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학적 해석…‘지역 중심 출판사’ 구축"
검색 입력폼
특집 일반

"새로운 문학적 해석…‘지역 중심 출판사’ 구축"

<사람사는 이야기> 송광룡 심미안 대표
출판 여건 열악하지만 ‘공적 성격’ 소화 위한 노력 지속
지역의 내용에 관심 필요…저자와 충분한 피드백 거쳐야
정체성 위해 특집 마련·젊은 연구자 영입·문학상 시상도

송광룡 심미안 대표는 “저희 출판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죠. 이는 광주·전남을 우리들 삶의 중심에 놓자는 뜻입니다”라면서 ‘지역이 중심 되는 출판사’를 만드는데 주력할 뜻을 내비쳤다.
학동 광주천변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은 책과 원고로 넘쳐난다. 편집자들의 컴퓨터 주위로도 각종 책과 원고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시외를 급하게 다녀오는 길에 부랴부랴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그의 사무실 풍경은 조용한 가운데 정체모를 긴장감이 넘쳐흐른다. 그것은 아마 마감 때문일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마감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마감이 얼마나 사람을 옥죄이고, 독촉 전화 한 통에 심장이 쫄깃해지는가를. 필자가 방문한 지난 3월16일 오후 5시 무렵 그는 지역에서 이름만 대도 알 만한 한 소설가의 작품집 마무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피곤할 새도 없이 강행군의 연속인 듯했다. 인터뷰가 한 차례 연기돼 다시 일정을 잡기 위해 그에게 연락했을 때, 문상 때문에 서울에 가 있다는 답신이 왔다. 그와 통화하며 다시 일정을 조율한 것이 그날 오후 시간대였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일정들로 좀체 시간을 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는 디자이너들과 편집을 진행하고 있었다. 유리문을 열고 그의 자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앉아 기다렸다. 5분여가 지나서야 그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왔지만 그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현재와 조우할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었다.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지역이라고 하는 열악한 출판 여건을 극복하고 일정 부문 경쟁력과 인지도를 확보해온 도서출판 심미안 대표이자 계간 ‘문학들’의 발행인인 송광룡(55) 씨의 이야기다. 원래 그는 신춘문예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는 금호문화재단에서 발행하던 월간 ‘금호문화’에서 10년을 재직했다. ‘금호문화’는 2001년 11·12월호를 내고 폐간됐다.

폐간 당시 금호그룹이 금호문화 직원들의 고용을 승계했지만 송 대표는 창작인인 만큼 얽매이기보다는 독립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다른 동료들을 따라가지 않고 광고기획 일에 뛰어들었다. 당시 뚜렷한 방향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연찮게 그 일을 하게 됐다는 전언이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심한 끝에 출판 일에 안착하게 된 경우다. 이렇게 해서 2003년에 출발하게 된 것이 도서출판 심미안이었다.

심미안 등록 전에도 간간이 문학서적을 내기는 했다. 그러다가 2년 후인 2005년 문학들 출판사를 자회사로 등록한 뒤 계간 종합문예지 ‘문학들’을 펴내게 됐다. 문단의 호평을 이끌어냈고, 그 영향력을 전국으로까지 확장했다. 현재 ‘문학들’은 ‘시와사람’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문예지로 우뚝 솟았을 뿐 아니라 중앙에서 나오는 문예지들과 견줘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구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지역의 열악한 문학 환경 속에서 거둔 것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문학들’은 2018 봄호(통권 51호)를 세상에 내놓았다. 흔히 지역에서 문학이 미술이나 공연보다 아래에 자리한 장르로 취급받고 있는 상황에 비춰 보더라도 ‘문학들’의 위상이 만만치 않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심미안은 물론이고 ‘문학들’이 경쟁력과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조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송 대표의 조율과 중재의 노력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단행본 표지 디자인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송 대표.
송 대표는 먼저 지역출판의 어려움을 세 가지로 꼽는다. 유통, 저자 확보, 마케팅이 그것이다. 지역을 연고로 활동하는 작가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책을 서울에서 출간하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자사 도서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자에게 알릴 수 있는 홍보와 폭넓은 유통망이 필수다. 이 모든 것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지역 출판사가 서울 출판사처럼 베스트셀러 위주의 접근을 해서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조급함을 버리고 느릿느릿 서울출판사들이 보지 못하는 지역의 내용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책은 공적인 성격이 강하잖아요. 책을 사고 팔 때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공적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송 대표는 좋은 책이란 작가와 출판사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때 탄생한다고 믿는다. 책은 저자의 몫이지만 서로 충분한 피드백이 이뤄질 필요가 있고, 출판사와 작가가 서로 이해하면서 소통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좋은 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시집이나 소설 중 저자와 출판사가 교감을 통해 작품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책에 대한 반응을 높여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갖게 될 때 좋은 작가들도 찾아오게 됩니다. 또 가능성이 있는 책들은 SNS는 물론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서점에 적극적으로 홍보하려고 노력합니다. 공격적 마케팅을 시도하려면 비용이 들지만 책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여러 서점에서 운영하는 이벤트에도 신경을 쓰는 중입니다. 곧 출간되는 한 작가의 장편소설은 온라인 서점 광고 계약을 마쳤고, 이벤트도 병행하려 합니다.”

특히 그는 출판에 있어 중앙이니, 지역이니 하는 것보다는 정작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책으로서 가치가 있겠는가’와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송 대표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충족돼도 책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영업적으로 매력이 없더라도 지역에 있는 출판사가 펴낼 수밖에 없는 책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송 대표는 책을 내는 과정을 분담할 수 없는 지역출판의 한계에 안타까워한다.

“서울의 유수한 출판사일수록 분야별로 기획자, 편집자, 영업자 등이 있어요.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에 대해 깊이 있게 집중하고 파고들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죠. 책과 관련한 판단도, 진행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저희는 한 두 사람의 편집자가 시나 소설, 인문분야, 지역사 등을 한꺼번에 검토해야 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원고를 짧은 시간에 봐야 하고, 그때마다 거기에 맞는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봐야죠.”

그는 돈만 벌기 위해 아무런 가치도 없고, 문체 수준도 확연히 떨어지는 책을 출간하는 것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다. 함부로 낼 수 없는 것이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소신이 책에 대한 시각을 견고하게 만드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 지역을 도외시 않는 대신, 지역에 대한 새로운 문학적 해석과 지면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학들’에 특집으로 다루기 시작한 ‘뉴 광주리뷰’ 같은 꼭지는 그런 시각을 반영한 사례로 꼽힌다. 이는 광주 정체성 찾기 혹은 구축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를 위한 노력의 하나로 연말쯤에는 지난 1년 동안 출간된 시, 소설 등의 단행본과 문학들에 발표한 작품을 대상으로 ‘문학상’을 제정해 시행할 계획이다. 최근에 지역의 젊은 연구자들을 편집진으로 대거 영입한 것도 그런 뜻을 살려가려는 포석이다.

문학들 10주년 기념식에서 문인들과 함께한 송광룡 대표(왼쪽에서 여덟번째).


그는 지금까지 380여종의 책을 펴내왔다. 앞으로도 ‘지역이 중심 되는 출판사’를 만드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저희 출판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죠.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갖자는 것이 아니라 광주·전남을 우리들 삶의 중심에 놓자는 뜻입니다. 우리는 곧잘 광주의 정체성을 말하는데 어떠한 정체성도 개념화되는 순간 그 생명력을 일정 부분 상실하게 됩니다. 정치적 슬로건으로 전락하기도 하구요. 정체성은 늘 새롭게 재생성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잖아요. 그런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창작을 물었다. 창작할 여건이 도저히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개인적으로 몰입할 시간이 없네요. 2002년부터 시다운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1월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때부터 뭔가 쓰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더군요. 한 20편 썼습니다. 저는 이 시편들을 아버지가 제게 주신 선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