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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현 한걸음가게 대표·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 |
플라스틱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소재임에도 종이팩의 재활용률은 바닥을 친다. 2024년 기준 생산자책임재활용(EPR) 대상 포장재의 평균 재활용 실적이 88%에 달하는 반면, 종이팩은 겨우 14%에 그쳤다. 금속캔, 유리병, 페트병의 재활용률이 모두 70%를 상회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포장재 업계의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구조적으로 분리배출이 어렵고 일반 종이류와 섞여 버려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동네 카페를 돌며 종이팩을 모아 동 행정복지센터에 직접 가져다주고 수거함 운영 실태를 조사하며, 구체적인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마침내 그 끈질긴 실천이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움직였다. 올해 초 전국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종이팩을 별도 수거 품목으로 지정하는 분리수거 지침 개정 계획이 발표됐다. 위에서 내려온 정책이 아닌 시민들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실천이 끌어낸 변화다.
공동주택에 변화가 자리 잡는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거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학교다. 급식 우유팩은 물론 가정에서 씻고 말려서 가져온 주스팩, 두유팩까지 모을 수 있다면 학교는 가정과 자원순환 시스템을 잇는 연결 고리가 된다. 수백명이 매일 오가는 공간이 지역 자원 순환의 살아있는 거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고민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종이팩을 모아도 배출할 곳이 없어요”, “행정복지센터로 가져가기엔 양이 너무 많아요”, “모은 게 정말 재활용되는지 모르겠어요”, 교육은 교육대로, 수거는 수거대로, 배출은 또 따로 움직였다.
아무리 열정 있는 학교라도 구조가 없으면 결국 멈추게 된다.
광주에서 시작된 ‘종이팩을 구하는 우리 학교’ 프로젝트는 바로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만들어가고 있다.
2023년 문산초등학교 1개교에서 출발해 2026년 현재 특수학교인 선예학교·광주선명학교를 포함해 총 14개 학교가 함께하고 있으며, 46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종이팩 자원순환 교육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네 가지다.
첫째, 인식과 실천이 동떨어지지 않도록 자원순환 교육을 정례화한다. 둘째, 교내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을 설치해 자원순환 활동을 가시화한다. 셋째,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주 1~2회 정기 수거 루틴을 만들고 학생이 주체가 돼 캠페인을 운영한다. 넷째, 일정량이 모이면 수집업체가 학교로 직접 방문해 수거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원의 순환 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단순한 환경 교육을 넘어 자원이 실제로 어떻게 돌고 돌아오는지를 몸으로 배우는 경험이다.
6월5일은 환경의 날이다. 매년 이날이 되면 수많은 기념행사와 선언이 쏟아지지만 진정한 환경의 날의 가치는 일상의 표준을 바꾸는 구조적 실천에 있다. 학교가 자원순환의 실질적 거점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교 구성원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자체가 학교를 공식 수거 거점으로 인정하고 정기적으로 수거해 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교육청과 시민사회가 함께 행정적·제도적 기반을 설계해야 한다.
어느 마을 장터에서 종이팩을 들고 캠페인 부스로 다가온 아이가 말했다. “종이팩이 불쌍해요” 쓰레기가 아닌 구해줘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그 감수성이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됐다. 초등학교 시절 종이팩을 씻어 학교에 가져오고 캠페인을 운영하고 수집업체에 직접 넘겨본 경험은 졸업 이후에도 오래 남는다. 자원순환의 감각을 몸에 익힌 아이들이 마을의 변화 주체가 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정책 변화가 시작되는 지금, 학교는 그 변화의 가장 작고 가장 단단한 거점이 될 수 있다. 그 흐름 위에 ‘종이팩을 구하는 우리 학교’가 있다.
김지현 gn@gwangnam.co.kr
김지현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6.02 (화) 1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