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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시인 |
문학의 ‘문’자도 관심을 갖지 않다가 이른 나이에 겪게 된 결혼 그리고 이혼 등 삶의 풍파는 그에게 큰 생채기를 남겼다. 아이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자신이 없는 삶을 한때 감내하는 시간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시간제 보육교사와 피아노 강사, 식당 알바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상이 한동안 지속됐다. 삶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정도다. 힘겨운 삶과 사투를 벌이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시적 세계는 이런 자신의 굴곡진 삶과 삶의 그늘을 모두 껴안고 있다. 그는 고립돼 가는 삶을 다독이며 뒤늦은 나이에 문학에 투신해 꽃을 피운 경우다. 전남 함평에 머물며 시창작에 매진하고 있는 강진 출생 박은영 시인(47)의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듯 박 시인은 다른 예술인과는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다. 스승이나 지도교수가 없는 채 생활 속에서 스스로 터득해 시인이 됐다. 독학으로 신춘문예를 뚫었고, 시집을 펴내는 등 시인의 자리를 굳건하게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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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시인 첫 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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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시인 두번째 시집 |
그는 자라면서 한번도 문학을 꿈꾸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한번도 꿈꾸지 않았던 시를 꿈꾼 것은 결과론적으로 그에게 잘된 선택이 됐다. 자신의 흐트러진 삶의 기운들을 하나로 모아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응축해낼 수 있는 것 역시 시가 열어줬다고 볼 수 있다.
시가 찾아오기 직전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동시를 쓴 적이 있었는데 칭찬을 들었고, 교내 소식지에 실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 선생님께서 ‘너는 시를 쓰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 기억이 그가 성인이 된 이후 시의 첫 출발점이 됐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그는 ‘시는 내게 보낸 동아줄’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내면서 먹고 살만큼만 일을 하되, 나머지는 글을 쓰는 데 투자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17년에 달한다. 짧지 않은 동안 습작의 시간을 살아온 셈이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시의 샘을 파고들었던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결국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당선작 ‘발코니의 시간’)와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당선작 ‘인디고’)에 당선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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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문화일보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맨 오른쪽) 시인과 함께 한 박은영 시인(가운데) |
첫 시집은 열정을 다해 승화됐던 시들 중심으로 엮어졌다는 의미다. 두 번째 시집 ‘우리의 피는 얇아서’는 첫 번째 시집에서 보여줬던 틀에서 탈피해 시인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시들이 망라됐다. 여기서 ‘피’는 사람의 피라기보다는 만두 피로, 여러 음식재료들이 들어가 있는 안이 찢어질 듯하면서도 찢어지지 않는 모습에서 가족을 반추한 것이다. 가족이 찢어질 듯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려 한 것으로 읽혔다.
여기다 현시대 청년들이 찢어질 것 같은 삶을 안고 사는 문제 등을 반추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듯 했다. 주변인들보다는 언니나 당신, 우리, 그 모두가 시적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인의 시에는 가족을 위시로 한 삶이 투영돼 있다. 멀리서 시적 소재를 찾기 보다는 자신의 현재적 삶에서 끌어오는 방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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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시인의 사회로 이창수 시인과 함께 한 ‘제10회 사이펀 문학토크’ 모습(왼쪽 세번째가 박은영 시인) |
“나로 돌아오는 데 17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글을 쓴 이후 10년째까지는 신춘문예에 매년 도전했는데 계속 낙선을 하다 보니까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했죠.”
그는 시를 쓰면서도 소설 창작에 도전하고 있다. 2016년부터 소설을 창작하고 있지만 원고 하나를 50번 넘게 퇴고하는 과정을 거칠 만큼 집요하고 끈질기게 임한다. 이 끈질김이 박 시인을 추동하는 주요 에너지가 아닌가 싶다. 소설까지 창작하는 데는 시와 소설 두 장르 모두 만해 한용운처럼 경지에 오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만난 소설부문 심사위원이 만해 한용운이 시와 소설 등 두 장르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다고 했는데 그 말에 자극을 받았죠. 그러다보니 더 열심히 써야 했습니다. 단순한 것 보다는 어려운 쪽을 탐색하는 것을 선호해요. 파고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에요. 겉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을 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시는 은유에 모두 담아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소설은 다 보여줄 수 있다는 시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약자들의 억눌림을 표현하는데 소설이 더 유리한 구석이 있어 병행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들려줬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인의 길에 들어섰고, 삶의 훈장처럼 따라다니는 여러 아픔들과 현재도 싸우고 있는 가운데 ‘어떤 시인으로 평가받고 싶냐’ 묻자 ‘공감하는 시인’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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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에서 가족들과 함께 한 박은영 시인 |
이처럼 글자라는 무생물에 시인의 혼을 불어넣는 것이 시작(詩作)이어서 독자들이 단순하게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영혼을 읽는다고 여긴다. 그래야 독자의 허기를 채울 수 있고, 상처같은 것이 치유가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를 물었더니 ‘쉬운 시’라는 답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시가 단지 수식어로 꾸며지고 아름답게만 쓰여지는 것을 원치 않죠. 저는 가장 쉬운 언어로 한 세계를 보여줄까 해요. 현실의 부정이나 그늘 등을 시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싶어요. 가난을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갑보다는 소수자와 약자 등 사회적 을들이 소리치고 싶은 것들을 글의 확장력을 활용, 시로 대신해 세상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응축시키고 싶어요.”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