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으로 농사 폭망한 도시농부 그리고 세계 식량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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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농사 폭망한 도시농부 그리고 세계 식량의 날

신수오 광주지속가능발전협 운영위원·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 대표

신수오 광주지속가능발전협 운영위원·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 대표
[기고] 매주 일요일 광주시 북구 장등동 짱똘아재농장에서는 ‘광주토종학교’가 열린다.

1년 동안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고 전통 농사법을 배우는 학교다. 2020년 1기 토종학교를 시작해 올해까지 5기 토종학교를 진행하고 있는데 매해 15여 명의 수강생이 함께 농사를 짓는다. 절기에 따라 1년 동안 80여 종의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씨앗을 증식해 시들에게 나누는 활동을 한다. 올해 토종학교는 가을 농사를 망쳤다. 선선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배추 모종이 추분 절기까지 계속된 폭염으로 뿌리내리지 못해 죽었고 무 씨앗도 발아율이 떨어졌다. 가을감자는 두둑 안에서 싹을 올리지 못하고 전부 썩었고 배추 모종을 다시 심고 무씨앗을 2~3번 더 파종했지만 엊그제 내린 집중호우로 그마저도 망쳤다. ‘농사 어렵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정말 몸으로 느껴지는 기후변화에 망연자실이다. 도시농부 뿐만 아니라 전문 농부도 마찬가지다. 배추 모종 품귀현상은 올해가 거의 처음이다.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오전 서구 유촌동에 있는 ‘유덕동 텃밭정원’에서는 기후농부학교가 열린다. 광주시가 도시농업 활성을 위해 조성한 텃밭정원으로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단체 회원이 텃밭을 분양받아 경작하며 농사기술을 배우고 ‘씨앗에서 밥상까지’ 푸드 마일리지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기후농부로 활동하고 있다. 유덕동 텃밭정원을 개장하고 3년 째, 올해 두 번의 침수를 겪었다. 한번은 기후농부학교를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쏟아진 집중폭우로 허벅지까지 물이 차올라서 혼비백산 대피한 적이 있다.

도시농부인 내가 올해 여러 농사 현장에서 온몸으로 기후변화를 경험하는 동안 우리나라 밀과 옥수수 등의 곡물자급률 심리적 마지노선인 20%가 붕괴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농업’ 자료를 보면 2021년부터 3년간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집계됐다. 주변국인 중국은 102.7%에서 92.2%로 10.5%p 하락했으며, 일본은 27.5%에서 27.6%로 0.1%p 높아졌다. 주변국과 비교해도 꼴찌다. 2008년 일본보다 3.8%p 높았던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8.1%p 차이로 역전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장기화, 미국과 캐나다 중서부 지방의 기록적인 가뭄, 에너지 가격 상승,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등 악재가 겹치면서 국제 식량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의 국제 정세는 ‘세계 7대 식량 수입국인 우리나라가 식량 위기로부터 과연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식량 자급률이 중요한 이유는 식량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 때문이다. 식량 위기는 국내 생산이 급감하거나 해외 생산이 급감하면 일어나는데, 글로벌 식량 공급망 위기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때에 대한 진지한 대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식량 자급률을 현재 수준에서 획기적으로 높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글로벌 식량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해외에서 직접 생산을 통한 식량 공급망을 다각적으로 마련하고, 해외 식량 관련 정보의 수집과 분석 역량을 키우는 연구와 정부 차원의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곳에 대한 투자가 매우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생태계 붕괴 없이 농업 생산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2021년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유엔환경계획의 요청으로 9월 29일을 ‘세계 국제 식량 손실과 폐기물 인식의 날’로 지정했는데 인간이 먹기 위해 생산되는 모든 식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3억t, 1조 달러의 음식이 매년 낭비된다고 한다. 어쩌면 가장 쉬운 ‘새로운 생산’은 농장과 유통과정의 식량 손실을 줄이고 식품 폐기로 낭비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앞서 도시농부들이 경험한 폭염과 집중호우처럼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농업 생산은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변화하는 기후의 속도에 맞는 품종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새로운 특징을 가진 품종을 개발하려면 변화된 기후에 유용한 유전적 특징을 가진 작물이 필요하다. 종의 다양성이 높은 다양한 토종씨앗과 작물들이 재배돼야 할 이유이다. 더불어 현대의 상업농과 대비해 비효율적인 소농 중심의 토종작물이 재배되고 활성화 되려면 우리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우정으로 연대하고 지지할 의무가 있다. 광주 곳곳에서 진행되는 소농과 토종씨앗을 잇는 도시형 농부시장에 참여하고 자급자족적 소농이 가능하도록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은 다양한 농경지를 보존하고 농업 생태계와 품종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다.

뜨거운 지구에서 과연 우리의 밥상은 안전한가? 다음 세대를 위한 밥상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10월 16일 세계 식량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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