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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복 영화감독 |
아이들이 카메라에 담아낸 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지역 경제를 떠받쳤던 광부들의 삶과 희생,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온 가족의 서사가 화면에 스며 있다. 폐광은 더 이상 사라진 산업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아이들이 다시 불러낸 기억의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지역의 역사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이야기로 재구성해 세상에 내놓았다. 교과서 밖에서 이루어진 살아 있는 배움이었다.
청풍초는 전남도교육청이 학령인구 감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정한 ‘전남형 작은학교 특성화 모델학교’다. 이곳에서 운영되는 ‘박기복 영화학교’는 단순한 예술 체험을 넘어선다. 기획과 시나리오 작업, 촬영과 연기, 편집과 상영까지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원스톱 프로젝트형 수업이다. 필자는 이 과정을 함께하며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카메라 앞에서 수줍어하던 아이가 어느새 당당히 의견을 내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며 장면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은 교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성장의 장면이었다.
초등학생이 올로케이션 촬영으로 50분 분량의 장편 영화를 완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전교생이 한 팀이 되어 각자의 역할을 책임지는 과정은 인내와 배려를 요구한다. 갈등도 있었고, 실수도 반복됐다. 그러나 아이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끝까지 해냈다. 영화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협업과 책임, 도전과 성취를 배웠다. 시험 점수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한 편의 영화가 태어나는 일은 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일과 닮아 있다. 열정과 기술, 자본과 협업, 그리고 이를 하나로 묶는 이야기. 이 다섯 요소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영화는 생명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쌓인 경험은 아이들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당장은 드러나지 않아도, 그 기억은 삶의 어느 순간 힘이 된다. 메마른 들판에 봄비가 내리면 새싹이 움트듯, 배움의 씨앗도 그렇게 자라난다.
지금 전남이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위기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남도교육청(김대중 교육감)이 제시한 ‘글로컬 미래교육’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교육은 더 이상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만 머물 수 없다. ‘누구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역의 자원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미래형 인재를 키우는 전략이다. 세계의 학생들이 전남에서 함께 배우고, 전남의 아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이 목표다.
청풍초의 영화 수업은 이러한 글로컬 미래교육이 교실 안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더 이상 학예회 발표로 끝나는 결과물이 아니다. 지역의 이야기를 세계와 나누는 콘텐츠이자, 다른 나라 학생들과 협업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된다. 작은 학교의 아이들은 스스로를 ‘변방의 학생’이 아니라 ‘창작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존감이 달라지고, 시야가 넓어졌다.
교육은 단기간의 성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한 편의 영화가 남긴 울림은 분명하다. 아이들에게 지역은 떠나야 할 곳이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전남이 대한민국 글로컬 교육의 실험실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와 미디어, 인공지능 기반 프로젝트 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지역의 이야기를 세계와 소통하는 창작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
작은학교 운동장에서 켜진 카메라의 불빛이 전남 교육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그 빛이 지역과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어 아이들의 꿈을 더 넓은 무대로 이끌어 주기를 기대한다.
2026.02.26 (목) 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