다시 씨앗을 받는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촬영은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1년간 지속됐다.

또한 세청리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모습과 씨앗을 얻는 과정에 얽힌 이야기, 새들의 소리로 작물 재배 시기 등을 분간하는 감각 등도 영상에 담겨 눈길을 끌었다.

이 영화는 지난달 광주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지난 2022년 제14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 대상 수상과 2023년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이 지방에서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연히 방송과 영화 두 프로그램의 관계자(?)가 된 필자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 , 다큐 ‘씨앗의 시간’은 현대인이 놓치기 쉬운 입춘, 우수, 경칩… 등 24절기를 토대로 진행된다.

수 십 년 동안 콩과 호박, 들깨, 옥수수 등의 씨앗을 받고 심어온 농부와 이들의 노동이 지켜온 토종 씨앗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허리가 굽어 땅에 가까워진 몸으로 농사를 짓는 늙은 농부, 이들에게서 받은 씨앗을 심는 젊은 농부 등. 그리고 얼었다 녹는 땅의 풍경을 카메라는 가만히 지켜본다.

무엇보다 농부들 뒤로 빠르게 지나가는 KTX와 초고층 아파트, 태양광발전 등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는 급변하는 농촌의 환경 속에서 농부들의 노동을 지켜보며 지속 되는 씨앗의 시간이 지닌 소중함을 호소하고 있다.

민선 8기가 씨앗을 뿌린 지 1년을 지나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전국의 자치단체장들은 저마다 취임 1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지난 1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2년 차의 힘찬 출발을 알렸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를 비롯한 광주·전남지역 자치단체장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 가운데 강 시장은 신경제지도와 돌봄민주국가, 도시연합, 기후위기와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회복력도시 등 4대 비전을, 김 지사는 글로벌 도정을 목표로 첨단전략과 해양관광지구, SOC구축, AI생명산업화 등 7개 역점시책 추진을 2년차 계획으로 각각 밝혔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씨앗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농부처럼 지역 발전을 희망하는 주민들의 선택을 받고 출발한 지 2년 차를 맞은 민선 8기가 든든한 씨앗을 틔우기를 기대한다.
양동민 기자 yang00@gwangnam.co.kr        양동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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