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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 대동문화전문위원 |
그때 백범은 39세로 황해도 일대에서 일어난 소위 ‘안악 사건’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총검거되었을 때, 생애 세 번째로 일경에 피체되어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감옥에서의 일화다. 일본 경찰이 신문할 때에는 첫번째 가혹한 고문, 두번째 굶기는 것, 세번째 회유하는 온화한 수단 등 3단계로 했다. 달군 쇠로 온몸을 함부로 지지며 고통과 굴욕을 주는 고문을 집행했다. 그리고 나서는 죽지 않을 만큼 굶긴다. 마지막으로는 좋은 음식도 주고 대우하면서 없는 죄까지 실토하게 하는 회유책을 쓴다. 김구 선생은 그 중에서 두 번째 굶기는 고문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백범일지’에 적는다.
김구 선생은 이미 거물급 독립운동가로 별이 세 개나 돼서(?) 간수들의 대우가 좋았다. 사식을 청해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식은 감방 바깥으로 나오라고 해서 주는데, 같은 방의 이종록이라는 젊은 수감자가 김구 선생의 사식 먹는 모습을 감방 안에서 쳐다보는 것은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방 밖에서 밥을 먹다가, 고기 한 덩어리와 밥 한 덩어리를 입에 물고 방안에 들어와서 입 안에서 도로 꺼내 먹여, 마치 어미새가 새끼에게 물어 먹이듯 했다.’ 김구 선생의 범부(凡夫)에 대한 사랑의 마음에 눈물이 글썽거리지 않을 수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수없이 지나가고 수많은 주검을 독립의 제단에 바치고서야 해방을 맞은 백범은 ‘독립’이라는 목표를 바꿔 ‘통일’과 ‘문화 강국’이라는 민족의 지표를 설정한다. 그 신념이 집약된 아름다운 글이 백범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조하면서 또 적는다. ‘나는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청년에 대한 무한 사랑이다.
김구 선생이 20살 청년이었을 때,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한 ‘치하포 살인 사건’으로 사형수가 되어 생애 첫 번째로 수감된다. 혹독한 일경의 고문으로 온 마음이 갈기갈기 찢겼을 때, 백범은 감옥 자살을 기도한다. 동료 죄수들이 잠든 틈을 타서 이마 위에 손톱으로 ‘충’(忠)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목을 졸라 숨을 끊었다. 동료 죄수들이 깨어 고함을 치며 간수에게 김구의 자살을 알려 가까스로 되살아났다.
1982년 2월 20일. 5·18민주화운동의 영웅 윤상원과 들불야학 시절 먼저 세상을 떠났던 박기순과의 영혼 결혼식이 있었다. 이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극이 ‘넋풀이-빛의 결혼식’이었다. 이때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도정에서 ‘애국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이렇게 노래 부르며 시위 현장에서 민주화를 염원하던 시민들의 꿈과 희망은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그 도저한 발걸음과 외침과 행진과 깃발이 모여들고 합쳐져서 큰 역사의 강물이 되어 ‘민주 세상’의 큰 바다로 흘러갔다.
그 역사의 강물에 보태진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독재의 총칼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목숨을 걸었던 민주 인권의 시민의식이 모이고 모여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국가가 됐다. 혁신, 경제, 안보에서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글로벌 국력 종합 6위는 일본(8위)보다 앞서게 됐다. 백범의 신념대로 ‘K-컬처’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져 세계인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다.
‘충’(忠)자를 손톱으로 이마에 새기고 나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 손에 ‘왕’(王)자를 새기고 국민들을 앞에 나타나 대통령이 된 사람. 두 지도자의 대비된 모습이 오버랩되는 2024년 겨울을 살고 있다.
좌절과 탄식의 시대에 우리는 MZ 세대들에게서 역사의 좌절과 다시 꾸는 새로운 꿈과 희망을 보고 있다. “내 소중한 것들을 지킬 거야” 외치면서 응원봉을 들고 나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불빛’을 자체 발광하고 있는 세대들.
‘사랑도 명예도’와 같은 엄숙한 ‘데모가’가 아니라, ‘아파트’, ‘위플래쉬’,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젊은이들. K-pop을 부르며 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며 시위마저 즐기는 세대들. 우리 시대의 새로운 문화 권력이자 정치 세대로 등극하고 있는 세대들의 문화적 반란을 목도하고 있다.
장갑차의 진격을 막아선 이도 MZ 세대였다. 계엄군의 총구를 몸으로 막으며 ‘부끄럽지 않느냐’고 외쳐 ‘한국의 잔다르크’가 된 이도 MZ 세대. 여기에 화답하듯 젊은 계엄군은 후퇴하면서 ‘죄송합니다’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명령 복종과 양심 사이에서 어설프게 작전을 수행하면서 특수전 병사들은 국회의 탄핵 무효 결정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들의 영웅적 행동에 다시금 우리는 희망의 시대를 신념한다. 우리에겐 이들이 있어 희망과 미래가 있다. 을사년 새해를 맞으며 ‘서울의 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 거리는 새로운 문화 세대가 점령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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