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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
특히 K-POP 팬들은 단순히 음악 소비자를 넘어 독창적인 팬덤을 형성하며 강력한 문화적 연대를 이루어냈다. 이 문화적 연대의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응원봉이다. 본래 공연장에서 아티스트를 응원하며 강력한 팬덤을 보여주는 도구인 응원봉은 팬덤을 상징하는 색상과 개성있는 디자인을 담아 팬들에게 특별한 소속감을 부여한다. 각각의 응원봉은 공통의 빛을 내뿜으며 연대하게 되는데, 이렇게 형성된 응원봉의 연대는 무대를 빛내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화답으로 객석을 빛낸다. 또한 공연장에서 응원봉이 만들어내는 빛의 파도는 시각적 장관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팬과 아티스트 간의 정서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응원봉이 공연장이 아닌 거리를 밝히며, 저항과 연대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지난 12월 3일, 상식과 원칙을 강조하며 출범했던 현 정권은 불법 계엄령을 통해 내란을 일으키며 한국 사회를 큰 혼란에 빠트렸다. 성난 민심은 거리로 모여들었고 2030 세대 역시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런 사회적 위기 속에서 젊은 세대가 들고 나온 응원봉은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며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응원봉 덕분에 엄숙한 투쟁가 일색이던 집회현장에도 K-POP이 울려 퍼졌고, 이로 인해 누구나 집회에 동참할 수 있는 열린 집회 문화가 형성되었다. 한국 시위 문화의 상징이었던 촛불은 이제 K-POP 응원봉으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이 진행한 ‘세상을 바꾸는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남태령에서 경찰에 의해 서울 진입이 저지되었을 때, 수많은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함께 연대하며 밤샘 대치를 극복한 장면은 깊은 감동을 남겼다. 매서운 추위에도 수많은 청년 세대가 시위에 가세하며 가로막힌 트랙터 행진단을 응원했다. 게다가 추위에 떨며 시위에 동참하는 이들을 위해 어떤 이들은 커피값을 선결제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난방버스를 보내며 또 다른 응원을 보탰다. 응원봉이 만들어낸 빛나는 연대가 단순한 위로를 넘어 부조리한 세상을 함께 변화시켜나가는 색다른 전환점이 된 셈이다.
대중문화와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며 연대와 변화를 이끌어낸 응원봉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정치를 만들어낸 메타포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응원봉의 변모는 K-POP 팬덤이 음악적 지지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연대 활동에 참여하며 이루어낸 결과이다. 시민들은 이 독특한 문화적 도구를 통해 서로를 지지하고 힘을 모으며, 사회적 위기라는 파도를 함께 넘어가고 있다.
현재 지속되고 있는 내란 사태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시민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연대하고 저항하는 과정을 통해 또한 극복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응원봉을 든 시민들의 연대가 단순한 저항을 넘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K-POP 팬덤에서 출발한 이 작은 응원 도구는 이제 세대와 계층, 이념을 초월한 매개체로 확장되며 사회적 변화와 연대를 이끄는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겨울이 한참이지만, 봄이 결코 멀지 않았다.
내란의 겨울을 끝내고 머지않아 민주주의라는 따뜻한 봄의 영광을 되찾는 날, 응원봉의 불빛이 금남로 거리를 가득 메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