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 판매…산지와 상인 가교역할 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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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물건 판매…산지와 상인 가교역할 할터"

광주·전남 최초 여성 경매사 두레청과 김수진 과장
10년간 농산물 시장서 일 전념…농가 수입 보탬·회사 권유에 도전
"섬세함으로 농가·상인 보듬겠다…여자 후배 앞길 개척 모델 될터"

10일 오전 6시 광주 서구 매월동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본격 경매시간을 1시간여 앞두고 포도와 복숭아 등 과일을 가득 실은 5t트럭 10여대가 시장안으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경매가 시작된 오전 7시. 도매상인들은 경매장 곳곳에 수북이 쌓여 있는 과일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등 전자입찰 준비에 한창이다.

같은 시간 1층 출하상황실에서는 낙찰 정보·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정산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정산이 이뤄지는 이곳은 한치의 오차가 나지 않도록 집중에 집중을 더하는 곳이다. 한 여성이 이날 경매에 들어갈 과일 품목이 정리된 전산 시스템 앞에서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전산 업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바로 호남 최초의 여성 경매사이자 두레 청과에서 과장을 맡고 있는 김수진씨(30·여)다.

김씨는 지난 7월 20일 1·2차 시험을 거쳐 호남 여성 최초 농수산물 경매사 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바로 경매대에 서진 않는다. 자격증을 받은 이후에도 상품성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을 때 비로소 경매 마이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매사 자격증을 가진 여성은 많지만 현장에서 직접 뛰는 여성 경매사는 광주·전남에서 유일하고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다고 들었어요."

그간 경매사는 남성의 직업처럼 여겨졌다. 꼭두새벽 경매에서부터 상대적으로 거친 시장 일을 여성의 몸으로 부딪히기엔 한계가 있어서다.

현재 서부 농수산물 도매시장에는 60명의 경매사가 활동하고 있다.

아담한 키에 애 띤 얼굴의 김씨는 누가 봐도 꼭두새벽 거칠고 치열한 도매 시장 경매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방금 했던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만큼 당차고 야무지다는 얘기다.

"출하 농민(이하 출하주)들은 자신이 가꾼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해 해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높은 가격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경매사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김씨는 올해 서부농산물도매시장 3층에 위치한 두레청과 입사 10년째다.

2007년 2월 보건대학교 환경행정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매조지가 야무진 그를 지켜본 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이곳에 입사하게 됐다. 두레청과는 지난 2004년 4월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개장과 동시에 영업을 시작해 원활한 농산물 유통과 가격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 온 주식회사다.

"처음에는 하루 경매 할 물건들을 전산으로 입력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 수수료를 계산해 출하주들에게 대금을 정산해 주는 일을 했고요. 판매 정산·출납을 10년 간 한 셈이죠"

그가 ‘강산이 변한다’는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 온 이 일들은 경매사의 꿈을 키우는 발판이 됐다.

"물건이 낙찰되면 단가가 매겨지고 정산해 바로 출하주에게 현금으로 주거나 송금을 하는데 이들과 돈 정산을 하다 보면 그분들의 얼굴을 보게 돼요. 낙찰가에 만족해 돌아가시는 분도 있지만 자식처럼 키운 과일이 제값을 받지 못해 속상해 눈물 흘리는 분들도 있죠. 날씨, 시세 등의 영향을 받아 좋은 물건임에도 단가가 낮게 나올 때도 있지만 최대한 그 분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게 공정한 경매를 하는 경매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었어요."

수 많은 광주·전남 지역 출하주들을 겪으면서 농산물을 자식처럼 키워 파는 농가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기 때문이다.

경매사 일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회사의 권유도 큰 계기가 됐다. 그는 "경매사 시험이 2년에 한 번 있는데 도전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결심을 하자 지속적으로 지지해줬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는 회사에 대한 고마운 말도 잊지 않았다.

김씨를 입사할 때부터 봐 온 두레청과 김홍직 부장은 "10년 동안 성실하게 일한 김 과장은 서부농수산물시장 시스템에 대해 워낙 잘 알고 성격도 좋아 출하주들과 도매상인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해요 .거친 경매 영역이지만 그의 따뜻함과 당참으로 잘 해낼 거라 생각했어요."

어머니의 조언도 경매사 시험 도전에 한 몫 했다,

"그동안 한 번도 말씀하신 적 없었는데 경매사 시험에 도전할 의향을 말씀드리니 ‘외삼촌이 김제에서 농수산물 경매사 일을 오랫동안 했다’며, 도전해서 좋은 경매사가 될 것을 당부하시는 거예요 . 어머니의 응원은 저에게 큰 용기가 됐죠."

1남2녀 중 맏딸인 김씨는 동료들의 증언대로 아주 당차고 씩씩했고 그를 만나는 상인들 마다 멈춰서서 1~2분은 꼭 얘기를 나눌 만큼 정이 넘쳤다.

그는 올해 과장으로 승진했다. 모두 그의 업무능력을 인정해 어린 나이에 ‘과장’이 됐다. 하지만 10년 동안 수 백명의 출하주들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중매인 번호나 금액을 잘못 기록하는 실수도 있었고 송금을 잘못하는 바람에 직접 산지로 가 돈을 받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애써 키운 자식이 제값에 안 팔렸다며 낙찰을 당장 취소하라며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김씨는 속상해하는 출하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 출하주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들을 때면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고 지치기도 하죠. 하지만 누구보다 상품에 대한 그분들의 애정과 자부심을 알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하죠."

현재 판매정산·출납 업무 파트의 왕언니로 경매대에 설 준비를 탄탄히 하고 있는 그는 특히 경매사로서 중요한 출하주들과의 신뢰를 쌓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 경매사 일이 시작 되면 화순, 고흥, 고창 등 산지출장을 가서 직접 출하주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듣고 싶어요. 농가의 상황을 알아야 하거든요"

이어 " "두레청과에 가면 김수진이라는 경매사가 있네"라는 입소문이 나는게 제 목표예요. 출하주들과 신뢰를 쌓아 진정한 농민의 경매사로 거듭나야죠."

아직은 경매 마이크보다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노래방 마이크가 편하다는 그. 호남 최초 여성 경매사라는 말은 기쁘면서 부담스럽다면서 "타이틀에 맞게 여성이 가진 ‘섬세함’으로 농가와 상인들을 보듬어 안으며 이 업무를 잘 수행해 좋은 표본이 돼, 더 많은 여자 후배들도 들어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박사라 수습기자        박사라 수습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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