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6>신안 고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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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6>신안 고이도

갯국 향기 가득…꽃·바다·일상이 만든 가을 풍경
가을~겨울 기간 황금빛 꽃으로 섬과 바다 밝게 물들여
고려 왕산성 기억·갯벌 어우러진 전설과 삶이 깃든 섬
주민 주도 ‘가고 싶은 섬’ 사업 추진…관광객 유입 효과

과거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신안 고이도 염전
바다와 산, 갯벌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신안 고이도 전경
매년 가을에 아자니아 축제가 열리는 갯국정원
맛깔스러운 고이도에서 생산되는 수산물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 방식인 ‘독살’. 섬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이어져온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돌을 쌓아 만든 반달형 혹은 U자형 구조물이 바닷가에 설치돼 물이 들 때는 물고기가 안으로 들어오고, 물이 빠지면 돌담 안에 갇힌 물고기를 쉽게 잡는 방식이다.
왕산성지 석축 일부
조용하고 소박한 어촌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섬인 신안 고이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갖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섬을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해안길에서는 탁 트인 바다와 기암해안이 어우러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고,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노을은 많은 여행자가 꼽는 고이도의 백미다.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어 체험 활동이 가능하고, 주민들이 직접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섬을 찾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상업시설이 적어 한적한 일상을 느낄 수 있으며, 작은 마을과 바다 사이로 이어지는 골목들을 걷다 보면 섬 고유의 정취가 여행자에게 차분히 스며든다. 자연 속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이들에게 고이도는 특별한 휴식처라 할 수 있다.



△ 고양이를 닮은 지형에서 비롯된 섬 이름

신안군 압해읍과 무안군 운남면 사이 바다 위에 자리한 고이도는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바다 위에 한 마리의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지형에서 ‘고이도(高耳島)’라는 지명이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섬 북쪽의 선착장은 무안 신월항에서 도선으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주민들의 실생활 기반은 자연스레 무안권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고이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도선이 한 시간 간격으로 오가며, 압해도 가룡항에서 출발하는 철부선은 차량과 생필품을 싣고 하루 네 차례 왕복한다. 섬임에도 ‘섬 같지 않은’ 편리한 접근성이 고이도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바쁜 육지 생활과 달리 섬에 발을 들이면 고이도 특유의 느긋함과 고즈넉한 풍경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섬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완만한 구릉지 형태로, 서남해 해상 세력이 오갔던 길목이자 바다의 요충지로 알려져 있다. 왕산·맹산·덜산 등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지형은 오랜 바닷길의 길잡이 역할을 했고, 해안가의 갯벌과 염전은 주민 삶을 지탱해온 터전이자 고이도의 생활 문화를 형성한 공간이다.



△왕산성과 고려 시기 흔적

고이도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숙부로 전해지는 ‘왕망’과 관련된 전설이 지금도 구전된다. 왕망이 자신의 세력을 일으키기 위해 섬에 성을 쌓고 주변 해역을 드나드는 선박을 확보하려 했다는 이야기다. 역사적 기록과 구체적인 사실은 명확히 밝혀진 부분이 적지만 왕산성 일대에 약 1㎞가량 이어지는 성벽 흔적과 옛 주거지로 추정되는 터가 남아 있어 전설의 무게를 더한다.

왕망과 관련된 전설은 오랜 시간 동안 고이도 주민들의 정신적 유산으로 자리해 왔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 주민들은 왕산에서 제를 올리며 한 해의 평안과 풍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산과 바다, 삶이 어우러진 제의 문화는 섬 공동체의 단단한 결속을 보여주는 상징적 전통이다.



△간척과 갯벌이 만든 풍요의 지형

고이도는 북서·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구릉지와 만곡부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지형을 갖고 있다. 일부 간석지는 간척돼 경작지와 염전으로 활용됐고, 현재도 섬 곳곳에서 염전의 흔적을 관찰할 수 있다. 간조 시에는 주변 부속섬과 연결되는 갯벌이 넓게 드러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 섬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섬 중앙부의 왕산은 높지 않지만 조망이 뛰어나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서남해 바닷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왕산성에서 내려다보면 사동과 대촌 사이에 자리한 다섯 곳의 옛 나루터 흔적이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 있어 과거 고이도가 해상 교통의 중요한 지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자연과 일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섬

고이도에는 현재 약 128가구, 200여명의 주민이 살면서 농업과 어업이 균형 있게 어우러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보리·콩·고구마·조·마늘·고추 등 다양한 밭작물이 재배되며, 바닷가에서는 김 양식과 새우 양식, 낙지 어획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특히 무안 탄도와 압해도 사이의 우수한 갯벌에서 자란 수산물은 감칠맛이 깊어 ‘개미지다’라고 표현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

고이도의 해안도로는 섬을 한 바퀴 돌며 염전·갯벌·바다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자연 체험형 길이다. 간조 때 드러나는 광활한 갯벌은 외지인에게는 낯설고 신비로운 풍경으로 다가오며, 섬 주민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자연의 달력 같은 공간이다.



△가을·겨울 밝히는 ‘갯국의 섬 아자니아’

고이도는 지난 2023년 ‘가고 싶은 섬’에 선정된 뒤 갯국을 중심으로 한 ‘아자니아 아일랜드’라는 독창적 섬 브랜드를 구축했다. 갯국은 10월부터 12월까지 가지 끝에 한데 모여 피는 야생 국화로, 노랗게 물든 꽃잎 끝을 따라 은은한 흰색 테두리가 감싸며 바닷가 풍경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겨울철에도 시들지 않는 생명력을 지녀 ‘해변국화’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이도 아자니아 축제는 이러한 식생 자원을 활용해 가을·겨울 섬 여행의 계절성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축제에서는 갯국뿐 아니라 털머위, 황화코스모스 등을 활용한 정원 조성, 다양한 포토존, 꽃과 바람을 느끼는 산책 코스가 운영됐다. ‘황금주화 찾기’ 이벤트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축제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플라워 레진아트, 바람개비 만들기, 해변 캠핑 등 체험 프로그램은 ‘꽃·체험·휴식’을 콘셉트로 한 고이도만의 힐링 경험을 제공하며, 축제가 단순 관람형 프로그램을 넘어 주민 참여형·상생형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가고 싶은 섬’ 선정 이후 변화

고이도는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24곳 중 마지막 선정지로, 늦게 출발한 만큼 사업 추진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남다르다. 섬에서는 갯국정원 조성, 폐교 리모델링 호텔 조성, 고이 가로수길 정비, 마을 경관 개선, 노을쉼터 조성, 갯국 축제 개최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고이도의 자연경관과 생활문화를 기반으로 섬을 찾는 이들에게 ‘꽃으로 여행하는 섬’이라는 새 정체성을 만들고 있으며,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지역 내 소득 창출과 관광객 유입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섬 주민들은 “고이도의 생활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해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갯국을 보러 찾아오면서 섬의 매력이 알려지고 있다”고 말한다. 섬의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박영채 전남도 해양수산국장은 “고이도는 갯국과 갯벌, 염전 등 자연과 생활이 맞닿은 원형적 풍경을 간직한 소중한 섬이다”며 “주민이 중심이 된 ‘가고 싶은 섬’ 사업을 통해 섬의 고유한 이야기와 풍경을 지속 가능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섬을 찾는 사람들이 단순한 관광을 넘어 고이도만의 삶의 결을 체감할 수 있도록 주민과 행정이 함께 섬의 미래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박정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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