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장면과 정치자금 기부금 공제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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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장면과 정치자금 기부금 공제 그리고 민주주의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변화란 말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규칙이 시대를 따라 바뀔 때 비로소 완성된다.”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는 음식 값이다.

그중에서도 서민들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였던 자장면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시대의 거울이자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1990년대 초반 자장면 한 그릇은 1000원 남짓이었다. 1990년 평균 가격은 1073원으로 처음 1000원을 넘어섰고, 1995년에는 2176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600원 수준이었던 가격이 불과 10여년 만에 두 배 이상 오른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음식 값 상승이 아니라 경제 성장과 원자재 가격 변동, 외식 산업의 변화, 사회 전반의 물가 상승이 반영된 결과였다.

2000년대 이후에도 자장면 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2003년 3083원, 2011년 4220원, 2018년 5011원, 그리고 2025년 현재는 지역별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6500~7500원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4년 말 전국 평균은 약 7000원대 초반, 서울은 7500원으로 가장 높았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인 경북과 부산도 6200원대를 기록했다.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무려 6~7배 이상 오른 셈이다.

자장면 가격의 변화는 단순한 외식 물가의 변동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 생활비 부담, 그리고 서민 삶의 무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더 이상 자장면은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만 불리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게 문득 떠오른다. 바로 정치자금 기부금 세액공제 제도다. 매년 연말정산을 준비하는 직장인으로서 여러 공제 항목을 살펴보지만, 유독 정치자금 기부금 전액 공제 한도가 20여년째 변함없이 10만원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정치자금은 민주주의의 혈액과도 같다. 국민이 낸 세금만으로는 정치의 다양성과 활력을 담보하기 어려워 1972년 정치자금법 제정과 함께 정치자금 기부금 세액공제 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불투명한 정치자금의 흐름과 기업·개인의 비공식 후원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국민이 합법적으로 정치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로 세제 혜택이 마련된 것이다.

이후 1990년대 후원회 제도의 도입과 함께 개인의 정치자금 기부가 활성화됐고, 조세특례제한법과 지방세특례제한법을 통해 실질적인 세금 혜택이 제공됐다. 이는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국민 참여를 동시에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제도는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 10만원 초과분은 15%, 3천만 원 초과분은 25%까지 공제되며, 지방소득세에서도 10% 추가 공제가 가능하다. 즉 10만원을 낸 사람은 10만원을 그대로 돌려받는 구조다. 문제는 이 한도가 수십 년째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장면 값이 30년 사이 6~7배나 올랐듯이, 국민의 생활비와 물가 부담은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정치자금 기부금 공제액은 여전히 10만원에 머물러 있다. 이는 국민의 정치 참여 의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이 정치자금 기부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세제 혜택의 한계로 인한 실익성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는 정치자금 기부금 공제액, 특히 전액 세액공제 한도를 현행 10만원에서 최소 20만원, 나아가 30만원까지 확대해야 한다. 공제액 확대는 단순히 세금을 덜 내게 하는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정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다리이며, 정치권이 특정 기업이나 거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국민의 뜻을 더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작은 금액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 ‘내 한 표가 곧 내 한 푼의 후원으로 이어진다’는 실질적 체감을 국민에게 안겨주고, 정치인에게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책임감을 심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힘이다.

특히 전액 공제 한도를 20만원, 30만원으로 높인다면, 더 많은 국민이 부담 없이 정치자금 기부에 참여할 수 있고, 이는 곧 정치의 주인이 국민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 변화를 통해 지난 수십 년간의 사회 변화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치자금 기부금 공제 제도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게 조정돼야 하지 않을까. 국민이 더 쉽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개혁의 시작이다.

정치자금 기부금 공제액 확대는 단순한 세제 개편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참여를 넓히고, 정치의 투명성을 강화하며, 민주주의를 더욱 빛나게 하는 희망의 제도다. 이제는 제도가 국민의 삶을 따라가야 할 때다. 자장면 값이 오르는 만큼, 국민의 정치 참여를 위한 제도적 지원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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