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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바다 위 시간을 담은 섬으로 불리는 여수 낭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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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도 주상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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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번미술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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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도 카니발 재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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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도 둘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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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도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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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도를 연결하는 연륙교와 연도교 |
△이리를 닮은 지형에서 비롯된 섬 이름
낭도는 여수시 화정면에 속한 섬으로, 섬의 전체적인 형상이 이리를 닮았다고 해 ‘낭도(狼島)’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여수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26㎞ 떨어져 있으며, 해안선 길이 약 19.5㎞, 면적은 5.02㎢다. 크지 않은 섬이지만 해안선이 잘 발달돼 있고, 완만한 산지와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지형적 특징을 지닌다.
과거에는 여수항이나 백야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시간 50분에서 1시간 30분 가량 이동해야만 닿을 수 있었던 섬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근 섬들을 잇는 연륙·연도교가 단계적으로 개통되면서, 낭도는 차량으로 접근 가능한 섬이 됐다. 섬의 고립성이 점차 해소되면서 생활 여건과 관광 환경 또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일레븐 브릿지’ 섬을 잇는 상상
낭도의 변화는 여수 일레븐 브릿지 구상과 맞닿아 있다. 여수 일레븐 브릿지는 여수 돌산에서 고흥 영남면까지 바다 위 여러 섬을 11개의 해상교량으로 연결하는 해안형 관광도로이다.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섬과 섬을 하나의 관광·생활 네트워크로 묶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가운데 적금도·낭도·둔병도·조발도·화양면을 잇는 교량 구간은 이미 일부 개통돼 있으며, 나머지 구간은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각 교량은 서로 다른 구조와 경관을 갖춰 ‘바다 위 교량 박물관’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해당 노선은 국도 77호선에 포함돼 있으며, 여수~고흥 구간은 남해와 서해의 풍경을 동시에 품은 대표적인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여수와 고흥을 잇는 약 40㎞ 구간은 ‘백리섬섬길’로 불리며, 전국 최초 대한민국 관광도로(전남 1호)로 선정됐다. 낭도는 이 길 위에서 섬 관광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핵심거점 중 하나다.
△갱번에서 미술길로…바다와 삶의 공간
낭도에서 ‘갱번’은 단순한 해안 지형이 아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갱번은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바위 지대를 뜻하며, 예로부터 마을 공동어장 역할을 해왔다. 자연산 미역과 해조류, 전복, 배말, 거북손 등을 채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민들에게는 바다 다음으로 중요한 생계 터전이었다.
낭도 여산마을에는 약 3㎞ 길이의 갱번길이 있다. 한때는 어둡고 낡은 담장이 이어지던 이 길은 ‘갱번미술길’로 새롭게 단장됐다. 마을 담장에는 벽화와 조형물, 작가들의 미술 작품과 주민들의 사진이 어우러져 있으며, 길 곳곳에는 쉼터와 포토존이 마련됐다. 갱번미술길은 생업의 공간이 문화 공간으로 확장된 사례로, 마을의 일상이 관광 자원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여장남자·남장여자, 낭도만의 특별한 세시풍속
낭도에는 한때 매우 독특한 전통 세시풍속이 이어져 왔다. 정월 대보름 무렵이면 주민들이 남자는 여장, 여자는 남장을 하고 가면을 쓴 채 마을을 돌며 달집을 태우는 가장 무도회가 열렸다. 약 50년 전까지 이어진 이 행사는 잡귀를 쫓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체 의례이자, 청춘 남녀의 만남과 교류의 장이기도 했다.
특히 달집 태우기에는 반드시 가면이나 가장을 한 사람만 참여할 수 있었고,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성 역할을 뒤바꾸는 이 풍습은 낭도 공동체가 지닌 해학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는 인구 감소와 생활 여건 변화 등으로 중단된 상태지만 낭도만의 독특한 문화 자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공룡이 남기고 간 시간의 흔적
낭도와 사도, 추도, 중도, 장사도, 증도, 연목 등 인근 섬 일대에서는 중생대 백악기 시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특히 사도에서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공룡 발자국 화석군이 발견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낭도리 일대에서는 조각류 공룡을 중심으로 용각류와 수각류 공룡의 발자국도 확인된다. 이는 당시 이 지역이 얕은 바다나 습지가 아닌 육상 환경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질학적 단서다. 공룡 화석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지질·생태·교육·관광을 아우르는 복합 자원으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의 해설이 더해질 때 낭도는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바다가 갈라지는 ‘신비의 바닷길’
정월 대보름과 음력 2월 영등사리 무렵이면 낭도 인근에서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사도의 니끝에서 추도까지 약 780m, 폭 약 15m 규모의 길이 조수 간만의 차로 드러난다. 진도의 신비의 바닷길과 유사한 자연 현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바다의 리듬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이 길이 열리는 순간 섬과 섬은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관광객에게는 특별한 체험이 되고, 주민들에게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생활의 일부였다. 이 장면은 낭도의 자연이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환경임을 보여준다.
△걷고 쉬고 바라보는 섬
낭도에는 총 7개의 탐방 코스가 조성돼 있다. 1시간 이내로 걸을 수 있는 섬 둘레길 3개 코스와 2~4시간이 소요되는 상산 등산로 4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상산은 해발 278.9m로, 정상에 오르면 연륙·연도교가 고흥까지 이어진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중간 지점인 따순기미에서는 사도·추도 등 7개 섬이 만들어내는 장쾌한 풍경이 펼쳐진다. 섬 둘레길 1코스를 따라가면 남포등대와 신선대, 주상절리와 쌍용굴, 신서샘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으며, 날이 맑으면 멀리 고흥 나로우주센터까지 조망된다.
△백년의 맛 지켜온 낭도 ‘젖샘막걸리’
낭도에는 오랜 세월 섬의 생활문화와 함께해 온 전통 막걸리가 있다. 바로 ‘젖샘막걸리’다. 젖샘막걸리는 낭도에 전해 내려오는 샘물인 ‘젖샘’을 물로 사용해 빚어온 막걸리로, 섬 주민들 사이에서는 예로부터 제사와 잔칫날, 마을 행사가 있을 때 빠지지 않던 술이었다.
젖샘은 마르지 않는 샘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물을 사용해 빚은 막걸리는 부드러운 목넘김과 은은한 산미가 특징이다. 인위적인 향이나 강한 단맛보다는 곡물 본연의 맛이 살아 있어, 섬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속이 편한 술”로 불려왔다.
현재 젖샘막걸리는 대량 생산되는 상품은 아니지만 낭도의 역사와 생활문화가 응축된 지역 전통주로 평가받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섬의 일상 문화이자, 낭도가 간직한 무형의 자산이기도 하다. 섬을 찾은 이들이 젖샘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순간, 낭도의 시간과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남포등대~캠핑장, 하루가 머무는 풍경
낭도의 하루는 남포등대에서 시작해 캠핑장에서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낭도 해안을 따라 자리한 남포등대는 오랜 세월 여수 앞바다를 오가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온 항로표지시설이다. 지금도 등대의 불빛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동시에 낭도를 대표하는 해안 경관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등대 주변에 서면 낭도 앞바다와 사도·추도 일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을 때면 멀리 고흥 해역까지 시야가 트이며, 해 질 무렵에는 바다와 섬, 교량이 어우러진 풍경이 차분한 낭만을 더한다. 남포등대는 기능적인 시설을 넘어, 낭도의 시간을 천천히 바라보게 하는 장소다.
남포등대에서 해안을 따라 이동하면, 주민들의 추억이 서린 옛 중학교 터에 조성된 캠핑장을 만난다.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오가던 교정은 지금, 여행자들이 텐트를 치고 하루를 쉬어가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캠핑장 바로 앞에는 낭도해변이 펼쳐지고, 주변으로 섬 둘레길과 트레킹 코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곳에는 화려한 시설이나 인공적인 연출 대신, 파도 소리와 바람, 별빛이 남아 있다. 낮에는 남포등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풍경이, 밤에는 캠핑장에서 마주한 고요한 어둠이 하루의 끝을 채운다. 낭도에서의 캠핑은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섬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는 시간이다.
남포등대와 캠핑장을 잇는 이 동선은 낭도의 여행 방식 자체를 보여준다. 빠르게 소비하는 관광이 아니라, 걷고 바라보고 머무는 여행. 등대의 불빛이 길을 안내하듯, 이 섬은 여행자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말한다. 낭도의 낭만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이렇게 이어진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섬의 가치를 묻다
2026년에는 세계 최초로 섬을 주제로 한 국제 박람회인 ‘2026여수세계섬박람회’가 열린다. 박람회는 9월 5일부터 11월 4일까지 여수 진모지구와 여수세계박람회장, 화정면 개도, 남면 금오도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섬의 역사와 문화, 생태와 환경, 미래 비전은 물론 음식과 축제, 놀이에 이르기까지 섬이 지닌 다양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콘텐츠로 준비되고 있다.
이에 앞서 ‘제7회 섬의 날’ 기념행사도 8월 6일부터 9일까지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다. 섬의 중요성과 가치를 국민과 함께 되새기는 국가기념일 행사로, 전시·체험·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될 예정이다. 두 행사는 여수가 대한민국 섬 정책과 섬 문화의 중심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영채 전남도 해양수산국장은 “낭도는 공룡 화석과 신비의 바닷길, 주민의 생활문화, 연륙·연도교로 이어지는 변화까지 섬이 지닌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담긴 공간이다”며 “2026여수세계섬박람회와 제7회 섬의 날을 계기로 낭도와 같은 섬들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공간으로 주목받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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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3 (화) 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