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시대의 혼인·출산 장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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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역사시대의 혼인·출산 장려책

송대웅 경제부 차장

송대웅 경제부 차장
[취재수첩] 저출생 문제는 시대적 과제다. 정부를 비롯해 각 지자체에서는 저출생 문제 해결에 고심하지만 뾰족한 수는 지금 없다.

이 같은 저출생 문제는 시간을 거슬러 역사시대에도 골머리를 앓는 사회적 문제였다.

당시 혼인과 출생을 장려하기 위해 펼쳤던 여러 정책들을 통해 알 수 있다.

1426년 4월 조선 4대 임금인 세종 때 일이다.

당시 세종은 형조에 “경외 공처의 비자가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백일 동안 주게 하고, 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라”고 지시했다.

또 1434년 4월에는 “사역인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고 형조에 명했다.

이는 산모에게 100일의 출산휴가를 주고, 남편에게도 1개월의 출산휴가를 주는 법을 만든 것이다.

세종은 “임산부가 출산 중 도움을 받지 못해 사망한 일이 있었다. 안타깝다. 출산과 산후조리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여성의 출산휴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부가 돕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며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세종의 출생 장려책은 향후 조선의 헌법으로 불리는 경국대전에서 부녀자가 임신한 경우 출산 전 30일, 출산 후 50일 등 총 80일의 휴가를 주고, 남편에게는 산후 15일의 휴가를 준다는 규정으로 완비됐다.

출생을 유도하기 위한 혼인 장려책도 다수 있었다.

경국대전 예전 혼가 조항에는 ‘남자 나이 15세, 여자 나이 14세가 되면 혼인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기록 돼 있다. 또 혜휼 조항에는 ‘사족의 딸로 나이가 30세가 가까우면서도 가난해 시집을 못한 자는 예조가 왕에게 보고해 자재(일종의 재물)를 헤아려 지급한다’, ‘집안이 궁핍하지 않은 데도 나이가 30세 이상이 차도록 시집가지 않은 자는 그 가장을 엄중하게 죄로 다스린다’고 규정했다.

조선후기 대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도 저서 목민심서를 통해 국가 주도로 혼인을 장려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출산 장려책은 동서고금을 막론했다.

기원전 1세기 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결혼, 출산하지 않는 자에게 독신세 부과, 선거권 박탈 등과 같은 불이익을 주는 ‘정식 혼인에 관한 법’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개인의 자유를 심히 침해하는 얼토당토 아니한 정책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기 충분하다.

다만 합계출산율이 소수점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이고,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날로 부정적인 점에서 역사시대의 정책들은 계속해 회자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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