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는 미국과 구소련 양대 세력의 냉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이며, 핵전쟁에 대한 위협 역시 상존하던 시기였다. 결국 90년대 초반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냉전은 끝났지만,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핵무기들은 잠들어 있는 위협이며,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는 단순히 잠재적 위협이 아니라 실제적 위협으로 부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시 전 세계가 핵무기를 동시에 포기한다는 것은, 가상의 존재인 슈퍼맨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한 헛된 꿈일지도 모른다.
전쟁용 무기로 사용된 예뿐이랴. 원자력은 20세기에 가장 유용한 에너지원으로 부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원자력 발전을 통한 전기 에너지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은 양날의 검이다. 원자력 발전소 자체도 늘 위험요소를 감추고 있는 무시무시한 시설일 뿐만 아니라, 이 원전이 연료로 사용하는 농축우라늄이 핵융합 이후 변환되는 원전폐기물 역시 인류와 지구 환경에 치명적인 해독이 된다. 이 유독한 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능이 사라지는 기간은 백년, 혹은 천년 단위가 아니다.
아무리 짧아도 몇 만 년 이상 걸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유독성을 가진 물질인 것이다. 어쩌면 인류가 멸망한 후에도 핵폐기물은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무시무시한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고리 5호기, 6호기가 3개월간의 공사 중단 기간을 멈추고 다시 공사가 재개됐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공사 재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정권 초기부터 ‘탈(脫)원전’이라는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는 모양새가 됐다. 물론 ‘공론화위원회’라는 민주적인 형식을 통해 재개된 결정에 정부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지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과연 ‘공론화위원회’라는 의사결정과정이 합리적인가?”라는 의문은 남는다.
시민사회 각계각층의 의견과 전문과 의견을 조합하여 찬반투표를 행한 것이므로, 이 결정은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 결정의 과정이 합리성이 아니라 효율성에 더 치우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근대 시민사회의 개개인이 각각의 합리성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이나 사회학과 같은 근대의 학문들은 이런 ‘합리적’ 결정을 바탕으로 하는 개인들의 집합으로서 근대 시민사회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 개개인의 합리성의 정도가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연구 성과들은 우리가 그처럼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근대적 개인의 합리성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자신의 경제학을 ‘행동 경제학’이라고 칭했다.
탈러 교수는 지금껏 자본주의의 주류 경제학을 지탱해왔던 합리적 소비가 가능한 개인 소비자라는 개념을 “이론 경제학자들의 편리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 우리가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고전 경제학자들의 생각처럼 합리적인 과정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개개의 소비자들의 소비행동 패턴에는 합리성보다는 효율성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효율성은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 발견은 단순히 경제학에만 그칠 것은 아니다. 어쩌면 민주주의라는 근대의 정치체계 안에서 의사결정을 행하는 근대적 개인 역시 마찬가지 아닐런가?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아니라, 개인이 처한 상황과 욕망에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비합리적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번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정과정에 있어서도, 결국 최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문가 의견은 ‘원자력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지금 당장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당장 눈앞의 필요라는 효율성의 이유 때문에,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엄청난 재앙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합리성을 포기해버린 것은 아닐까?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곳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생명도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의 땅이다. 그러한 재앙이 후쿠시마로부터 60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우리 땅에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대적 확신이 어디에 있는가?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이제 탈원전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우리 한국도 언제까지 이 흐름에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다행이 문재인 정부는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이후로의 탈원전 로드맵을 착실히 계획해 발표했다. 부디 이 정부의 약속과 로드맵대로 우리 한국도 탈원전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광남일보@gwangnam.co.kr
광남일보@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7.27 (월) 1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