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시민군 필체…지친 삶에 의지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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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오월 시민군 필체…지친 삶에 의지 불어넣다

■5·18 시민군 필체 폰트 제작 디자이너 정성영씨
‘승리의 그날까지’ 등 서체로 광주정신 전파 주력
현실적 한계 넘어 그래픽툴·프로그램 활용 완성
"하루 버티게 하는 힘 되길"…9일까지 무료 배포

폰트 ‘승리의 그날까지’의 모티브가 된 시민군의 글씨.
폰트 ‘승리의 그날까지’ 제작 과정.
“1980년 5월, 시민군들이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였을 때는 민주주의를 이룩하겠다는 거창한 의미 보다는 내 가족, 친구를 지키겠다는 생각이 먼저였을 거예요.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글씨를 통해 그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폰트(font·글자체)를 제작했습니다.”

1980년 5·18 시민군 필체를 바탕으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폰트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한 디자이너 정성영(38)씨는 최근 이처럼 소감을 밝혔다.

그는 “글씨가 가진 힘은 절실함에 있다. ‘승리의 그날까지’ 폰트는 글씨를 복원하는 것을 넘어 그 마음의 형태 즉, 각오와 의지의 모양을 다시 그리고 싶었다”면서 “어떤 난관에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 의지와 정의로운 마음을 시각화했다”고 설명했다.

조선대 공대를 다니다 3학년 때 시각디자인과로 편입, 현재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그가 폰트를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20년 5·18 40주년 행사 슬로건 ‘기억하라 오월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이 포천막걸리체로 쓰인 것을 보고, 5·18 정신이 담긴 폰트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폰트를 제작해본 경험이 없어 복고풍 글씨체(양진체)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김양진씨의 SNS로 무작정 연락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특히 폰트를 제작하기에 앞서 글씨체를 규격화하기 위해서는 손글씨 200여체가 필요하다. 그는 관련 문서나 사진 등을 통해 모티브가 될만한 글자를 찾아 발전시켜보려 했지만, 샘플로 쓸 글자수가 열 글자 내외여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현실적으로 한계에 부딪쳤다.

5·18 시민군의 필체에 기반한 폰트 제작 및 배포 기념 캠페인 ‘당신의 문장이 응원이 될 때’ 진행 모습.
디자이너 정성영씨는 5·18 시민군 필체를 바탕으로 폰트 ‘승리의 그날까지’를 제작, 무료 배포에 나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러다 최근 그동안 모은 자료에서 보지 못한 사진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 사진자료집 ‘5·18 기억과 진실’에서 발견하면서 폰트 제작이 급물살을 탔다. 1980년 5월 24일 오후 3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2차 범시민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살인마 전두환’ 글귀가 적힌 허수아비를 만들어 분수대 위에서 화형식을 하는 사진이었다. 분수대를 둘러싼 현수막에는 ‘승리의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자 독재없는…’이라는 시민군의 글씨가 뚜렷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한 획, 한 글자로 시작해 한글과 영문 2500자를 그려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툴로, 다시 폰트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옮겨 완성시켰다.

폰트 배포는 디자이너에서 문화기획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던 중 부족한 점을 느끼고 찾아간 문화기획자 양성과정 ‘호랭이스쿨’에서의 경험을 살려 한글날을 시작으로, 오는 9일까지 무료로 하고 있다. 이 폰트를 이용해 기념 캠페인 ‘당신의 문장이 응원이 될 때’도 진행 중이다.

디자이너 정성영씨는 “역사가 담긴 이 글씨체가 다양한 곳에 사용될 때 5·18을 기억하는 본래의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해 기념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다”며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잘 보이는 곳에 써서 붙여두고 매일 보면서 자극을 받지 않나. 이 폰트가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폰트 내려받기 또는 캠페인 참여는 참여링크(tillvictorycomes.tistory.com/page/Archive)에서 하면 된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정채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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