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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길호 광주 동구 주민복지국장 |
이에 더해 관식이의 ‘반 바퀴 돌아앉기’가 가장 극적인 장면이 된 것은 새로운 남성성을 대안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애순이를 향한 관식이의 마음은 단순히 애처가 혹은 공처가라 표현하기엔 부족한 그 너머에 있다. 관식이는 아내 애순이의 삶과 꿈, 주체성을 지지하고 존중하는 동반자로서 평등한 파트너십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엄마에게 다정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위에서 지배하거나 소유하지 않고, 곁에서 ‘다정하게’ 존재한 관식이에게 시청자들은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남성은 사회가 요구해온 ‘남성다움’에서 탈출하고 싶은 갈망을, 여성은 남성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은 희망을 관식이를 통해 투사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작가 벨 훅스는 “남성 한 명이 가부장적 한계를 넘을 때마다 여성, 남성, 아동의 삶은 근본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남성의 변화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이 국가들이 바로 성평등한 국가라는 사실이다. 성평등한 국가일수록 여성보다 남성의 행복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다른 기대와 요구에 시달리거나 제한받지 않는 사회는 구성원의 행복에 매우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는 여성의 행복뿐 아니라, 사회적 완벽함에 더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있는 남성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평등은 특정 성별만을 위한 가치가 아니다.
동구가 지향하는 인문도시는 단순히 책과 예술을 가까이하는 공간을 넘어, 사람이 중심이 되고, 시민 개개인의 존엄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도시를 뜻한다. 그렇다면, 인문도시는 무엇으로 측정되고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인가.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많은 시민들이 독서와 다양한 인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이러한 인문적 활동은 시민 개개인의 삶과 일상으로 재현되고, 궁극에는 우리의 구체적인 말과 태도, 관계의 질적인 변화로 표현돼야 한다. 통계나 건축물 같은 하드웨어보다는 시민의 일상 언어·태도·관계가 바뀌는 소프트웨어적 변화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일상은 ‘대화와 성찰의 무대’로, 말과 태도는 ‘공동체적 존중’으로, 관계는 ‘이해와 협력’으로 말이다. 관식이가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고 약자의 자리로 돌아앉은 사건은 애순이와의 관계를 질적으로 전환시킨 변곡점이었다.
성평등은 도시의 인문적 가치와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공동체가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남성과 여성, 청년과 노인, 장애인과 이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차별 없이 존중받을 때, 도시는 내적 성장을 통해 비로소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제30회 양성평등 주간이다. 양성평등 주간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매년 9월 첫째 주를 법적으로 지정한 기념일이다. 그동안 7월 첫 주로 진행하던 양성평등 주간은 2020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 여권통문이 발표된 1898년 9월 1일을 기념해 9월 첫 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 양성평등 주간 슬로건은 ‘모두가 존중받는 성평등사회,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이다. 성평등의 의미와 실천을 확산시켜 남녀 모두가 행복하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