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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
공간을 가득 채운 습한 공기의 무게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에어컨을 향해 손을 뻗는다. 게다가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습한 공기의 무게가 콜라보되는 한낮의 시간에는 거리를 걷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용기가 필요하다.
어제 잠깐 걸었던 아시아문화전당의 아시아문화광장도 마찬가지였다. 넓은 공간 돌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잠시 머물러 야외 공간을 둘러보는 것조차 힘든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상상해 봤다.
이 넓은 공간에 초록색 숲이 펼쳐진다면….
오월광주를 추모하는 민주의 숲과 아시아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상상이 더해진 예술 정원이 어우러진다면 좋겠다. 그럼 이 돌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금의 이 쓸모없는 열기는 사라지지 않을까? 사계절의 시간을 알리는 숲의 향기가 새들을 불러 모으고 나비떼를 유혹한다면 끝내 이로운 것은 우리 인간이지 않을까?
여름이 되면 도심 중앙의 열기는 변두리 지역보다 약 1~2도 높다고 한다. 이것을 열섬현상(urban heat island)이라고 설명하는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도시 건축물의 표면이 태양열을 흡수하고 다시 그 열을 재방출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도시들은 열섬현상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빗물분사기, 그린커튼, 옥상녹화, 도시숲 등 다양한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시아문화광장 역시 이러한 열섬현상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이다. 여름철 한낮에는 잔뜩 뜨거워진 돌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광장을 가득 채운다. 덕분에 광장에는 사람이 드물다. 아시아문화전당의 광장만을 본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공연, 전시 프로그램들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시아문화전당의 직원들은 이 돌바닥의 관리에 애를 먹는다. 야외 행사 때마다 넓은 광장을 채우기 위해 수시로 운반되는 무거운 무대 장비들이나 구조물들의 잦은 설치·철거로 종종 돌바닥이 파손되기 때문이다.
행사를 진행하는 업체들 역시 아시아문화광장에서 일하기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한다. 매 행사마다 갖가지 시설물을 설치하고 다시 철거하는 일이 반복하지만 애로사항은 해결되지 않는다.
아시아문화광장의 뜨거운 돌바닥을 걷어내고 도시숲을 조성한다면 이런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지 않을까? 무리해서 야외 행사를 추진하지 말고 자연친화적 녹지공간을 조성해 나무그늘을 만든다면, 때로는 봄의 새싹이, 때로는 여름의 나무 그늘이, 때로는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눈꽃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광장으로 안내할 것이다. 넓은 야외 광장을 억지스러운 문화행사로 채우며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고생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흔히 ‘연트럴파크’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은 연남동 경의선 숲길 조성의 효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녹지 공간이 주는 선물은 온도 저감이나 경관 조성, 마케팅 효과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음을 흡수하고 탄소배출을 낮추기에, 기관의 ESG경영평가는 덤이다.
그래서, 나는 아시아문화광장에 추모의 숲을 만들면 좋겠다. 오월 광주의 상처를 위로하고 광주 정신을 가꿀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 다국적 예술과 초록빛 숲이 어우러져 시민들의 삶에 활력을 주고 광주를 찾는 이들에게 쉼의 시간을 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숲이 내뿜는 맑은 공기와 미세먼지 절감은 저절로 얻는 일거양득의 효과다.
쓸모없는 돌바닥의 열기를 걷어 버리고, 새들과 나비와 사람이 어우러져 사계절의 시간이 온전히 전달되는 초록빛 도시를 나는 오늘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