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광주시립극단 지해나 운영실장 |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과 공연의 화려함에 집중하다 보면, 작품의 근본적 메시지와 예술적 깊이가 희미해지기 쉽다. 예술의 창작성과 개성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지나친 장식은 작품의 근간을 흐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현재 예술행정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본 전공은 피아노이다. 대학 시절 나의 은사님은 김대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님으로 엄청난 명성을 가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그리고 문화 행정가이시다.
그 분의 교수법은 모든 음악교육자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고, 제자들은 각종 국제 콩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 국내 음악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그분의 지도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서는 일이 흔한 일이다. 나 역시 10대 시절, 두근거리는 마음과 그분을 찾아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첫 레슨 날, 준비한 곡을 모두 연주하자 교수님은 단 한마디를 던지셨다.
“기본기를 갖추는 게 필요하겠구나.”
오디션을 거쳐 들어간 예비학교 (현 예술영재교육원) 첫 수업에서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수님은 나의 음악을 새로 시작하기를 요구하셨다. 고전 곡을 통한 기본기 훈련, 체계적인 레퍼토리 과제, 손가락 기법과 악보 해석 연습으로 가득 채워졌다.
어린 마음엔 속상함도 있었고, 하루 빨리 대곡(大曲)들을 익혀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런 조급함을 잠시 내려놓게 하시며, 기본부터 단단히 다지는 훈련을 시키셨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교수님은 어느 날, “연주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거야. 무대에 오르면 네 안에 자리 잡은 기본기가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지.”라고 하셨다. 교수님의 교육 방식은 나의 음악 인생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나를 다듬게 해준 시간이었다. 겉멋만 가득한 연주는 순간 반짝할 수 있지만, 근거 없는 화려함은 한계를 드러내며 결국 흔들리게 된다. 창작물의 개성에도 반드시 기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화려한 영상, 화려한 조명, 화려한 음향 시스템 그리고 관객 참여형 공연도 결국 탄탄한 기본기와 예술적 고뇌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예술단체의 행정 총괄로 일하며, 나는 요즘 조직 운영 시스템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한다.
시스템을 만드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는 ‘튼튼한 하드웨어’다. 이 하드웨어는 단순한 장비나 인력이 아니라, 표준화된 규정과 절차, 의무와 책임 등 조직 운영의 근간을 뜻한다. 이 기반이 견고하지 않으면 어떤 구조를 올려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겉돌 수밖에 없다. 눈에 띄는 이벤트나 새로운 시도보다, 지속 가능한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 토대를 먼저 정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체 브랜드 공연 개발과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창출은 모든 공공 예술단체가 안고 있는 공통 과제다. 일시적 흥행이나 외형적 화려함에 집중하기보다, 지금 우리의 조직이 무엇을 갖추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관객 수의 확장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문화예술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현대예술에서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 관람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예술단체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세간의 주목을 받는 방식을 넘어, 기본기?운영체계?시민과의 소통이라는 세가지 축을 견고히 연결해야 한다.
예술성과 시스템, 창의성과 기본기, 단기성과와 지속 가능성은 서로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들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공연과 문화예술의 가치가 탄생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쌓고 있는가? 시민과 함께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기반을 다지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화려함은 순간을 밝히지만, 견고한 기반 위의 예술과 조직은 오래도록 빛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025.12.19 (금) 0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