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리로 소통…"늘 준비된 성악가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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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

‘나’만의 소리로 소통…"늘 준비된 성악가 될 터"

[신문화탐색]김유정 ‘2021성악콩쿠르’ 향토상 수상자
중학교 3학년 때 입문…전남예고·전남대서 수학
메조소프라노로 활동 "성악은 '몸' 잘 쓰는 일"
악보 해석·스토리 집중·애조띤 탄탄한 소리 강점

성악이란 게 참 신기했다. 몸 어디에 힘을 주고 부르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가 돼 흘러나왔다. 두성을 내려면, 머리 쪽으로 온 신경을 쏟았고 흉성을 쓰기 위해서는 가슴 쪽을 부풀리며 최대한 턱을 내렸다. 성악은 목소리가 악기라는데, 몸 전체가 악기이자 울림통이 됐다. 자신의 몸을 컨트롤 하면서 ‘소리’를 내는 게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원체 노래하는 것이 좋았지만 성악에 발을 디딘 후엔, 더욱 노래하는 일에 빠져 살았다.

온 가족·친지들 앞에서 노래하던 다섯 살 꼬마가, 이젠 수 백 관중 앞에서 기량을 뽐내는 성악가로의 활약을 시작했다. 이번 ‘2021광주성악콩쿠르’에서 향토상을 수상한 메조소프라노 김유정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재미를 알았다. 그 재미란, 사실 잘하는 자와 이를 즐기는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마을 사람들 앞이건, 친구들 앞이건 노래를 하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동요, 가요, 트로트 등 맞춤형 선곡이 가능할 정도로 레퍼토리도 풍부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들을 외워 술술 부를 만큼 끼가 다분했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는 날이면 온 지인들을 다 초청해 손녀의 재롱을 뽐내곤 했다.

그러다 성악이란 걸 처음 접한 것은 우연히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전혀 다른 창법의 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온 몸에 전율이 일만큼 인상적이었다. 그 후, 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챈 부모님의 권유도 잇따르면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성악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전남예고를 거쳐 전남대에서 수학했고, 현재는 전남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취미나 특기로 노래를 부르는 것과 전문적으로 성악을 한다는 건 꽤 결이 다른 일이다. 낯선 배움의 길에서 힘들지는 않았느냐 묻자, “노래를 하는 내내 너무 너무 재미있어 힘들다는 생각은 안했다”고 밝힌다.

“노래는 계속해왔지만, 성악의 세계는 또 다른 장이 열리는 것만 같았죠. 몸을 통해 다양한 소리가 나고, 어디에 힘을 주느냐, 혹은 빼느냐에 따라 들려오는 소리도 바뀌니까 정말 신기했어요. 하면 할수록 계속 실력이 느는 게 스스로에 느껴졌고, 그게 큰 원동력이 돼줬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지휘자 Gian Luigi zampieri와 함께한 김유정씨.
그는 여느 성악가처럼 연습실에서 노래하는 일에 열중했지만, 그만큼 더 공을 들인 게 있다면 몸의 구조를 파악하고, 적절히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었다. 세심하게 소리의 결을 바꾸는 것을 연습했다. ‘몸’을 쓰는 것이기에 누구보다 더 자신의 신체를 잘 알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강점은 중저음이 가진 묵직함이다. 여성의 목소리 치곤 굵은 편에 속해, 듣기에 더 없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애써 감정을 찐하게 넣지 않아도, 소리에 슬픔이 깃들어 있으며 굵고 탄탄한 소리는 웅장함으로 다가온다. 그의 무대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지는 대목도 바로 이 이유 덕이다.

타고난 음색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무대가 감동스러운 것은 곡을 받고 무대에 서기까지 온 과정에 쏟는 김씨의 열정도 큰 몫을 한다. 그는 곡을 받으면 원어로 된 악보의 노랫말을 단어 하나하나 씩 끊어 해석을 한다. 한국인이기에 쉽게 놓치고 마는 억양들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2021광주성악콩쿠르’ 향토상 수상 후 촬영한 기념사진.
“오페라 아리아 같은 경우에는 아리아 한 곡을 위해 전 작품을 모두 공부하죠. 그래야만 이게 어떤 부분에서 하는 노래인지, 앞뒤 상황 파악이 가능하니까요. 그 감정 선을 고스란히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아리아에 대해 해석하고 공부를 할 때는 그날 하루를 다 책상 앞에 앉아 보내는 것 같아요. 그렇게 든든하게 채워 넣고 나면 노래하는데 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죠.”

늘 열심히 노래했지만 코로나19가 막 터졌을 땐, 크게 상심하기도 했다. 이제 막 연주회나 공연 활동의 스케줄이 점점 채워져 가고 있는데 그 기회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다.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자, 그는 미래가 꽉 닫혀버린 것만 같은 좌절감을 맛봤다.

“대학원 석사 졸업을 앞두고, 오페라 ‘카르멘’의 주역으로 뽑혀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메조소프라노는 음역대의 특성 상 엄마나 할머니 역할 등 조연급 배역이 많이 주어져요. 메조소프라노가 주역인 작품은 ‘카르멘’, ‘베르테르’ 등 손꼽지요. 그만큼 귀한 기회예요. 하지만 코로나가 재확산 되면서 결국 공연이 무산됐어요. 앞으로의 길이 암흑이 된 느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불안함에 우울한 시기를 겪었죠. 성악을 하면서 처음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인 것 같아요.”
이탈리아 로마에서의 협연 모습.
그래도 잘 이겨내 이번 광주성악콩쿠르에서 그는 향토상의 영예를 안았다. 코로나 탓에 반강제적으로 무대를 쉬다가 나간 경연이었던 터라, 큰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경연이 아니라, 나의 연주회”라는 자기 최면으로 자신의 기량을 한껏 뽐낼 수 있었다.

대회를 앞두고는 컨디션 조절에 공을 들였다. 실제 목의 컨디션이 대회 성적을 좌우하는 성악인들은 목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는 목이 잠기는 걸 예방하기 위해 따뜻한 수건을 목에 감싸고 지낸다. 또 잠을 잘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자는 게 그만의 방법이다. 그러면서 무대에 먼지가 많아서, 성악가 대부분은 직업병처럼 비염이 있다고 전해준다. 호흡을 크게 하면서 노래를 하는 이들이 겪는 고충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연주회든 무대에 서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자는 다짐을 합니다. 늘 후회없는 무대를 펼치려고 하죠. 그러면 관객들에게도 진심과 간절함이 가 닿는다고 믿어요. 한 번은 공연을 마치고 한 분이 손을 잡으시더니,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격려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럴 때 정말 음악하기를 잘했구나 싶죠.”

그는 자신의 강점으로 남들과는 다른 목소리의 ‘색’을 꼽는다. 따뜻하지만 강한 울림이 있는 소리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차별화된 목소리를 가졌다고 믿는다. 앞으로 이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부지런히 무대에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우리 삶에 있지만, 무대는 다시 속속 재개되고 있어요. 공연예술에서 코로나와의 동행이 시작된 것이죠. 이번 연도에 신인음악회 무대에 섰고, 성악 콩쿠르에서 수상도 했어요. 성악 인생에 있어 더 많은 기회들이 속속 등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늘 준비돼 있는 성악인이 되려고 해요. 광주·전남 지역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관객들에게 저만의 소리를 선사하기 위해 늘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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