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홍석 G-Kunst연구소장 |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K-컬처의 성장 가능성을 강조해 왔다. 취임 후에도 “문화가 곧 경제이며, 국제 경쟁력의 핵심”이라 밝히며 K-팝, K-드라마, K-뷰티 등을 통한 산업적 성장을 적극 추구하고 있다.
실제로 ‘K-컬처 시장 300조원 시대 개막’이라는 구호처럼 문화의 산업화를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
또한, 국정기획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높은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라는 비전으로 K-컬쳐시대 핵심콘텐츠 연관산업 육성과 K-컬쳐의 근간, 문화예술 창작역량·향유기반 강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책 기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화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는 정책이 과연 예술의 본질과 다양성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초예술, 지방문화, 전통예술과 같은 비수익성 분야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이는 문화생태계의 뿌리를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기초예술은 대중성이나 수익보다는 실험성과 창의성, 예술 그 자체의 가치에 중심을 두는 분야다.
연극, 무용, 시각예술, 전통예술 등은 상업적 흥행과는 거리가 멀지만,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과 깊이를 책임지는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민간 자율성과 시장 중심을 강조하며, 공공의 역할을 점차 축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기초예술 분야의 재정적 기반을 위협하고, 결국 창작 환경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다.
지난 2024년 예술인 실태조사 결과는 이러한 위기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술인들의 연평균 예술 활동 소득은 1055만원, 월평균 88만원 수준에 불과하며, 무려 31%는 예술 활동에서의 소득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많은 예술인들이 생계를 위해 부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창작 활동이 단절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국 문화의 지속성과 창의성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
지방문화 생태계의 붕괴 또한 심각하다.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인프라와 예산,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인해 지방 예술인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정부의 지원은 축소되고 있으며, ‘행정 효율화’라는 명목과 복권기금 고갈로 인한 지특회계 전환으로 지역 문화예산이 삭감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의 고유한 문화 콘텐츠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지역 예술단체와 활동가들의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지방정부가 자력으로 문화를 지탱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분명하다.
전통예술 분야 역시 위기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악, 민속예술, 무형문화재 등은 한국 문화의 뿌리이자 정체성을 담고 있지만, 대중성과 상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공연 기회의 감소, 후계자 부족, 창작 기반의 붕괴 등으로 인해 전통예술은 점차 단절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잃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뿌리 없는 문화를 살아가게 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특히 지방 소극장의 위기는 이 모든 문제의 상징과도 같다. 소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의 창작과 실험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문화 공간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객 감소와 재정난으로 운영이 어려워졌고, 정부와 지자체의 실질적 지원 부족으로 인해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지역 주민의 문화 향유권 박탈은 물론, 젊은 예술인의 활동 무대 자체가 사라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문화의 산업화는 시대적 흐름이며,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는 단지 상품이나 소비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회의 정체성과 기억, 공동체 정신을 담는 공공재이자 미래 자산이다.
따라서 문화정책은 단기적 수익성과 효율성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반드시 존재해야 할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의 공공적 책임이 요구된다.
문화강국은 단지 K-컬쳐의 글로벌 인기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 곳곳에서 창작의 불씨를 살리고,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예술이 살아 숨쉬며, 전통이 현재와 조화를 이루는 문화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서 진정한 문화 선진국의 모습이 나온다.
문화강국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기초예술과 지방문화, 전통예술의 소멸을 막기 위한 실질적이고 균형 잡힌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