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생 문청들 뭉쳐 ‘첫 동인집’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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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1990년대생 문청들 뭉쳐 ‘첫 동인집’ 냈다

동인 공통점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 출간
결성 10년 만에 결실…8명의 시와 산문 수록
"시의 숙제 잊지 않은 학생들"…12월 낭독회도

겉표지
청년들의 문학활동은 어떨까. 미술 등 다른 장르에 비해 대표적 운문인 시 분야는 생계와 연계시키기가 가장 어려운 장르 중 하나여서 기성 문인들 역시 직업을 가지고 활동을 펼쳐야 하는 것이 대다수다. 기성 시인들마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속 시 쓰기인데, 아직 등단전후 청년 시인들의 삶은 더더욱 열악하기만 하다.

이제 이름을 얻어가기 시작한 젊은 한 시인의 시각장애인 안마사 도전이라는 소식을 SNS에서 접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시를 쓰든, 안쓰든 먹고 살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현실, 어느 누구든 예외는 없다. 그만큼 청년들이 시를 창작하며 사는 일야말로 안정적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시 창작이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 생계를 위해 많은 시간을 그 쪽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다.

생활은 생활대로 잘 해내고, 시 창작은 창작대로 잘 해내면 그뿐이다. 이처럼 미래와 관련해 온갖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늘 고민이 넘쳐나는 청년들이 모여 문학동인을 꾸린 지 10년 만에 첫 동인시집을 누구나 알만한 출판사에서 펴냈다. 주인공은 문학동인 ‘공통점’(대표 신헤아림)이 그곳.

공통점은 광주를 연고로 조선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던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문학활동을 벌이며 출범한 문학동인으로 1990년대생들인 8명의 회원이 다섯가지 주제로 창작한 시와 산문을 한데 엮었다. 이들의 첫 동인집은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펴냈다.

이들의 문학 모임 축에는 통점이라는 공통된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공통점은 사전적으로 둘 또는 그 이상의 여럿 사이에 두루 통하는 점을 말하는데. 여기서 통점은 두루 통하는 점을 지정한다. 통점을 잘못 해석하면 한자는 다르지만 소리나는 대로 접근하면 피부 표면에 퍼져 있어 자극을 받으면 아픔을 느끼는 감각점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통점에 대한 해석은 두루 통하는 점이 맞다. 그만큼 서로 다르기에 통하지 않을 수 밖에 없지만 이런 이질감을 극복하고 문학으로 통하자는 모토가 깔려 있는 것으로 읽힌다. 동인의 시 ‘통증의 군락’ 속에 이 통점이 언급되고 있어 독자들은 통증의 문학적 서사가 지향하는 지점을 다소 예측할 수 있기도 하다.

이번 동인집에는 김도경 김조라 김병관 신헤아림 장가영 이서영 이기현 조온윤씨 등의 시와 산문이 실렸다. 이들은 등단자와 비등단자 모두 가릴 것 없이 모두 문학을 사랑하는 청년들이면 함께 같은 고민을 가지고 분주한 일상 틈틈이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문학동인 ‘공통점’이 결성 10년만에 첫 동인집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를 최근 펴냈다. 사진은 동인집을 들고 포즈를 취한 윤소현 기획자, 장가영, 김도경, 이기현, 김병관씨(왼쪽부터)
김병관의 작품 ‘각각 또는’은 1980년 5월 계엄군 철수 이후 버스 안으로, 매일 제 시간에 오가던 버스의 운행이 중단됐다가 재개된 어느 오후 ‘현규 댁’이 잃어버린 농담과 일상의 풍경에 주목한다. ‘햇빛이 드는 쪽에 앉았던 현규 댁/얼굴에 길이 드러나지 않았다’에서 온갖 풍상을 품고 있는 한 생의 지점들을 길에 비유해 시적 긴장감을 더했다. 또 ‘열무는 천에 덮여 있다/시들지 않기 위해 물을 끼얹은 바구니에서/비릿한 열무의 냄새가 났다’에서 외연으로 비치는 본질이 다가 아니라 그 본질 속에 숨겨져 있는 속성의 특성을 놓치지 않고 시적 관찰로 꿰어내고 있다.

여기다 이기현 동인은 시 ‘통증의 군락’에서 ‘한 사람에게만 기거하던 통증이 모여/군락을 이루면 그곳이 우리의 통점이 되었지/우리는 마음의 시끄러운 쪽을 기록해/매대에 올려놓고 팔기 시작했어//…중략…//고기에는 뼈가 있고/물고기에는 가시가 있고/우리에게는/다만 통증이 있었을 뿐//그래도 우리는 통증을 멈추지 않았지/우리가 서로에게 기거하기로 하며/통증의 가장 자리에서 새어 나오는/시에 대한 탐닉을/거부하지 않았던 것처럼’이라고 노래한다. 시 ‘통증의 군락’은 숲의 군락을 비유해 숲에 가지각색의 나무들이 모여 있듯 우리네가 존재하는 현실 속 통하는 지점이나 유사한 신호로 다가오는 신체적 통증을 망라하면서 ‘뼈’와 ‘가시’, ‘통증’을 비유하며 시적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머리글을 막내에게 맡긴 점 또한 이들의 열린 사고를 짐작할 수 있다. 동인의 말은 모임의 막내인 윤소현씨가 맡았다. 윤씨는 “앞으로도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갈 공통점들을 지켜봐달라.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문학이라는 공통점 아래 다시 모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한때 조선대 문창과에 머물며 이들을 지도했던 나희덕 시인(서울과기대 문창과 교수)은 표사에서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힘겹게 부대끼면서도 시가 내준 질문과 숙제를 내려놓지 않은 학생들, 서로의 손을 이끌고 발을 기다려 주며 같은 빛을 향해 걸어온 시인들, 고통을 대신 할 수는 없지만 나눌 수는 있다고 말하는 드문 우정의 친구들”이라고 표현했다.

동인집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
‘느슨한 연대를 향한 통각’이라는 해설을 쓴 김원경씨는 “공통점은 단순히 이들이 문학을 연구하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유사성을 드러내는 이름에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공통점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문장 속 ‘같은 통점’을 탐색해 드러내 보이며, 그 작업이 줄곧 실패에 그칠지라도 반복하는 과정을 모두 함축한다”면서 “공통점은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 각자의 통점으로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아우른다”고 평했다.

이들이 단순히 동인집 하나를 냈다기보다는 10년만에 첫 동인집을 결과물로 내어놓은 만큼 문청들로 구성된 ‘공통점’이 창작이 고행이 돼 가는 시대를 극복하며 문학적 성장을 이뤄내는 등 앞으로 어떤 문학적 무늬들을 새겨갈 지 주목되고 있다.

그동안 공통점은 독립문예지 출간 및 코로나19 시기 온라인상에서의 문학전시프로젝트 기획 발표, 시 낭독회 예술적 가치 연구 진행(2023)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회원은 현재 기존 조대 문창과 출신 외에 타과나 타대학 출신자까지 동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출판기념회 대신 12월에 광주 동구 책정원도서관에서 낭독회를 열 계획이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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