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동인 광주 동구 자치행정국장 |
지난 6월 21일 광주남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지원1동 주민총회와 마을예술축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폭우 속에서도 600여명의 주민이 모여 ‘우리 마을’을 주제로 한 특별한 축제를 함께했다. 이날 오전부터 진행된 주민총회는 주민자치회 활동 보고와 함께 2026년을 이끌어갈 마을 의제가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결정됐다. 온라인과 현장 투표를 합산한 결과 안전한 마을 만들기, 마을도서관 조성, 마을경제 활성화, 기후위기 대응 선도마을, 청소년 동아리 활동 지원 등의 의제가 선택됐다. 이는 주민 스스로 의제를 발굴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과정이자, 주민총회가 단순한 보고회가 아니라 ‘마을의 공론장’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 열린 축제 한마당은 세대와 세대를, 마을과 마을을 하나로 묶었다. 지원1동은 14개통을 거주지별 네 그룹으로 나눠 ‘머·굴·마·을’ 네 팀 단합대회를 열었다. 협동 공 튀기기, 단어 찾기, 에어 사다리 릴레이, 박 터트리기 등의 경기를 통해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세대가 팀을 이루며 호흡하고 웃음을 나눴다. 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키즈존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면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어울리고 세대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따뜻한 풍경을 연출했다. 평소 이웃 간 교류가 적었던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우리가 하나의 큰 가족’임을 확인하는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3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자생단체의 헌신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됐다. 폭우 속에서도 행사 준비와 진행을 함께한 이들의 노고는 공동체 결속의 실질적 힘을 보여준다.
이처럼 지원1동에서 확인한 성과는 ‘소소한 마을예술축제’가 결코 소소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주민이 스스로 참여해 마을 문제를 논의하고, 예술과 놀이를 통해 소통하며, 일상의 공간을 공동체 문화 무대로 다시 세우는 것, 그 속에서 마을은 살아 숨 쉬고 변화한다. 주민 참여형 예술축제는 공동체 회복의 강력한 도구다. 영국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일본의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주민과 예술가, 방문객이 어우러져 쇠락한 지역을 되살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는 데 기여했다. 우리나라 역시 강릉 단오제, 서울거리예술축제, 전주비빔밥축제 등 주민 참여형 축제를 통해 도시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어 왔다.
광주 동구의 마을예술축제는 이 전통을 잇되, 동별 주민총회와 결합해 ‘생활 자치와 생활 문화가 하나 되는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축제가 단발적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민이 함께 만든 경험은 곧 생활문화 동아리와 공동체 활동으로 이어진다. 작은 참여가 더 큰 참여를 부르고, 추억과 공감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마을은 더욱 풍요로운 민주적 공간으로 변화한다. 추수의 계절 가을, 9월 6일부터 11월 15일까지 학동과 지원2동 등 12개 동에서 펼쳐질 마을예술축제는 또 하나의 문화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남긴 “인간은 이야기 속에서만 살아남는다”는 명언처럼, 6월 지원1동에서 시작된 주민들의 이야기, 그리고 곧 잇달아 펼쳐질 12개동의 이야기들이 모여 광주 동구라는 더 큰 이야기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예술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고,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이해하며, 주민 스스로 마을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 그 속에서 동구는 더 따뜻하고 활기찬 도시로 도약할 것이다. 예술과 주민자치가 만나는 이 축제가 동구의 현재를 밝히고 미래를 비추기 위해서는 많은 주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