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20조원의 마중물과 ‘지역적 자기효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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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독자권익위원 칼럼]20조원의 마중물과 ‘지역적 자기효능감’

최총명 허그맘허그인심리상담센터 광주무등점 원장

최총명 허그맘허그인심리상담센터 광주무등점 원장
정치적 담론이 경제적 수치나 거대한 인프라 계획으로 치환될 때, 대중은 흔히 그 규모에 압도되거나 혹은 실현 가능성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광주·전남의 행정 통합을 위해 제시한 ‘20조원 투자 계획’ 역시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이나 표심을 겨냥한 예산 배정으로 보겠지만, 인간의 마음과 집단의 행동 기제를 오랜 세월 관찰해 온 심리학자의 시선에는 그 이면의 풍경이 읽힌다.

이 막대한 자본은 단순한 예산 집행을 넘어, 우리 지역 사회가 오랫동안 상실해온 ‘집단적 자기효능감(Collective Self-Efficacy)’을 회복하기 위한 심리적 마중물이어야 한다.

본래 광주와 전남은 한 뿌리, 하나의 몸이었다. 1986년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며 시작된 ‘분리’의 세월은 행정적 효율을 위한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공동체 자아의 파편화를 의미했다. 한 몸이었던 대상이 인위적으로 나뉘어 각자도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미묘한 경쟁과 갈등은 지역민들에게 무의식적인 ‘분리 불안’과 정서적 결핍을 안겨줬다. 이는 마치 발달 과정에서 애착 대상과 분리된 아이가 겪는 혼란과 유사하다. 이제 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하나로 합치는 과정은 단순히 행정 구역을 병합하는 물리적 결합을 넘어, 훼손되었던 ‘자아 통합(Ego Integrity)’을 이루고 온전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집단적 치유의 과정이 돼야 한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주창한 자기효능감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 믿음’을 뜻한다. 이것이 집단 단위로 확장되면,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미래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지난 수십 년간 광주와 전남은 정서적 유대감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인구 소멸의 공포와 낙후된 산업 구조는 지역민들의 마음속에 ‘결국은 안 될 것’이라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고착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20조원 투자 발표는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우리 지역이 다시금 스스로를 유능한 존재로 지각하게 만드는 ‘심리적 충격요법’이자 새로운 동기 부여의 시작점이다.

특히 이번 통합과 투자의 핵심은 ‘지역 경제의 자생력’과 ‘지역 인재 육성’이라는 두 축으로 연결돼야 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이 가장 큰 무력감을 느낄 때는 자신의 터전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다. 그간 우리 지역의 가장 깊은 상처는 ‘인재 유출’이었다. 자식 같은 청년들이 더 나은 기회와 교육을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남겨진 지역 사회는 일종의 ‘빈 둥지 증후군’과 유사한 집단적 우울과 상실감을 경험해 왔다. 이는 지역의 사회적 가용성을 떨어뜨리고 공동체의 활력을 잠식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따라서 20조원의 투자는 지역 청년들에게 ‘심리적 안전기지(Secure Base)’를 제공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청년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그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그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지역 거점 대학과 산업 단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인재를 길러내고, 그들이 다시 지역 경제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는 우리 공동체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자기효능감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물론 자본의 투입이 곧바로 통합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외부적 동기(보상)가 내재적 동기(자발성)로 승화되지 않으면 그 효과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20조원이라는 마중물이 시·도민들이 협력을 통해 성공을 경험하는 ‘승리의 기억’을 만드는 데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작은 협력의 성공들이 쌓여 ‘우리가 하나가 되니 정말로 세상이 바뀐다’는 유능감을 체감할 때, 비로소 행정 구역의 경계는 심리적으로도 완전히 허물어질 것이다.

통합은 지도를 다시 그리는 물리적인 토목 공사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소외된 변방’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깨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동적 중심’이라는 건강한 정체성을 재구축하는 장엄한 심리 프로젝트다. 4월의 봄기운과 함께 시작될 이 거대한 전환이 돈의 논리를 넘어 ‘마음의 논리’로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20조원이라는 생명수가 광주와 전남이라는 두 줄기 강물을 다시 하나로 합치고, 그 합쳐진 물줄기가 지역의 인재들이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깊고 푸른 호수가 되길 소망한다.

결국 통합의 종착역은 거대한 복합도시가 아니라, 우리가 다시금 서로를 신뢰하며 대를 이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심리적 연대’와 ‘자생적 삶의 터전’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최총명 gn@gwangnam.co.kr        최총명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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