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로 되살린 도시 풍경…삶의 흔적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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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골판지로 되살린 도시 풍경…삶의 흔적 재구성

‘ACC 뉴스트’ 세 번째, 7월 19일까지 전시7관
양나희 작가 골판지 활용 회화 20여점 선봬

‘별의 시’, 골판지 부조 위에 유채, 65.1×90.9cm, 2020
‘해동네’, 골판지 부조 위에 유채, 95.6×51.8cm, 2022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오래된 골목은 철거되고, 낮은 지붕과 언덕길은 새 아파트 단지로 바뀐다. 그렇게 사라진 공간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기억 속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풍경을 붙잡아 시각예술로 남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지역 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ACC 뉴스트(NEWST)’를 통해 선보이는 세 번째 전시가 도시의 기억과 삶의 흔적에 주목한다. 버려진 골판지로 사라져가는 도시 풍경을 복원해온 양나희 작가의 개인전 ‘Useless but Beautiful(쓸모없는 그러나 아름다운)’이다. 전시는 오는 18일부터 7월 19일까지 ACC 문화창조원 전시7관에서 열린다.

ACC 뉴스트(NEWST)는 광주·전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창작활동 지원 및 전시 기회 확대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ACC가 새롭게 조성한 전시7관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은 지역 작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ACC 뉴스트는 이정기 작가의 ‘번역된 가상’, 임수범·하승완 작가의 ‘이형의 뼈’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됐다. 관람객들은 양나희 작가가 제작한 회화 2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양 작가는 익숙한 도시 풍경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작품의 재료는 화려한 물감이나 캔버스가 아닌 택배 상자와 포장재로 쓰인 뒤 버려지는 골판지다.

버려진 골판지를 잘라 붙이고 겹겹이 쌓아 올리는 과정을 통해 재개발 지역의 집들과 골목, 언덕길과 창문, 지붕 풍경을 입체 회화로 재구성한다. 골판지의 주름과 결, 찢긴 흔적과 마모된 표면은 도시가 품었던 시간의 흔적으로 변모한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은 광주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 마주한 장면이다. 골목길을 걷던 작가는 무거운 폐지를 수레에 실어 나르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한 번 쓰이고 쉽게 버려지는 골판지 안에 오늘날 도시와 사회의 단면이 응축돼 있음을 발견했다.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골판지와 개발의 흐름 속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골판지는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과 삶의 흔적을 담아내는 예술적 매체로 활용된다.

전시명인 ‘Useless but Beautiful 쓸모없는 그러나 아름다운’은 이같은 작가의 문제의식을 함축한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쓸모’와 ‘가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효율과 생산성을 요구하고, 오래된 집과 골목, 낡은 물건, 사용을 마친 포장재는 쉽게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대상들 안에 깃든 시간과 기억, 그리고 삶의 온도에 주목한다.

작가의 화면은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여러 겹의 골판지가 만들어내는 부조적 구조는 실제 골목길을 걷는 듯한 공간감을 형성하고, 색을 덧입힌 표면은 도시가 지닌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드러낸다.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낡은 담벼락과 언덕 위 집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풍경을 떠올리기도 한다. 익숙하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공간들이 예술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전시를 여는 양나희 작가는 지난 2020년 ‘제26회 광주미술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 ‘올해의 청년작가전’ 등 개인전과 2024년 허스토리 기획전시 공모전 수상전 ‘잇다’를 선보였다. 또한 ‘차이의 미학’, ‘낭만소환안내서’, ‘다시 만난 사물’, ‘바람이 분다’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지역을 기반으로 도시와 공동체, 사물과 기억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상욱 전당장은 “양나희 작가는 버려진 골판지라는 일상의 재료를 통해 도시의 시간과 삶의 흔적을 섬세하게 되살려 온 작가”라면서 “이번 전시가 지역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시민과 공유하는 것을 넘어 우리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정채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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