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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정숙 동판화 ‘형形-84_죽은자의 무게’(1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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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정숙 동판화 ‘혼배성사’(1988) |
이처럼 두드러진 해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는 서울과 광주, 화순이라고 하는 거점을 거치며 예술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화순 도곡 작업실은 광주 아파트 거주 시절에 온전히 작업하는 공간으로 모두 쓰였지만, 현재 공소 건물은 거주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공소 건물 건너에 작업실 건물을 지어 활용 중이다.
그의 고향은 함평으로, 예술가로서 발현해 온 감성과 정서의 밑받침이 된 곳이고, 광주는 작업방향을 정립하는 공간이 됐다. 특히 5·18항쟁의 직접적 체험은 그에게 두고 두고 사상적 편린을 자제하면서 진일보한 회화 세계가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등 끊임없는 사색의 근거로 작용했다.
1980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작가는 시위에 나섰던 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오빠가 귀가하지 않자 직접 찾으러 다니면서 골목 골목에 서린 5·18의 잔혹한 시대상황과 목도했다. 광주5·18항쟁의 트라우마는 나중에 그가 사실적 회화에서 반추상으로 방향을 선회한 계기가 됐다.
1986년 대학을 마친 후 서울로 상경해 판화에 집중했고, 전남대 조교 제안이 오자 1988년 광주로 내려왔다가 1990년 결혼을 하면서 다시 상경, 1993년 두번째 동판화 개인전을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열었다. 1988년 동판화 개인전이 흑백대비의 표현으로 암울한 내용의 상징적 이미지를 활용한 울분의 표현이었다면, 두 번째 개인전은 희망과 치유로 다가선 내용으로 유채색을 활용한 다색판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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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정숙 동판화 ‘그림자 찾기1’(Discovering the shadows 1,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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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때 대학원 재학 등 서울 생활을 하다가 1997년에 다시 광주로 내려와 지금까지 판화에 대한 주변의 관념이나 편 가르기식 장르의 고정된 인식을 탈피해야 했다. 그는 판화의 감성과 매체의 특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초기 판화기법과 판화의 깊이 있는 효과를 마스터해야 특유의 물성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기술을 가장 정확하게 배울 수 있으려면 흑백으로, 한 판이 아닌 두세 판을 같이 작업해야 깊이 있는 음영효과가 나옵니다. 동판화의 특징이 음영의 여러 단계의 깊이 있는 밀도와 선의 감각 그리고 동판의 거친 입자들이 그대로 반영되면서 물감을 머금고 찍히는 과정들이 매력이죠. 흑백의 농담과 밀도를 마스터하면 어떤 표현이든 자유롭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가 미술의 감성을 키운 텃밭은 고향이었고, 작업 안 사유의 방향이나 정신적 향방의 키워드는 아무래도 직접 목도했던 5·18항쟁의 기억들로 꼽을 수 있다. 크든, 작든 광주5·18항쟁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서사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그를 미술인으로 키운 사상적 토대는 고향의 시간과 5·18항쟁의 기억들이지만 초·중학교 때 각종 대회에서 연거푸 수상을 하는 등 미술환경을 수용하면서 성장해온 그는 중학교 무렵부터 미술부에서 활동했다. 판화를 가르쳐주는 곳이 따로 없어서 혼자 판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 고무판화와 목판화를 했는데 표현의 한계가 있었고 접근할수록 앎에 대한 호기심은 매우 컸다.
대학시절 서울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회 관람으로 석판화와 동판화로 된 작품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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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로지 판화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달려왔다. 그런데 IMF시절부터 예술시장에서는 판화가 복제예술로 밀리는 예술 희소성의 문제로 열기가 사라졌다. 그래서 판화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으며, 회화와 버금갈 수 있는 판화의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특별한 판화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이 다색 동판화와 응용판화였다. 그의 다색 동판화는 기존의 다색판화보다 더 많은 동판을 동원해 회화처럼 풍부한 색감으로 더 많은 색의 톤을 만들어 색과 색의 맑은 실루엣의 흐름으로 제작하는 것이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는 해외에서 오늘날 많이 유통되고 각광을 받은 그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응용판화는 천과 종이를 이용한 판화로 설치미술과 한지를 활용한 작품제작으로 기존판화의 한계를 넘고자 실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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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경험을 축적하며 회화와 판화계를 넘나들며 활동을 펼쳐온 작가는 2005년 프랑스와의 교류 물꼬를 튼 이후 2007년 센마리팀 교류전 및 루앙대 학생들의 광주방문, 광주·프랑스 판화교류를 주도하는 유일 단체인 ‘꼬레라숑’(COREElation)과의 교류로 단체를 설립했으며,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에브흐시립박물관 초대 전시 등을 실현시켜 왔다. 그리고 최근 5년 사이 프랑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와 중국 항저우·심천을 중심으로 초대 개인전과 단체전, 트리엔날레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예술 역량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그는 자신의 예술영역을 확장하면서도 개별 네트워크를 통해 광주와 프랑스, 유럽과 중국을 이어나가는 등 작가 교류에 대한 산파역할을 꾸준하게 전개해 나갈 복안이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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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9 (목) 2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