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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섭 음식장 |
음식은 혼(魂)이 아닐까. 그만큼 맛은 아무나 낼 수 없다. 정성으로도 쉽사리 그 혼의 반열에 오르기 어려울 터다. 하지만 열악한 풍토 속에서도 남도전통음식의 계승과 보존을 위해 올해 36년째 남도의례음식장(제17호)으로서 꿋꿋하게 외길을 걷고 있는 이가 있다.
지난 2006년 2월 광주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불철주야 남도전통음식을 여정을 쉼없이 지속해가고 있는 전남 보성 출생 이애섭 음식장(73)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음식장이 오랜 숙원사업으로 여겨왔던 ‘남도전통음식문화연구원’(이하 연구원)이 지난 5월17일 광주시 북구 신안동에 문을 열었다. 따라서 남도전통음식의 계승과 보존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광주시 북구 용봉로 10번지 소재 건물 2층에 개관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정규·특별과정과 지도사자격증과정 강좌를 개설, 운영에 들어갔다. 이 연구원에서 다뤄지는 것들은 통과의례·명절상차림을 비롯해 전통폐백·이바지, 전통병과(떡·한과), 궁중음식, 종가 내림음식, 발효저장음식(장·장아찌·효소·김치), 향토음식 건강밥상, 전통음식문화체험(어린이·청소년·성인) 등 다채로운 세부 내용과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연구원은 50여평 규모로 조리실과 연구개발실 등을 구비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관심이 많은 자격증반은 1급과 2급이 개설됐고, 전통혼례문화지도자과정과 남도음식문화지도자과정도 개설됐지만 자격증반은 앞으로 더욱 확대할 계획으로 있다.
"이 연구원 안에서 모든 레스피를 보여줄 것입니다. 이 공간을 앞으로 잘 키워가야 하겠죠.전통음식 계승에 앞장서면서 소스 개발 등 맛과 멋을 살리는데 더욱 노력할 생각이에요."
다시말해 이곳은 이 음식장의 노하우가 실제 시연될 수 있어 수제자나 전수자들에게는 개원 한달 보름여밖에 안됐지만 더할나위 없는 공간이 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이 음식장이 광주에서 이 분야 독보적 존재로 통할 만큼 명성을 얻고 있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박사가 외가이자 울산 김씨의 종갓집 며느리이어서다. 또 보성군 문덕면 성주 이씨 종가에서 태어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각종 의례행사들이 많았던데다 손님맞이를 위한 음식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식을 접하며 성장했다.
여기다 시댁마저 문정공 하서 김인후 선생의 13대 후손으로,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어깨 너머로 접할 수 있었다. 이 명장은 30여년전 전남 장성군 서삼면에 거주할 당시에 평범한 주부였지만 그때 장성군청에서 열린 무순 음식 전시에 오징어 오리기 등 몇가지 음식을 출품한 것이 대외적으로 솜씨를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었다. 이후 제3회 순천낙안읍성축제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대회에 이름을 내밀었다. 그러다 1998년 최우수상 수상과 더불어 전통음식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성군수 표창장을 수상했다. 최우수상 상금은 장성군 불우이웃돕기에 써달라고 기탁해 나눔을 실천하기도 했다.
이 음식장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며 두각을 보였다. 수상이력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2003년에는 서울세계음식박람회 광주시 대표 금상 수상에 이어 2005년 제12회 남도음식 대축제 대상, 2009년 서울올림픽공원 디자인 행사 폐백전 서울시장상, 2010년 서울세계관광음식박람회 한국음식전시·통과의례 금상, 2013년 제1회 서울 한식의 날 대축제 전통음식경연대회 통과의례 상차림 단체상 대상 등만 보더라도 그가 왜 음식장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어느 정도 음식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한때 문화재와 명인을 구분못할 정도였다.
명인이나 명장은 한가지만 잘해도 되지만 문화재는 모든 음식을 섭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음식을 하다보니 단 한가지도 게을리 할 수 없을 뿐더러 통과의례니까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먹방이니 셰프니 하는 단어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음식장에게는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전통음식은 기다림입니다. 깊이는 물론, 맛도 내야 하지요. 세프는 금방 현대음식을 내놓지만 전통음식은 맛과 멋, 깊이 등 3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전통음식은 계절별 요리가 가능한데다 재료 역시 자연을 호흡하고 있는 재료이어야 하죠. 음식 과정도 말리며 저장해야 하죠."
특히 이 음식장은 꿩이나 노루 음식과 궝 육포까지 이미 음식장으로 명성을 얻기 전에 체득할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옛날 조부께서 총을 갖고 사냥해 꿩이나 노루 등을 많이 잡아와 이런 음식들을 내놓았어요. 장조림 등도 많이 접했습니다. ‘노루 친 막가지를 3년 동안 우려
먹으면 영양가 많다’ 했을 정도로 노루 요리는 귀했어요. 이처럼 다양한 재료를 보며 자랐죠."
이런 연유로 이 음식장의 정교한 오림(문어·오징어)이나 혼례, 고희연때 선보이는 화려한 고임상은 널리 알려지는 밑바탕이 됐다.
이 음식장은 통과의례에 들어간 음식이야말로 전라도권이 최고라는 점을 자부한다.
그러면서 이 음식장은 안심 먹거리에 현대인들이 관심이 많은 것처럼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 역시 많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아무래도 느리니까 깊은 맛이 나옵니다. 현세대들이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봐요. 저는 이것을 제대로 계승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네요. 퓨전이나 혹은 바뀌는 것을 바꿀 수는 있으나 기본 맥을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전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국적불명의 것이 되기 십상이죠."
전통음식이나 남도음식에 관한한 전국에서 연구원 혹은 광주로 모이게 하고 싶다는 이 음식장. 서울에서 전시를 열면 그의 코너는 제일로 평가를 받는다.
2000년부터 시작된 전남대 평생교육원 강좌 등에는 이미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다. 그의 강의에 프랑스 사람도 와서 배웠을 정도다.
정원이 15명인데 하루만에 다 차버린다. 지난해 숫자를 늘려 현재는 30명이나 수강할 만큼 열기가 뜨겁다.
아울러 그는 건강에 좋은 전통음식을 배우거나 경험을 해야 퓨전이나 인스턴트를 끊을 수 있다는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음식장은 처음과 끝이 똑같다. ‘전통음식의 제대로 된 계승’ 말이다. 이제 딸(김현진)이 뒤를 잇고 있어 자신을 능가했으면 하는 바람도 잊지 않고 들려줬다.
이애섭 음식장은 무형문화재 제17호 기능보유자로, 후진양성을 위해 전남대 평생교육원 무형문화재반 전통음식·폐백반을 운영하면서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과 남도향토음식박물관에서 강의를 펼치는 등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올해는 적어도 남도전통음식의 계승과 보존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가장 획기적인 반전이 이뤄지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고선주 기자 rainid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