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인격과 품격을 드러낸다
검색 입력폼
문화산책

언어는 인격과 품격을 드러낸다

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문화산책]비평가로서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검토할 때마다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언어는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기도 하다.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문학에 대한 이해 부족이 큰 원인이다. 그동안 읽었던 책이나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작품을 기준 삼아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한 채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문학 매체의 폭발적인 증가 또한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작가들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격이 낮은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경우,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형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시·소설·에세이가 각각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성품이 좋고 상상력이 풍부해도 문학 형식에 밝지 못하면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축구장에서는 축구의 규칙을 지켜야 하듯, 배구장에서 축구하듯 발로 공을 차서는 안 된다. 장르마다 고유한 형식이라는 규칙이 있으며, 이를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형식에 앞서 어떤 내용을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형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용이 빈약하거나 주제와 어울리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결국 형식과 내용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독서와 다양한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처럼 미흡한 글을 접할 때면 나는 그 글을 통해 필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글을 통해 지식을 과시하려는 태도가 드러나기도 하고, 구조를 제대로 세우지 못해 글 전체를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좋은 글은 글자 하나를 더하거나 덜어내도 안 될 만큼 치밀해야 한다. 미숙한 글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문제는 불필요한 사족이다. 더 좋은 표현을 보태고 싶은 욕심이 오히려 글을 망치고 만다. 이러한 문제는 꾸준한 글쓰기와 독서를 통해 스스로 깨우치거나,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교정될 수 있다.

특히 일부 시인들에게서 두드러지는 잘못은 현학적 표현에 지나치게 기대는 태도다. 상황이나 주제를 두루뭉술하게 처리할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가능한 한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정확하게 표현할 때 이러한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멋있는 표현을 좇다 보면 정작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호해지는 경우도 많다. 나는 글쓰기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의 방식에 대한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문학적 지향을 분명히 세우기란 쉽지 않다. 글쓰기는 결국 자신이 설정한 삶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식상하고 진부한 표현을 삼가는 일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새로움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가 지닌 질감과 색채를 새롭게 선택해야 한다. 예컨대 ‘어머니’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경우, 사랑이나 희생 같은 상투적 표현에 기대기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과학 문명이 끊임없이 발전하듯 예술가의 언어 또한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한다.

좋은 글은 곧 그 글을 쓴 사람 자신이다. 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쓴 글을 보면 너희 고향마을 뒤에 있는 산이 높은지 낮은지 알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글은 사람의 인격과 정신성을 드러내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글쓰기 강의를 한 셈이 되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글의 무례함에 관한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이 된 오늘날, 소통 방식 역시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편지나 전화가 주요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SNS를 통해 다수가 동시에 소통한다. 문제는 그 공간에서 소비되는 언어들이다. 중요한 정보나 공지를 위한 공간에 사적이거나 불필요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올라오기도 한다. 문학인들 사이의 네트워크에서도 편향된 정치적 주장, 개인 사업 홍보, 성찰 없이 과시하는 지식 등이 소통의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눈치 없고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의 없는 언어를 접할 때마다 그 사람의 정신성과 문학적 수준을 가늠하게 되며, 같은 문학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문인들의 작품은 물론,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역시 인간적 품격을 보여준다. 때로는 침묵이 말을 대신해 그 사람을 더욱 빛나게 한다. 반대로, 말함으로써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엊그제 우리는 설 명절을 보냈다. 명절이 되면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나는 명절이면 고마운 분들께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한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반복되는 덕담이 대량으로 쏟아질 때면 오히려 피로감을 느낀다.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말은 감동을 주지 못하고, 때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복 많이 받으라’는 말 자체는 분명 덕담이지만, 그것이 형식에 그칠 때는 공허해진다. 무분별하게 반복되는 언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의식 속을 파고드는 무자비한 언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혹은 언제 침묵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침묵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지혜로운지도 모른다.

자신이 내뱉은 말은 곧 자신의 인격과 품격을 드러낸다. 우리는 말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