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음악은 하나…"마음 전하는 연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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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

삶과 음악은 하나…"마음 전하는 연주하고 싶어요"

신문화탐색(피아니스트 박보윤 호남신학대 교수)
다섯 살 입문해 예원학교 거쳐 서울대서 수학
앙상블에 집중 "피아노 음색에 대한 확신 가져"
에세이 시리즈 이어…30일 광주 첫 독주회도

다섯 살 꼬마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꾹 하고 누르면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한 번 앉으면 언제까지고 그 앞에서 놀았다. 처음엔 단순히 소리에 반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피아노가 가진 무궁무진함에 폭 빠졌다.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을 만나면, 그들의 정신세계가 악보로 펼쳐지고, 오선보 안에 찍힌 논리 정연함에 또 한 번 반할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피아노와 만나, 이 후 한 번도 다른 곳으로 한눈 판적 없이 한 길을 걸어온, 피아니스트 박보윤 교수(호남신학대 음악학과)이야기다.

박 교수는 피아노를 보화와 같다고 표현한다. 음색으로서는 더 좋은 소리가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레퍼토리의 무궁무진함은 따라 올 악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피아노를 놓지 않고 지금껏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또 연주를 이어갈수록 또 하나의 ‘문’이 열리는 것 마냥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수 있어서다.

이 같은 피아노의 매력을 바로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진로를 바꿀 “용기가 부족해서” 쭉 이어왔다고 농을 치지만, 다른 악기와 앙상블을 하게 되면서 피아노의 진가를 발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사실 현악기와의 앙상블이 제게 음악적인 자극을 꽤 많이 줬어요. 음색 면에서 보면, 현악기가 정말 아름답지요. 그 악기들과 함께하면서 피아노가 가진 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악기와 함께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레퍼토리가 피아노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줬던 듯 싶어요.”

예원학교 그리고 서울예고·서울대학 음악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특히 다른 연주자들과의 앙상블에 주력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악기를 국한시키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한다. 독일 유학 중 현악기와 호흡을 맞추면서, 박 교수는 들려오는 피아노의 ‘음’ 이외의 것들에 대해 답을 찾으려 했다.

“현악 연주자들은 음정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보니, 사운드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에게도 음 이외의 것을 많이 요구하죠. 작품을 분석하고 이것들 중 어떤 게 중요한 대목인지, 다른 악기의 음에 어울리는 음색을 함께 만들어 가는데 집중했어요. 악보를 빨리 보는 법, 큰 작품을 빠르게 터득하는 법은 바로 이 때 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무대 위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청중이 된다. 스스로의 소리를 반추하며 연주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좋은 피아노 연주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와 피아노의 첫 만남에서처럼 피아노는 사실 “누르면 들려오는 게 소리 아닌가”하는 우문이었다. 그는 ‘손가락의 면적’을 예로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평소에 손을 쓸 때 잘 관찰해보세요. 손가락 끝에서부터 손바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적을 다양한 힘으로 짚어냅니다. 건반을 누르는 힘, 사용하는 면적 등 이론적으로 혹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죠. 그리고 다음으로 호흡이 중요해요.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 그게 가장 편안한 상태입니다. 숨이 자유로울 때, 손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그는 연주를 매개로, 삶 그리고 음악을 연결하고자 한다. 2017년부터 이어 온 ‘피아노에세이’ 시리즈는 그가 청중과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픈지 알 수 있다. 에세이 주제는 ‘이끌림’, ‘위안’, ‘꿈을 삶’,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사람들의 노래’, ‘마음링크’ 등 듣기만 해도 말랑말랑한 것들이다. 특히 텍스트로 빼곡한 프로그램 노트가 눈길을 끈다. 작품 연주 순번만 단출하게 적힌 여느 연주회 팸플릿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일기를 쓰듯 요즘 자신의 심경들을 글로 풀어내고, 이어 곡 설명까지 덧붙인다. 아마 이를 정독한 이라면, 그의 연주가 남다르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터다. 연주자와 관객이, 피아노란 선율로 만나기에 앞서 감정의 교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제자들과 늘 고민하는 부분이 음악과 삶의 연관성입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과연 나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나 1차원적인 생각을 나누는 것이지요. 음악이 동떨어져 있는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 안에 어우러져서 녹아드는 것을 표현하고 싶죠. 그런 연주야말로 관객에게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보고요. 에세이 시리즈는 제 안의 많은 감정들을 연주로 선사,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하나의 창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에서 이어 온 오보토이렌 연주 페스티벌을 비롯해 2008년 귀국연주회를 시작으로 앙상블 그룹 ‘소아베’(soave), 서울시향과의 협연 등 다양한 무대에서 팬들을 만나오고 있다. 그는 2011년부터 서울시향과 함께 한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시리즈’를 주목할 만한 이력으로 꼽는다.

“현대음악을 중심으로 한 아르스노바 시리즈에서는 오케스트라에 피아노, 건반악기를 많이 넣어요. 정말 어려운 작업인데 이를 계속 해오면서 그야말로 현존하는 유럽·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쭉 연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죠. 그 세월이 10년이니까, 분명 피아니스트 박보윤 제 개인에게도 단단한 영양분이 됐을 거라 믿어요.”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슈만 그리고 모차르트를 꼽는다. 음악이 즐겁고, 그저 듣기에 좋은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그 연주로부터 발견되는 여러 사상, 작곡가가 가진 흥미 등을 마주할 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장들이다. 무엇보다 정서적·감정적인 것을 벗어나,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착착 눈에 들어오는 논리성은 ‘과연, 위대하다’ 탄복할 수밖에 없다고.

“어렸을 때는 악보를 하나의 ‘형식’으로 봤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이 연주에 무슨 영향이 있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죠. 이제는 악보를 볼 때 윤곽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씨줄날줄로 엮이고, 얽히고설킨 음계들이 어떻게 모티브가 돼 소리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 집중하면서요. 이 작곡가는 왜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끝없이 질문하고 상상을 하는 거죠. 연주자들마다의 특색, 결의 차이는 아마 이런데서 비롯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는 오는 30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가 예정돼 있다. 광주에서 여는 첫 리사이틀이다. 이번 무대에서 박 교수는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작품들을 선사한다. 챔발로를 위해 작곡된 곡들이라 피아노로 치기엔 고난도이지만, 레오폴드 고도프스키가 편곡한 네 곡 등 12곡을 준비했다.

코로나를 마주한 예술인으로서 연주 방향에 대한 고민도 깊다. 비대면 연주회가 늘고 있지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들을 쉬이 포기할 수가 없다. 앞으로의 연주는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에 집중한다.

“결국 답은 공감에 있다고 봐요. 다른 매체들과의 획기적인 컬래버레이션 보다, 마음이 통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관객과 연주자가 독주회 내내 한 호흡으로 간다면,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연주이죠. 삶과 음악을 연결, 관객과 소통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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