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걷고 싶은 길과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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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주에서 걷고 싶은 길과 거리

류재준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류재준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기고] 도시의 일상은 늘 분주함의 연속이다. 회색 빛 도시의 공간들이 여유와 사색의 시간를 빼앗아 간다. 그나마 길거리, 공원, 광장, 골목길은 도시의 여유로움을 잠시나마 선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동차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맨땅을 딛고 다니는 시간이 줄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주차장에 내려서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고, 직장 내 주차장에 주차한 후 하루종일 고층건물에 생활한다.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다. 획일화된 고층 아파트에 살다보니 아스팔트, 보도블럭, 시멘트 바닥 외에 흙을 밟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시는 태생적으로 인프라 조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대규모 건물, 건축, 도로의 형성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차량 위주의 거리는 보행자의 안전성을 위협하고 생각의 틈을 빼앗아 간다. 황량한 도시의 거리에 사람의 냄새가 담긴 변화가 필요하다. ‘걷고 싶은 길과 거리’는 또 다른 의미로는 ‘인간을 위한 도시’,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른 새벽 무각사 둘레길을 걷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됐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싸목싸목 해찰하고 걸어도 20여분 남짓이면 한바퀴를 거뜬히 걸을 수 있다. 우중충한 건물들 사이로 초록빛깔 나무가 즐비한 숲속을 거닐면 하루의 시작이 즐겁다.

주말이면 아침에 무등산에 올라가는데 주로 장불재까지 올라 갔다가 내려 오는 편이다. 시내버스 타고 편안히 증심사 주차장 입구에 도착해서 바람재로 방향을 틀어 걷는 편이다. 만약에 무등산이 없었다면 광주라는 도시는 황량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인구 142만명이 거주하는 도시에 우뚝솟은 1187m 무등산은 늘 벅찬 기운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무등산 둘레길도 잘 조성돼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가끔 비오는 날에는 광주호 호수생태원 주변을 걷는다. 생태원 인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커다란 왕버들나무가 있는데 축적된 세월의 깊이를 헤아려 본다. 광주호는 원래 광주시와 담양군 일대의 농업용수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된 인공호수였는데 본래 기능 뿐만 아니라 사계절 자연의 변화와 함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버들길, 풀피리길, 별뫼길, 가물치길, 돌밑길, 노을길 이름처럼 낭만적이다. 연간 30만명이 찾는 광주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상무지구에도 도심을 상·하·좌·우로 관통하는 보행로이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아파트 주민에게 휴식의 공간이자 걷기 운동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즐비한 상가들의 영업공간으로 활용되면서 유유히 걷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가끔 시내에 나오면 ‘예술의 거리’를 지나 국립아시아문화전장(ACC) 하늘정원, 동명동 카페거리를 걷는 것을 즐긴다. 광주폴리를 잇는 길과 원도심 골목길, 푸른길 공원도 걸어볼 만 하다. 특히 경전선 폐선부지 기찻길을 이용해 만든 총연장 8.1㎞, 면적 12만㎡ 이르는 푸른길 공원은 100만그루헌수 운동으로 조성돼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동·남·북구에 걸쳐 조성된 명소로 접근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경관적 가치가 우수하다. 하루 평균 3만여명의 시민이 이용하는 등 시민들이 직접 푸른길 조성·관리에도 참여하고 있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요즘 맨발로 걷기가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서구가 처음으로 2022년 12월부터 금호1·2, 농성1·2동 등에 18개소를 설치했다. 북구는 오룡·매곡·문흥동 등에 8개소를 설치했다. 광산구도 수완·첨단2·신창동 등에 22개소를 만들었다. 남구는 봉선2·행암·효덕동에 6개소를 설치했다. 동구는 산수·지원2·서남동 등에 3개소를 설치했다. 맨발로 걷는 길은 짧은 구간 20∼50m부터 최대 3.4㎞까지 다양하지만, 지속적인 시설보수와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단점이다.

광주의 거리는 다소 아쉬움이 가득하다. 첫째, 어느 장소를 가더라도 거리의 모습이 엇비슷하다. 이로 인해 동·서·남·북, 광산구의 차별화된 거리가 드물다. 둘째, 보도블럭이 실용적, 예술적이지도 못하다. 장마철에는 배수가 되지 않아 해마다 교체하느라 거리가 난장판이다. 특색 없는 보도블럭 설치로 인해 미관상 거리는 더욱 삭막하다. 셋째, 보행자 위주의 도로가 부족하다. 자전거 통행로와 보행자 구간이 구분이 되지 않고 뒤죽박죽 혼재된 상태다.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이 수시로 다니면서 사고를 유발한다. 넷째, 주변 시설과 부조화 뿐만 아니라 상점이 밀집해 있는 곳에는 적치된 물건이 가득해 걷기 불편하다.

내가 바라는 걷고 싶은 길과 거리는 뭔가 이야기가 있는 거리, 사색과 힐링할 수 있는 길, 차도와 완전히 분리된 안전한 길,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면 좋겠다. 또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골목길들은 따로 보존하면 좋을 듯 싶다.

외부 관광객을 위해서는 건물과 상점, 거리의 이야기가 담긴 지도, 리플렛, 전자지도 등을 개발·보급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든 ‘푸른길 산책단’ 모임이 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근처 가게와 연계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 광주지역 곳곳에 골목길과 거리를 기억하고, 즐기는 동네 걷기 소모임이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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