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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마루x성지송 콜라보 공연 |
올 7월 열린 ‘제12회 오월창작가요제’에서 오후&성지송 팀이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이들이 부른 ‘쩔뚝쩔뚝 봄’은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광주 시민들의 희생에 감사하고, 분열의 아픔으로 완전한 화합을 이뤄내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곡이다. 심사위원들은 ‘멜로디와 편곡이 대중적이고 편안하다’, ‘진솔함이 있고 작품성 높은 음악’ 등의 평을 남겼다. 이번 가요제를 통해 수상을 떠나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는 두 사람의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월창작가요제 출전은 성지송씨가 먼저 권유했다고 한다. 지난해 제11회 가요제에서 동상을 차지한 싱어송라이터 김도연씨의 세션으로 참여한 기억이 좋게 남아서다. 오후씨는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제 목소리가 가요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요제는 아무래도 고음도 쭉쭉 뚫리고 그런 걸 선호하니까요. 하지만 지송씨가 꼭 함께 나가고 싶다고 얘기하고, 저도 수상 여부를 떠나 마음 속 하고 싶은 얘기들이 떠오르더군요.”
오후씨는 군복무 시절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늦게 깨닫게 된 만큼이나 배신감과 분노감은 컸다. 왜곡된 역사의 진실, 반으로 갈라진 민족의 분열에 가슴 깊숙이 안타까움과 부조리를 느꼈다. 언젠가 꼭 한번 음악으로 목소리를 내겠다 생각해왔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제주 4·3이나 5·18과 같은 현대사에 대해 얘기하면 자칫 활동에 정치색의 편견이 씌워질 수 있잖아요. 그러던 중 마침 ‘오월창작가요제’를 만난 거예요.”
처음에는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로만 곡을 쓰고 무대를 준비했지만, 지송씨가 지난해 비슷한 구성으로 대회에 참가한 게 떠올라 변화를 주기로 했다. 둘의 지인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이지혜씨, 퍼커셔니스트 마늘씨를 섭외해 4명의 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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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성지송은 “코로나19와 삶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곡을 꾸준히 선보이고 싶다”며 “앞으로도 그룹과 개인활동을 겸하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대중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
“노래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넣기보단 최대한 분위기적으로 끌고 가도록 했어요. 메이저 코드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마이너 코드로 어두웠던 당시 상황을 표현했죠.”
전주에 인상적인 무반주 첼로 부분은 성지송씨가 만들었다. 80년 5월 당시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첼로로 표현한 것. 곡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밝은 느낌을 함께 넣었다. 간주 부분에는 미래로 달려가는 듯한 분위기를 첼로 선율로 그려냈다.
열심히 무대를 준비했지만 본선 당일 두 사람은 긴장감에 가사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연주할 때 떨어본 적이 없다는 지송씨도 그렇게 긴장한 적은 처음이었다고.
“대기실에서 다른 팀의 무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실력 발휘를 못한 거 같아 ‘어떡하지’하면서 기가 죽어 있었어요. 금상까지 발표가 났을 때는 그냥 수상을 포기하고 있었구요. 기대를 안하고 있어서인지 발표를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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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전국 오월창작가요제 당시 대상을 수상한 오후씨(오른쪽)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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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성지송 |
오후씨는 1998년 4인조로 데뷔한 밴드마루의 보컬이다. 2000년대 초 국내에 처음으로 인디음악 열풍이 불던 시절 밴드마루는 노브레인, 크라잉넛 등과 함께 활동한 1세대 인디밴드의 시초다.
“2005년 팀 이름을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바꾸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같은 해 방송국에서 모 인디밴드의 성기노출 사건이 터지면서 방송사로부터 모든 인디밴드들이 출연 정지를 당하게 됐죠. 그게 저희 팀 출연 바로 전 주에 일어난 일이에요. 방송에서 막 차트에 진입하고 대중에게 알려지려던 차였죠.”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 정지의 타격은 매우 컸다. 당시 소속사와 전속계약 기간이 묶여있는 상황에서 오후씨는 생계를 위해 일터로 떠나게 됐다. 그렇게 2009년까지 활동을 못하다 2010년 밴드마루를 재결성했고, 내년이면 25주년을 맞는다.
“지금껏 사회적 이슈를 비롯해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노래해왔어요. 멤버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지난해에는 서울환경연합의 프로젝트 앨범, 올해는 에너지시민연대의 캠페인 로고송 작업 등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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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오후&성지송 ‘사랑할까요’ 발매 기념 공연(Photo by 유담) |
“대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오랜 시간 연주를 할 수 없었어요. 긴 공백기동안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죠. 직접 만든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2009년 크로스오버 앨범을 냈습니다. 전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게 좋거든요. 2016년에는 가요 리메이크 앨범도 발매했죠.”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렉쳐콘서트에서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기반으로 강의와 연주를 들려주는 힐링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각자의 자리에서 음악이라는 공통의 매개체로 활발히 활동해오던 두 사람은 2019년 말 통영 프린지페스티벌 뒷풀이에서 우연히 만난 게 인연이 됐다. 솔로 활동으로 새로운 어쿠스틱 기반의 음악에 도전하고 싶었던 오후씨가 지송씨에게 프로젝트 팀을 제안한 것.
“그 당시 솔로 프로젝트를 통해 어쿠스틱하고 편안한 곡으로 활동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지송씨는 클래식 뿐 아니라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가능하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했죠.”
2020년이 되면서 때마침 코로나19가 터졌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연주가 끊겼다. 두 사람은 어쿠스틱 프로젝트 팀 오후&성지송을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소규모 팀이다 보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무대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공연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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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오후&성지송 ‘사랑할까요’ 발매 기념 공연(Photo by 유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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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마루 4집 발매기념 공연(Photo by 임형준) |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저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데도 못나가니까 답답한 마음에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옥상에 올라갔는데 미세먼지가 걷혀 맑고 깨끗한 하늘이 보이더라고요.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옥상에 앉아 30분도 되지 않아 만든 곡이 ‘사랑할까요’예요.”
같은 해 10월 발매한 곡 ‘너에게 감사해’는 지송씨의 싱글 앨범에 있는 곡에 오후씨가 가사를 붙여 만들었다. 이 노래로 2021년 강릉관광진흥원에서 개최한 ‘온택트 버스킹대회’에서 동상을 받기도 했다.
이들의 삶에 늘 음악이 함께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긍정적인 기운으로 인터뷰 내내 상대방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었다. 타인의 영향으로 방송 출연을 정지당해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비운(?)의 일화도, 불의의 사고로 겪어야 했던 시련의 시간도 이들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만이 아닌 흘러간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들은 앞으로도 그룹과 개인활동을 겸하며 새로운 시도를 담은 다양한 앨범으로 꾸준히 대중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두 사람에게 음악으로 이루고 싶은 각자의 계획을 물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제가 살면서 느낀 건 음악이 주는 힘이 굉장히 크다는 거예요. 코로나19와 삶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곡을 꾸준히 선보일 겁니다.”(성지송)
“밴드로서 롤링스톤즈처럼 에너지 넘치는 팀이 되고 싶죠. 개인적으로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뮤지션으로 멋지게 무대에서 늙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오후)
김민빈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 김민빈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