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 공유하는 선율…우리들 정서 풍부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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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 공유하는 선율…우리들 정서 풍부해지길"

[남도예술인] 바이올리니스트 정수진 광주시향 상임단원
6세 때 피아노 입문 11세에 바이올린 연주 본격 시작
조선대 음교과 재학 美 공연 터닝포인트 연주자 결심
"열정적 순수함서 영감" 어린이·시민오케스트라 지휘도

바이올리니스트 정수진씨는 “기쁨과 슬픔 등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으로 우리들의 정서가 풍부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물 하나. 대학교 2학년 때 그에게 찾아온 우연한 기회였다. 한 달 간 미국 서부를 돌며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한 무대에 오른 것.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준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후손인 그는 온 마음을 다해 바이올린을 켰다. 한 참전용사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옛 한국의 모습을 공유한 시간은 그의 바이올린 선율에 고스란히 담겨 청중들의 가슴에 가 닿았다. 그는 그가 가진 재능으로 미약하지만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음을 느꼈다. 세대와 국가, 피부색을 초월해 음악의 힘을 느낀 경험이었다. 바이올린을 향한 마음이 점점 깊어지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음악 교사보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는 바이올리니스트 정수진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단원이 연주자의 길을 택하게 된 계기다. 조선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 진학해 막연히 교사가 될 줄 알았던 그는 굳은 결심 덕분인지 졸업과 동시에 시립교향악단에 입단했다.

시립예술단의 경우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예술단이어서 정년이 보장된 데다 입단 자체로 예술인으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그만큼 경쟁이 무척이나 치열하다. 졸업과 동시에 하늘의 별을 딴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어릴 적부터 여러 악기를 다루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고 한다. 무대에 서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악기들과 화음을 이루는 그 순간, 일상에서 겪기 힘든 짜릿함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음악이 참 좋았다. 넘치는 끼에 그는 음악에 몸을 맡기는 재즈댄스와 폴댄스를 배우러 다니고 직접 지역축제에 참가해 노래를 불렀다. 또 국회의사당을 찾아 거기서 연주한 그의 바이올린 선율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피아노로 음악에 입문한 그는 6세에 시작해 학창시절 내내 교회에서 반주를 맡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특기 적성을 살리는 학교 분위기에 또래들이 하는 악기를 유심히 보다가 4학년 때 선택한 게 바이올린이었다. 당시만 해도 바이올린은 흔한 악기가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는 게 전부였다. 음악을 즐겼던 만큼 중·고등학생 때에도 쭉 바이올린과 함께 했다. 그러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맞닥뜨렸다. 앞으로의 인생은 음악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뚜렷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몰랐다. 진로 결정을 앞두고 부모의 조언이 음악 교육과를 가는 데 크게 작용했다.

대학 생활 내내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지역의 크고 작은 무대에 섰다. 교사라는 직업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때 학교에서 영·호남교류음악회로 이뤄진 미국에서의 무대 경험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간절함은 있잖아요.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간절함이 잘 전달될 때 감동은 배가됩니다. 내용은 서로 다르더라도 화합을 이루는 음악적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걸 몸소 경험한 게 미국에서의 공연이었던 거죠.”

정수진씨가 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연주 모습.
독주회 연주 모습
스스로 음악을 해야 할 당위를 정립하니 오로지 바이올린 연주에만 몰두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시립교향악단 상임단원이 되고 나서는 연주자로서의 발전을 위해 조선대 일반대학원 음악학과에서 공부했다. 음악의 이해 범위를 넓히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 AMI 아카데미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5년과 2016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드림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아이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한 데 이어 올해부터 전남문화재단 ‘꿈키움 드림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맡고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관객들을 접할 때는 하고 싶은 연주를 원없이 하면 되고, 어린이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무대에 설 경우는 때로는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끌어내기 위해 다독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잘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지휘자로서의 경험이 제 연주에도 도움이 되지만,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를 하는 데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줄 수 있어 도움이 되죠. 교육을 전공한 점도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음이 하나 틀리더라도 아이들의 순수함과 열정에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상투적일 수 있겠으나 음악은 순수할 때 가장 감동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그는 요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드림오케스트라에서 가르친 아이들이 음악 전공자가 돼 만났을 때, 삶과 밀접하게 예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지휘자로 여러모로 아이들의 삶을 이끌면서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

“세 아이의 엄마여서 오케스트라를 통해 만나는 아이들이 다 우리 아이들 같죠. 아이들이 커나가는데 좋은 영향이 미쳤으면 합니다. 단단한 마음과 풍부한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클 수 있게 자양분을 공급한달까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기여했으면 하죠. 그래서 해이한 마음보다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 허투루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잡곤 해요.”

최근 그는 오랜만의 독주회로 청중들을 만났다.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비롯, 크라이슬러의 ‘푸냐니 스타일의 서주와 알레그로’와 ‘싱코페이션’,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를 차례로 들려줬다.

특히 마지막 무대를 딸과 함께 장식했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 삽입곡으로 알려져 있는 오오시마 미치루의 ‘바람피리’(KAZABUE)에 가사를 얹은 ‘바람부는 어느날’을 초등학교 6학년인 큰 딸 손예슬양과 그가 함께 연주한 것이다.

이 곡의 가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바람이 머무는 날에는 엄마 목소리 귀에 울려 헤어져 있어도, 시간이 흘러도 어제처럼 한결같이 어둠이 깊어질 때면 엄마 얼굴을 그려보네…(중략)’와 같이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잘 나타난다.

이태리에서 지휘자 공부를 하던 정수진씨가 교류하던 사람들과 찍은 기념사진
연주회에서는 어머니에 바치는 사모곡을 멈추지 않는 눈물을 훔칠 겨를 없이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청중들은 가사를 몰라도, 이 모녀의 바이올린 연주에 귀를 기울이면서 함께 눈물지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그는 앞으로도 연주자와 지휘자로 무대에 서며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광주시립교향악단 무대 뿐만 아니라 오는 17일 나주영산포초등학교에서 ‘꿈키움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20일 보성군 클래식 보물창고 초청공연을 앞두고 있다.

‘광주신포니에타’ 정기연주회를 위해서는 9월26일 전남대 민주마루와 10월14일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11월1일 광주북구문화센터에서 총 3회에 걸쳐 무대를 준비한다.

이와 함께 시립교향악단의 무대 뿐만 아니라 디사이플스 챔버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단체 공연을 통해 바이올린 선율을 선사할 계획이다.

이외에 강사로 나가고 있는 ACC시민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와 지휘를 하고 있는 전남문화재단 꿈키움 드림오케스트라를 잘 이끌고 싶다는 바람이다.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음악봉사도 구상 중이다.

끝으로 정수진씨는 음악이 숨은 감성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감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만 메말라가죠. 감성의 발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즘, 우리 마음을 음악으로 촉촉히 적셔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기쁨과 슬픔 등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으로 우리들의 정서가 풍부해지길 바랍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정채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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