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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여수산단 내 석유화학제품 제조공장인 이일산업에서 폭발과 함께 큰 불이 났다. 이 불로 시설 위쪽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노동자 3명이 폭발 충격으로 현장과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발생 업체는 폐유 정제·화학제품 생산·비금속 재생 재료 처리 등을 하는 사업장이다. 이 업체에선 앞서 지난 2004년 4월에도 ‘닮은 꼴’ 폭발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들이 전신 화상을 입는 등 크게 다치는 사고를 냈었다.
이렇게 여수산단은 잊을 만하면 폭발, 화재,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 등이 발생해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여수산단은 지난 1967년 화학공업으로 대한민국의 부흥을 이끈다는 기치로 조성을 시작했다. 전용부두의 설치, 공업용수의 확보, 산업도로 건설 등 기반시설을 마무리 짓고 1969년 본격적인 입주를 시작했다.
1977년 제7비료공장(남해화학)이 건설돼 연 260만t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비료 생산시설로 가동을 시작했으며, 호남에틸렌을 비롯 호남석유 ·한양화학 ·한국다우케미컬 등 대규모 석유화학공장들이 잇따라 건설됐다.
현재 총 285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총 20,000 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LG화학, GS칼텍스, 여천NCC 등 메이져 3사와 한화솔루션, DL케미칼, 롯데케미칼, E1, 금호석유화학, 삼남석유화학, 바스프 등 대기업과 외국계 대기업들이 대거 몰려있다.
이렇게 화학 전문공단으로 조성됨에 따라 여수산단은 가스누출과 화재, 폭발 가능성이 늘 상존하고 있다. 가연성 화학제품인 폴리에틸렌·폴리염화비닐·가성소다 등 폭발과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물질을 다루는 탓에 사고가 이어지면 대형 사고로 번져 ‘화약고’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 새(2017~2021년) 여수산단에서는 대형사고로만 총 16건이 발생했다. 이는 사망자가 발생했거나, 재산피해가 1억원 이상,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 등만을 골라 집계한 수치다.
16건 사고로 8명 사망·부상 6명 등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재산피해는 9억4천여만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 9월에 공장 옥상에서 작업하던 외주 청소업체 직원이 추락해 사망했고, 2018년 8월에는 기계에 부딪힌 작업자가 사망했다.
2018년 10월에는 화력발전소에서 부품 교체 작업 중 맨홀을 여는 순간 화염이 분출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2021년 2월에는 화학공장에서 폐촉매 제거작업 중 작업자가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2021년 1월에는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에 작업자가 몸이 끼어 숨졌다. 지난 9월에는 프로판 가스 탱크 작업 중 호흡곤란에 빠진 작업자가 숨졌다.
통계 집계를 1967년 산단 조성 시기까지 넓히면 사고 건수는 더욱 늘어난다.
여수시에 따르면 1967~2016년까지 여수산단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321건이다. 사망자 133명·부상자 245명 등이 발생했고, 재산피해액도 1천600억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 사망자까지 합하면 산단 조성 후 지금까지 사고로만 14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여기에 사업장 굴뚝에서 상시 매연을 내품으면서 주민들은 건강 이상을 호소하고 있고, 인근 산자락까지 오염물질과 화염 부산물이 퍼지는 등 부가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잇따르는 사고의 원인은 산단 조성 이후 설비 개선과 안전보강이 제 때 이뤄지지 않았고, 관리감독이 소홀할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 구조가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사고의 90% 이상이 하청업체로 나타났는데, 이는 하청업체들이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근로자들을 열악한 환경으로 내몬 결과이다. 대기업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발주할 때 대기업 수준으로 인원을 충당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한다면 대부분의 사고를 막을 수 있음을 말해주는 통계이기도 하다.
산단에서 생산되는 경제적 가치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람의 목숨과 바꿀 수는 없다. 한 명의 근로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면 남편과 아빠를 잃은 그 가정이 얼마나 피폐해지겠는가.
산단이나 기업 경영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특히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으로 번지는 여수산단은 더더욱 그렇다.
반복되는 여수산단의 산업재해를 근본적이고도 항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균수 기자 dangsannamu1@gwangnam.co.kr 여균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